티스토리 뷰
목차
과부댁 담장 밑을 남몰래 훔치다 발견한 엽전 궤짝, 빗속에서 터진 금빛 대박 《진역사의》
태그
#노다지야담, #부자되는이야기, #과부댁, #망나니총각, #엽전궤짝, #횡재수, #진역사의, #돈벼락,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ASMR, #수면유도, #신분상승, #해피엔딩, #금은보화
#노다지야담 #부자되는이야기 #과부댁 #망나니총각 #엽전궤짝 #횡재수 #진역사의 #돈벼락 #옛날이야기 #오디오드라마 #ASMR #수면유도 #신분상승 #해피엔딩 #금은보화
후킹멘트
마을 제일의 골칫덩이 총각이 어여쁜 과부댁 담장을 넘보려다 상상조차 못한 인생역전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과부의 방을 훔쳐보려 담장 밑을 파고들던 총각의 손에 걸린 묵직한 쇳덩이. 그것은 과거 권력을 누리던 세도가가 몰래 묻어둔 어마어마한 엽전 궤짝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횡재를 거머쥔 총각이 과부의 마음마저 훔치고 떵떵거리는 양반으로 신분 상승까지 이룬 유쾌하고 짜릿한 대박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과부를 짝사랑하는 마을의 골칫덩이 망나니 총각
조선 팔도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동네에는 반드시 제 몫의 농사일은 까맣게 내팽개치고, 허구한 날 노름판과 주막을 전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골칫덩이 사내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산세가 수려하고 인심이 넉넉하기로 소문난 경상도의 어느 평화로운 마을, 이곳에도 칠성이라는 이름의 아주 유명하고도 유별난 망나니 총각이 살고 있었습니다. 본래 칠성이의 집안은 할아버지 대까지만 해도 제법 논밭을 거느리고 곳간에 쌀가마니를 쌓아두고 살던 부족함 없는 중농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림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시고 난 뒤, 젋은 혈기와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칠성이는 아비가 피땀 흘려 물려준 비옥한 뙈기밭마저 투전판의 노름 빚으로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칠성이는 서른이 훌쩍 넘도록 장가는커녕 번듯한 거처 하나 없이, 남의 집 제사나 잔칫집을 기웃거리며 술과 고기를 얻어먹거나 장터에서 왈패들과 어울려 푼돈을 뜯어내는 비루한 일상으로 세월을 축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흙먼지가 잔뜩 묻은 해진 저고리를 입고 주막 평상에 대낮부터 널브러져 있는 칠성이를 볼 때마다 쯧쯧 혀를 차며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워낙 천성이 악독하지는 않은 데다,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떠는 통에 아주 밉상으로 박히지는 않은, 마을의 풍경 속에 묘하게 녹아든 정이 가는 사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천하의 태평하고 대책 없는 망나니 칠성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리고, 밤마다 화끈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뜬눈으로 밤잠을 설치게 만든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삼 년 전 이 조용한 마을로 흘러들어온 젊고 어여쁜 과부 옥분이었습니다. 옥분이는 굽이치는 검은 머릿결에 얼굴이 백옥처럼 눈부시게 희고,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기품과 고운 자태가 배어 있어 단숨에 마을 사내들의 은밀한 시선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성품이 대나무처럼 꼿꼿하고 단정하며, 외간 사내를 대할 때면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몸가짐을 엄격히 하여 감히 동네의 그 누구도 쉽게 농을 건네거나 곁을 내어달라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옥분이는 마을 외곽,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으슥한 산기슭에 자리한 낡고 거대한 기와집의 곁채에 헐값으로 세를 들어 살며, 밤낮없이 남의 옷을 짓는 바느질과 차가운 개울물에 손을 담그는 삯빨래로 근근이 고단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가 살고 있는 그 거대한 기와집은 과거 한양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어느 세도가가 은밀하게 지어두었던 별장이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주인이 끔찍한 역모에 휘말려 삼족을 멸하는 멸문지화를 당한 뒤, 나라에 몰수되지도 않은 채 귀신이 나올 듯한 폐가처럼 방치되다시피 한 음산한 곳이었습니다.
칠성이는 어느 봄날, 읍내 장터에서 무거운 무명천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옥분이를 처음 본 순간,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가슴 한가운데에 뜨거운 불덩이를 품은 것처럼 맹렬한 연정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마을 우물가에서 옥분이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물을 긷는 찰나의 모습만 보아도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고, 달빛 아래에서 바느질거리를 안고 돌아오는 그녀의 외롭고 고운 뒷모습을 볼 때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무거운 짐을 낚아채어 대신 들어주고 싶은 사내의 본능이 굴뚝같이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꼴을 볼 때마다 칠성이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내일 먹을 쌀 한 줌조차 없는 빈털터리 망나니 노총각 신세에, 저토록 눈부시게 아름답고 콧대 높은 옥분이에게 뻔뻔하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자 헛된 망상이었습니다.
'아이고, 저 고운 자태 좀 보소. 구름을 타고 내려온 선녀가 따로 없지 않은가. 내가 저 옥분이를 평생의 색시로 맞이하여 따뜻한 아랫목에 함께 누울 수만 있다면, 당장 이 지긋지긋한 노름도 끊고 술도 끊고 코뚜레를 꿴 소처럼 뼈가 부서지도록 일만 하며 살 터인데. 이놈의 썩을 팔자, 주머니에 엽전 한 닢 없는 가난한 빈털터리 홀아비니 천하의 어느 여인이 나 같은 놈을 사내로 거들떠보겠는가. 참으로 원통하고 가슴이 찢어지는구나.'
칠성이는 매일 밤 주막 한구석에 찌그러져 앉아 싸구려 탁주를 물처럼 들이켤 때마다, 어른거리는 옥분이의 고운 얼굴과 처연한 눈빛을 떠올리며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취기를 빌려 몇 번이나 용기를 쥐어짜 내어 옥분이의 낡은 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옥분이는 굳게 닫힌 대문 밖으로 고개 한 번, 그림자 한 자락 내밀지 않았습니다. 칠성이의 이루지 못한 연정은 억눌릴수록 날이 갈수록 무섭게 깊어지고 비틀어졌으며, 급기야는 매일 밤 달이 뜨면 옥분이의 집 주변 담벼락을 유령처럼 맴돌며 담장 너머로 그녀의 방에 켜진 호롱불 그림자라도 훔쳐보려는, 지독하고도 병적인 짝사랑이자 은밀한 훔쳐보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오늘 밤에도 저 작은 방에는 호롱불이 켜져 있구나. 가녀린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밤늦도록 삯바느질을 하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을 터인데. 아아, 이 높고 야속한 담장 너머로 들어가 저 고운 얼굴을, 그 붉은 입술을 한 번만이라도 가까이서 훔쳐볼 수 있다면 내일 당장 죽어도 소원이 없겠구나.'
칠성이는 흙 묻은 까치발을 들고 목을 길게 빼어 담장 너머를 끊임없이 힐끔거렸지만, 과거 떵떵거리던 세도가가 도적과 자객을 막기 위해 지었던 집답게 담장은 야속할 만큼 턱없이 높고 단단한 돌로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칠성이의 가슴속에서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지독한 사내의 오기와,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의 방 앞마당까지 몰래 숨어 들어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야 말겠다는 당돌하고도 불순하며 맹렬한 결심이, 마치 가뭄에 번지는 산불처럼 서서히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 2: 쏟아지는 빗속, 은밀하게 담장 밑을 파고들다
어느 늦은 여름밤, 낮부터 찌는 듯이 무덥고 습하던 공기가 일순간에 서늘하게 돌변하더니, 이내 먹물처럼 캄캄해진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퍼런 번개가 쉴 새 없이 하늘을 가르며 번쩍이고, 천둥이 우르릉 쾅쾅 대지를 뒤흔들며 온 마을을 집어삼킬 듯 끔찍하게 울려 퍼지는 몹시도 험악하고 무서운 날씨였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찌감치 튼튼한 대문을 빗장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고, 비바람 소리에 행여 귀신이라도 찾아올까 두려워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짙은 어둠과 세찬 빗줄기 속에서, 칠성이의 두 눈빛만큼은 오히려 굶주린 들개처럼 형형하게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로 이런 미친 밤이야말로, 빗소리와 천둥소리에 모든 인기척이 묻혀 아무도 모르게 옥분이의 집 담장을 넘어 은밀히 마당으로 숨어들기에 하늘이 내린 가장 완벽하고 안성맞춤인 기회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칠성이는 주막에서 마신 탁주의 취기와 옥분이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정욕을 원동력 삼아, 온몸을 때리는 차가운 빗줄기를 흠뻑 맞으며 질척이는 진흙탕을 뚫고 옥분이의 집 쪽으로 은밀하고도 빠른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 때문에 짚신은 진작에 벗겨져 날아갔지만, 거센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워낙 요란하여 그의 거친 숨소리와 발소리는 세상에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인적이 끊긴 으슥한 산기슭, 낡고 거대한 기와집 담장 앞에 도착한 칠성이는 숨을 죽인 채 비를 맞으며 담장을 이리저리 매처럼 날카롭게 살폈습니다. 하지만 세찬 비에 흠뻑 젖어 푸른 이끼가 낀 매끄러운 돌담벽은 짚고 올라설 틈조차 없이 너무도 미끄러워, 아무리 용을 써도 도저히 기어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담장에 매달리다 진흙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동댕이쳐진 칠성이는 분통이 터져 이를 갈았습니다.
'제기랄, 썩을 놈의 비가 너무 쏟아져서 담을 넘을 수가 없구나! 그렇다고 저 두꺼운 대문을 무식하게 도끼로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체 어디 개구멍이라도 하나 뚫려있는 곳이 없단 말인가!'
칠성이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을 거칠게 훔쳐내며,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담장 밑동을 더듬어 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담장의 가장 구석진 곳,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아래쪽에 과거 세도가가 집을 지을 때 장마철에 마당의 물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어 둔 듯한 작은 돌배수로 구멍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썩은 흙과 질긴 잡초 뿌리에 단단히 파묻혀 꽉 막혀 있었지만, 진흙을 파내고 구멍을 조금만 더 넓힌다면 깡마른 사람 하나쯤은 간신히 뱀처럼 기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칠성이는 망설임 없이 질척이는 진흙 바닥에 엎드려 맨손으로 단단하게 굳은 흙을 미친 듯이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빗물이 눈을 찌르고 진흙탕 물이 코와 입으로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왔지만, 오늘 밤 기필코 옥분이의 방 앞까지 다가가 그녀의 고운 자태를 가까이서 보겠다는 맹목적이고 집요한 일념 하나로, 짐승처럼 두 손을 갈퀴 삼아 흙을 파헤쳤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파내면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갈 수 있겠다. 옥분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네 그 고운 자태와 붉은 입술을 오늘 밤 기필코 내 두 눈에 담고, 내 품에 안아보고야 말 것이다!'
거친 돌멩이와 억센 나무뿌리에 긁혀 열 손가락의 손톱 밑에 붉은 피가 맺히고 생살이 찢어지는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칠성이는 아픔조차 잊은 채 광기에 사로잡혀 한참을 미친 듯이 파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빗물이 고여 웅덩이가 된 구멍 속으로 손을 깊숙이 찔러넣어 흙을 파내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푹푹 파이던 진흙 속에서 갑자기 손끝에 무언가 걸리더니 '텅' 하는 둔탁하고도 무겁고 서늘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은 흔히 땅속에 묻힌 바위나 돌덩이와 부딪힐 때 나는 투박한 소리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속이 비어있으면서도 무척이나 단단한, 인간이 벼려낸 쇳덩이와 부딪힐 때만 나는 묘하고도 이질적인 소리였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돌담을 받치는 주춧돌은 아닌 것 같은데. 척박한 담장 밑 흙바닥에 웬 단단한 쇳덩이가 묻혀있단 말인가?'
칠성이는 의아한 마음과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찢어진 손을 진흙 구덩이 더 깊숙이 집어넣어 그것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더듬어보았습니다. 끈적한 흙을 걷어낼수록 손끝에 닿는 감촉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차갑고 소름 돋게 단단한 철제의 질감, 그리고 그 표면에는 사람의 손으로 정교하게 끌로 파내어 조각한 듯한 기하학적인 문양 같은 것이 분명하게 만져졌습니다. 그것은 결코 자연적으로 생겨난 돌덩이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들어 깊은 땅속에 은밀하게 파묻어둔 거대한 철제 궤짝의 모서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궤짝이 아닌가? 이 깊고 축축한 땅속에, 그것도 과거 무시무시한 역모로 멸문지화를 당해 뼈대도 남지 않은 옛 세도가의 별장 담장 밑에 이토록 거대한 철제 궤짝이 묻혀있다면... 설마!'
순간, 칠성이의 귓가에 벼락이 치는 듯 심장이 천둥소리보다 더 거세고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주막에서 술에 취한 노인들이 헛기침을 하며 안주 삼아 종종 떠들던 낡은 옛날이야기가 번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과거 이 거대한 집의 주인이었던 오만한 세도가가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한양의 관군에게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기 직전, 자신이 평생 부정하게 모은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와 재산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집안 터 어딘가에 몰래 파묻어두었다는 기막힌 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그저 노인네들의 허풍이 섞인 쓸데없는 야담이라고 치부하며 술잔을 부딪치고 웃어넘겼던 그 전설 속의 어마어마한 은닉 재물이, 지금 당장 칠성이의 피 묻은 손끝에 걸려든 것입니다.
비바람과 빗소리는 세상을 부숴버릴 듯 더욱 거세어졌지만, 칠성이는 온몸을 때리는 추위도 잊은 채 미친 듯이 궤짝 주변의 흙을 미친 속도로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옥분이의 방을 훔쳐보려던 애초의 발칙하고 불순한 목적은 이미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져 날아간 지 오래였습니다. 오직 이 깊은 땅속에 묻힌 거대한 쇳덩이를 세상 밖으로 온전히 꺼내야 한다는 짐승 같은 본능과, 일확천금에 대한 터질 듯한 환희만이 그의 온몸을 맹렬하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 3: 진흙탕 속에서 드러난 세도가의 은닉 재물, 철제 궤짝
칠성이는 빗물이 거친 강물처럼 소용돌이치며 흘러드는 깊은 구덩이 속에서, 입으로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며 궤짝의 윤곽과 형태를 서서히 파악해 나갔습니다. 손으로 더듬어 확인한 궤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대하고 거대했습니다. 어른 장정 두세 명이 양팔을 벌려 힘껏 끌어안아야 겨우 품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엄청난 두께의 무쇠로 주조된 웅장한 철제 궤짝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비바람과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건만, 그 압도적인 무게감과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으윽, 무겁다! 끔찍하게 무겁구나! 대체 이 거대한 무쇠 통 안에 무엇을 얼마나 꽉꽉 채워 넣었기에, 내 온 힘을 다해 밀어도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천금을 호령할 황금이냐, 눈부신 백은이냐, 아니면 셀 수도 없는 엽전 더미란 말인가!'
칠성이는 양손으로 궤짝을 끄집어내려다 실패하자, 빗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담장 주변에 굴러다니는 어른 팔뚝보다 굵고 단단한 참나무 가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지렛대 삼아 궤짝의 밑동과 진흙 바닥 사이의 좁은 틈새로 깊숙이 쑤셔 넣고, 자신의 온 체중과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실어 거칠게 뒤로 젖혔습니다.
"끄아아아악! 빠져라, 이놈아!"
뼈마디가 부서질 듯한 짐승 같은 기합 소리와 함께 굵은 나뭇가지가 휘어지며 부러지기 직전, 진흙탕 속 깊이 박혀있던 궤짝이 드디어 '쩍' 하고 진흙과 분리되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그 무겁고 거대한 몸통을 지상으로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궤짝 표면에 덕지덕지 묻은 진흙을 시원하게 씻어내자,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있었음에도 붉게 슨 녹 사이로 시퍼렇고 견고한 무쇠의 질감이 빗물에 반사되어 선명하게 그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칠성이는 사투 끝에 궤짝을 진흙 구덩이에서 마당 위로 완전히 끌어올린 뒤, 바닥에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궤짝의 정면 자물쇠를 살폈습니다. 그곳에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기괴하게 생긴 무쇠 자물쇠가 굳건하게 채워져 궤짝의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이 육중한 철문 안에 내 비루한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놓고 왕대밭으로 만들어줄 엄청난 노다지가 들어있다. 당장 이것을 부수고 열어야 한다! 당장 열어젖혀야 한단 말이다!'
칠성이는 이성을 잃고 두리번거리다, 마당 한구석 장독대 옆에 놓인 커다랗고 무거운 돌 절굿공이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가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광기와 탐욕에 사로잡힌 핏발 선 눈빛으로, 궤짝의 무쇠 자물쇠를 향해 절굿공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미친 듯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깡! 까아앙! 깡!"
육중한 돌과 쇳덩이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에 교묘하게 묻혀 빗속 어둠 속으로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온몸을 적시는 가운데 수십 번을 미친 듯이 내리친 끝에, 마침내 오랜 세월 흙속에서 붉게 부식되어 내구성이 약해져 있던 굵은 자물쇠가 '툭' 하는 쇳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며 땅바닥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칠성이는 피가 철철 흐르는 떨리는 두 손으로 궤짝의 무겁고 차가운 무쇠 뚜껑 양쪽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제발... 천지신명이시여, 조상님이시여, 제발 이 칠성이를 가난의 지옥에서 구원해 다오!'
칠성이가 온몸의 기를 모아 궤짝 뚜껑을 뒤로 힘껏 열어젖힌 바로 그 순간, 마침 하늘에서 하늘을 두 쪽 낼 듯한 거대한 번개가 번쩍이며 세상을 대낮처럼 환하고 하얗게 밝혔습니다. 시퍼런 번갯불이 궤짝의 깊은 안쪽을 환하게 비추는 찰나, 칠성이의 두 눈은 튀어나올 듯 거대하게 커졌고, 떡 벌어진 입에서는 기쁨인지 비명인지 모를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신음이 거칠게 터져 나왔습니다.
"허억... 이, 이럴 수가! 하늘이시여! 정녕 이것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맞단 말이냐!"
열린 궤짝 안에는, 빗물을 머금은 채 밤의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영롱하고 황홀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금괴 무더기와 묵직한 은덩이들, 그리고 평생을 세어도 다 세지 못할 수만 냥은 족히 되어 보이는 엽전 꾸러미들이 궤짝 터질 듯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듯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터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눈부신 황금빛 대박이었습니다. 끔찍한 역모로 처형당한 옛 세도가가 훗날 가문의 부활을 도모하기 위해 피눈물을 머금고 담장 밑에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그 엄청난 은닉 재물이, 수십 년의 긴 세월을 뛰어넘어 마을 제일의 한심한 망나니 총각 칠성이의 발밑에 와르르 쏟아져 내린 것입니다.
칠성이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괴상한 웃음을 터뜨리며, 궤짝 안의 차가운 금괴를 양손 가득 움켜쥐고 자신의 더러운 뺨과 얼굴에 미친 듯이 비벼댔습니다. 묵직하고 차가우며 단단한 황금의 완벽한 감촉이, 지금 이 순간이 헛된 꿈이 아닌 가슴 벅찬 현실임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부자다! 나 칠성이가 이제 찢어지게 가난한 빈털터리가 아니라, 조선 팔도에서 남부럽지 않은, 정승 판서도 발아래 꿇릴 수 있는 최고 거부가 된 것이다! 이 산더미 같은 돈이면 당장 한양 한복판에 대궐 같은 아흔아홉 칸 기와집을 사고, 평생 고기반찬을 씹으며 어여쁜 기생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매일 밤 풍악을 울리며 살 수 있다!'
극도의 환희와 미칠 듯한 광기에 휩싸여 쏟아지는 빗속에서 덩실덩실 미친 춤을 추려던 칠성이의 요란한 행동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번뜩이는 생각에 의해 그 자리에서 뚝 멈칫했습니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가 바라본 곳에는, 이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여전히 희미하고 따뜻한 호롱불이 새어 나오고 있는 옥분이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이 엄청난 금은보화를 얻어 세상을 다 가지게 되었지만, 이 텅 빈 가슴을 진정으로 채워줄 유일한 노다지는 바로 저 좁은 방 안에 있는 여인, 옥분이 그녀뿐이다. 이제 나에게는 사람의 마음도, 세상의 신분도 다 살 수 있는 막강한 돈이 생겼다.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볼 것도, 가난에 주눅 들어 담장 밖만 맴돌 이유가 전혀 없다!'
칠성이는 빗물에 젖어 묵직해진 엽전 꾸러미 서너 개와 찬란한 금괴 두어 개를 자신의 축축하게 젖은 바지춤과 두루마기 품속에 억지로 쑤셔 넣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궤짝의 뚜껑을 쿵 소리가 나게 다시 닫고는, 주변의 진흙을 대충 발로 차 올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철저히 위장해 덮어두었습니다. 칠성이는 이글거리는 탐욕과 뜨거운 정욕이 가득 찬 짐승의 눈빛으로, 옥분이의 방문을 향해 거침없고 당당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 폭우가 쏟아지는 밤, 가난한 망나니 총각의 가슴속에서는 천하의 부와 오랫동안 갈망했던 사랑을 동시에 완벽하게 거머쥐겠다는 지독하고도 맹렬한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4: 궤짝을 안고 과부의 방으로 뛰어든 총각의 당돌한 고백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질 듯 무시무시한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억수 같은 폭우가 쏟아지는 야심한 밤. 칠성이는 품속에 쑤셔 넣은 묵직한 황금과 엽전 꾸러미의 서늘한 감촉을 피부로 고스란히 느끼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옥분이의 방문 앞까지 거침없이 다가갔습니다. 얇은 창호지가 발라진 방문 너머로는, 이 험악한 날씨 속에서도 여전히 희미한 호롱불 불빛에 의지하여 고단한 삯바느질에 몰두하고 있는 옥분이의 가냘프고 외로운 그림자가 흔들리며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의 칠성이었다면 감히 기침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숨죽여 지켜보기만 했을 터지만, 땅속에서 캐낸 엄청난 부력(富力)은 비루했던 망나니 사내의 뼛속까지 당당한 광기와 야성으로 가득 채워놓았습니다. 칠성이는 망설임 없이 진흙과 빗물로 범벅이 된 거친 손을 들어, 가냘픈 방문을 부서질 듯 쾅쾅쾅 거칠게 두드렸습니다.
"옥분아! 자느냐! 나다, 칠성이다! 당장 이 문을 열어라!"
방 안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던 옷감 스치는 소리와 바느질 소리가 일순간 뚝 끊기더니, 몹시 당황하고 겁에 질린 옥분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습니다.
"누, 뉘시라고요? 칠성 성님 아니십니까? 이 야심하고 비바람 치는 험한 밤중에, 홀로 사는 과부댁 문을 이리 거칠게 두드리는 무례하고 망측한 짓이 대체 무엇입니까!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전에 당장 돌아가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당장 소리를 쳐서 사람들을 부르고 내일 아침 관아에 고발할 것입니다!"
"고발을 하려거든 빗장 푼 문을 열고 내 얼굴을 똑똑히 보고 하거라! 내가 오늘 밤 너에게 천하의 모든 것과 세상을 다 주려고 목숨을 걸고 왔으니, 잔말 말고 어서 문을 열란 말이다!"
칠성이는 더 이상 옥분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젖은 어깨로 힘껏 방문을 밀어젖혔습니다. 낡은 문고리가 부서지는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리자, 비에 흠뻑 젖어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고 진흙투성이가 된 채 거친 짐승처럼 숨을 몰아쉬는 칠성이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 바느질을 하던 옥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방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꺄아악! 칠성 성님! 미치셨습니까? 제정신이십니까! 과부 혼자 있는 외진 방에 밤중에 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다니, 이 무슨 천인공노할 난동이랍니까! 당장 한 발짝이라도 더 들어오시면 제 목숨을 끊어버리겠습니다!"
옥분이가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옆에 놓여있던 시퍼런 바느질 가위를 집어 들고 결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자, 칠성이는 콧방귀를 뀌며 아랑곳하지 않고 젖은 발로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그의 눈빛은 전에 없던 강렬한 광기와 사내다운 맹렬함, 그리고 옥분이를 향한 지독한 정욕으로 이글거리며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부를 테면 다 불러보아라! 목숨을 끊을 생각일랑 당장 집어치워라! 동네 사람들이 다 깨어나 횃불을 들고 몰려와도 나는 상관없다. 옥분아, 내가 널 처음 장터에서 본 순간부터 내 마음에 품은 연정이 얼마나 깊고 뜨거웠는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널 훔쳐보던 내 속이 어떠했는지 너도 모를 리 없지 않느냐. 내가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 망나니라 감히 네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지만, 오늘 밤부터는 다르다! 완전히 다르단 말이다!"
칠성이는 품속과 바지춤에 쑤셔 넣었던, 빗물과 진흙이 질척하게 뒤엉킨 엽전 꾸러미 여러 개와 시퍼런 빛을 내는 거대한 은덩이들, 그리고 호롱불 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 요염하게 빛나는 황금 금괴를 방바닥 한가운데로 와르르 쏟아부었습니다. '챙그랑! 쿵!' 하는 무겁고 경쾌한 쇳소리와 함께 비좁은 방바닥을 여기저기 뒹구는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를 본 순간, 옥분이의 두 눈은 찢어질 듯 커졌고 방어하듯 꼭 쥐고 있던 날카로운 가위가 '툭' 하고 힘없이 방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이게 다 무엇입니까...? 성님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가난한 분이, 대체 어찌 이런 눈이 머는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놀라지 말거라! 방금 네가 삯바느질을 하던 이 낡은 집 담장 밑을, 비바람 속에서 내가 두 손이 찢어지도록 파내어 직접 캔 진짜 노다지다! 옛날 역모로 죽은 권세가가 숨겨둔 짐채만 한 궤짝이 통째로 내 손에 들어왔단 말이다! 네 눈앞에 바닥에 뒹구는 이 금덩이는, 그 거대한 궤짝에서 그저 한 줌 쥐어 온 것에 불과하단 말이다!"
칠성이는 넋이 나간 옥분이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냘픈 양어깨를 두 손으로 꽉 쥐며 뜨겁고 거친 숨결을 뿜어냈습니다.
"옥분아, 똑똑히 보거라! 이제 네가 그 고운 손가락에 바늘에 찔려 피를 맺혀가며 삯바느질로 푼돈을 벌고 밤을 새울 필요가 없단 말이다. 이 돈이면 한양 한복판에 제일가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열 채도 넘게 사고, 네 고운 몸에 최고급 명주 비단옷만 입혀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흙 한 줌 묻히지 않게 호강시켜 줄 수 있다. 나를 허락해 다오. 아니, 오늘 밤 나를 받아들여라! 오늘 밤부터 너는 처량하고 불쌍한 과부가 아니라, 이 칠성이의 유일한 정실부인이자 억만금을 주무르는 천하 제일의 안방마님인 것이다!"
옥분이는 칠성이의 거침없고 당돌한 고백과, 눈앞에 거짓말처럼 펼쳐진 엄청난 황금빛 현실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벼락을 맞은 듯 아득해졌습니다. 평소 동네 바보나 한심한 망나니처럼 여겼던 칠성이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사내의 야성과 박력, 그리고 자신의 지독하고 비참한 과부 신세를 단숨에 구원해 줄 저 바닥의 엄청난 재물 앞에서, 그녀가 그토록 목숨처럼 지켜오던 꼿꼿했던 이성과 알량한 자존심은 세찬 빗물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흙담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 5: 황금빛 횡재로 맺어진 합방과 과부의 치명적인 지략
하늘이 무너질 듯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이 울부짖는 밤, 작고 초라했던 과부의 방 안은 쏟아진 황금의 영롱한 빛과 두 남녀가 토해내는 뜨겁고 끈적한 숨결로 빈틈없이 꽉 채워졌습니다. 칠성이의 거침없는 애무와 당당한 고백에, 옥분이는 결국 기나긴 세월 억눌러왔던 외로움과 체념,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환희가 뒤섞인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넓고 거친 품에 온전히 안기고 말았습니다. 과부라는 꼬리표 때문에 겪어야 했던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멸시와 지독한 가난의 고통, 그리고 그 모든 설움을 한순간에 수백 배로 보상받는 듯한 엄청난 횡재가, 두 사람의 첫 합방을 그 어떤 밤보다 극적이고 맹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들었습니다.
격정적인 폭풍 같은 욕망의 밤이 지나고, 창호지 너머로 비가 갠 맑고 청명한 아침 햇살이 밝아오자 옥분이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무거운 금괴를 고요히 쓰다듬으며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지난밤의 연약하고 떨리던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놀랍도록 차분하고 서늘하며 이지적인 눈빛으로 완전히 탈바꿈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때 뼈대 있는 양반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글을 배우고 자랐으나 집안이 억울하게 몰락하여 비참한 과부로 전락한 터라, 닥친 상황의 사리를 냉철하게 분별하고 앞날을 위한 지략을 짜내는 데에는 마을의 웬만한 선비들이나 사내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영특한 여인이었습니다.
"서방님, 밤새 푹 주무셨습니까. 이제 제가 하늘의 뜻에 따라 서방님을 평생의 지아비로 뫼시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지금부터 제가 올리는 말씀을 귀에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들으시옵소서. 하늘이 주신 이 엄청난 재물을 얻었다 하여 하루아침에 동네방네 떠벌리고 비단옷을 사 입고 다녔다간, 관아에서 역적의 은닉 재물을 훔친 대역 죄인으로 몰려 당장 목이 달아나고 끔찍한 옥살이를 하거나, 소문을 듣고 몰려든 동네 화적 떼의 표적이 되어 며칠 안에 뼈도 못 추리고 개죽음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칠성이는 옥분이의 날카롭고 예리한 지적에 잠에 취해있던 정신이 번쩍 들며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당장 동네방네 돈을 뿌리며 자랑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던 자신의 아둔함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이 어마어마한 돈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느냐! 궤짝에 있는 돈을 평생 다시 땅에 묻어두고 구경만 하며 거지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물론입니다. 제게 묘안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우선 날이 밝기 전에 서방님은 어서 나가 저 마당 담장 밑에 있는 궤짝을 다시 원래대로 흙으로 덮고 잡초를 얹어, 아무도 파낸 흔적을 눈치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위장해 두시옵소서. 그리고 저와 함께 이 챙겨 온 엽전과 금괴만 가슴에 품고, 오늘 밤 아무도 모르게 이 지긋지긋한 마을을 떠나 한양으로 야반도주를 감행할 것입니다. 복잡하고 넓은 한양 땅에 도착하면, 제가 이 금괴 하나를 잘게 쪼개어 장사 밑천을 마련하여 비단과 인삼을 파는 큰 포목점을 차리겠습니다. 서방님은 과거의 그 망나니 칠성이가 아니라, 몰락했지만 뼈대 있는 가문의 양반 자제 행세를 철저하게 하시며 신분을 완벽하게 세탁하셔야 합니다. 돈으로 번듯한 족보를 사들이고 탐관오리들에게 뇌물을 넉넉히 바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벼슬과 진짜 양반의 힘을 기른 뒤에야, 저 낡은 담장 밑에 묻어둔 진짜 궤짝을 온전히 그리고 합법적으로 우리의 것으로 당당하게 파낼 수 있습니다."
옥분이의 치명적이고 완벽한, 앞날을 내다보는 기가 막힌 지략에 칠성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릎을 탁 치며 크게 감탄했습니다.
"과연! 과연 하늘이 내린 내 색시의 지혜가 삼국지의 제갈공명 뺨을 치고도 남겠구나! 네 말이 백번, 천 번 지당하다. 내 너의 말대로 하마! 내 오늘부터는 촌구석의 찌질한 망나니 칠성이가 아니라, 네가 지시하는 대로 글을 읽고 뼈대 있는 양반 행세를 세상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낼 것이다! 넌 나의 아내이자, 이 칠성이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스승이다!"
두 사람은 그날 밤, 훗날을 위해 꼭 필요한 금괴 두어 개와 엽전 몇 꾸러미만 깊숙이 챙긴 뒤, 폭우로 물러진 마당의 궤짝을 다시 단단히 흙으로 묻고 나뭇가지로 덮어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습니다. 그리고 달빛조차 숨은 야심한 시각, 봇짐을 메고 아무도 모르게 마을을 빠져나와 거대한 부와 새로운 신분을 향해 한양으로 비밀스러운 야반도주를 감행했습니다.
한양 한복판에 무사히 도착한 옥분이는 특유의 총명함과 뛰어난 장사 안목으로 챙겨 온 금괴를 아무도 모르게 현금화하여 커다란 포목점과 약재상을 차렸습니다. 칠성이는 옥분이의 빈틈없는 내조 덕분에 최고급 비단옷을 쫙 빼입고 점잖게 수염을 기른 채, 그럴듯한 몰락 양반 행세를 하며 상단의 얼굴마담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습니다. 워낙 타고난 넉살이 좋고 사람을 능구렁이처럼 구워삶는 재주가 탁월했던 터라, 칠성이의 상단은 한양 바닥에서 날개 돋친 듯 무섭게 번창하며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옥분이의 철저하고 은밀한 계획 아래, 칠성이는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가장 훌륭한 뼈대의 족보를 사들였고, 고위 벼슬아치들에게 뒷돈을 아낌없이 바쳐 결국 당당히 진짜 양반의 신분과 벼슬자리까지 얻어내며 거칠 것 없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 6: 돈으로 신분을 사고 당당한 양반으로 거듭난 부부의 해피엔딩
어느덧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이제 칠성이는 더 이상 경상도 촌구석 주막을 전전하며 빌어먹던 한심한 망나니가 아니었습니다.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거상이자, 임금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막강한 재력과 뼈대 있는 족보를 갖춘 어엿하고 위풍당당한 대감마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옥분 역시 촌부의 바느질 품팔이나 하던 과부의 비참한 꼬리표를 완벽하게 떼어내고, 수십 명의 하녀를 거느리며 최고급 비단 치마를 휘날리는 고고하고 우아한 정경부인의 완벽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양에서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하고 막강한 권력의 비호까지 받게 되었을 무렵, 칠성이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칠성이는 수십 명의 무장한 가마꾼과 건장한 사병들, 그리고 곡괭이를 든 인부들을 위풍당당하게 대동하고, 과거 자신이 진흙탕을 뒹굴며 살던 그 경상도의 작은 마을로 금의환향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요란한 징소리와 함께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휘감고 거대한 가마에서 내리는 칠성이와 옥분이를 보며, 과거의 그 찌질했던 망나니와 가난한 과부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그저 엄청난 고관대작이 행차한 줄로만 알고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었습니다.
칠성이는 엎드린 옛 동네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하고 호탕한 미소를 지은 뒤, 군사들을 이끌고 옛 옥분이의 낡은 기와집 마당으로 늠름하게 향했습니다. 집은 십 년 동안 비바람을 맞아 반쯤 무너져 있었지만, 담장 밑의 그 자리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봐라! 이 낡고 허름한 집은 내가 과거 세상을 등지고 신분을 숨긴 채 이 마을에 잠시 은거할 때, 나의 고귀한 부인과 하늘의 인연을 맺은 참으로 뜻깊은 곳이다. 내 이 기와집을 전부 허물고 새롭게 으리으리한 서원으로 단장할 터이니, 우선 저기 잡초가 무성한 담장 밑을 하나도 빠짐없이 몽땅 파헤치거라!"
칠성이의 위엄 넘치는 벼락같은 호통에 건장한 인부들이 일제히 곡괭이와 삽을 들고 달려들어, 과거 칠성이가 비 오는 밤 짐승처럼 파묻어두었던 담장 밑 진흙을 무서운 속도로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거대한 무쇠 철제 궤짝이 십 년 묵은 흙투성이가 된 채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마당 한가운데로 육중하게 끌어올려 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문을 듣고 달려온 관아의 사또와 포졸들조차 그 어마어마한 궤짝의 크기와 위압감에 압도되어 숨을 죽인 채 마른침만 꿀꺽 삼켰습니다.
"잘 보거라! 이것은 내 조상 대대로 막대한 부를 누리며 물려받아 잠시 이 척박한 땅에 안전하게 묻어두었던 우리 가문의 정당한 재물이다. 이제 내가 한양에 자리를 잡고 대업을 이루었으니, 이 조상의 유산을 다시 거두어갈 것이다!"
칠성이가 만천하에 당당하게 거짓을 진실처럼 선언하며, 인부들을 시켜 궤짝의 낡은 뚜껑을 거칠게 열어젖혔습니다. 그 안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수만 냥의 황금과 백은, 그리고 엽전 꾸러미들의 눈부신 빛에 온 마을이 대낮처럼 환해지며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신분과 막강한 권력, 그리고 재물을 모두 완벽하게 손에 쥔 대감마님 칠성이를 감히 역적의 돈이라 의심하거나 막아설 자는 이 조선 땅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칠성이는 궤짝의 보물들을 여러 대의 튼튼한 수레에 나누어 싣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 넓고 화려한 가마 안에서 자신을 향해 고혹적이고 깊은 미소를 짓는 옥분이의 고운 손을 두 손으로 꽉 맞잡았습니다.
"부인,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빗속에서 당신의 낡은 담장을 미친 듯이 훔쳐보며 땅을 파던 그 날 밤의 객기가, 결국 나를 이 조선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로 완벽하게 이끌었구려. 만약 당신의 그 뛰어난 지략과 앞을 내다보는 눈이 아니었다면, 난 그저 돈 자랑이나 하다 관아에 끌려가 목이 잘렸을 것이고 이 거대한 노다지는 한낱 허망한 신기루로 끝났을 것이오."
옥분이는 칠성이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며 나지막하고 은은한 목소리로 화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서방님. 서방님의 그 거침없는 짐승 같은 배포와 저를 향한 맹렬한 사랑, 그리고 폭우를 뚫고 진흙을 파내던 그 투지가 없었다면, 저 역시 평생 가난하고 멸시받는 과부로 늙어 비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늘이 맺어준 기막히고도 완벽한 황금빛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두 부부는 흔들리는 가마 안에서 서로를 꽉 부둥켜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통쾌하고 호탕한 웃음을 길게 터뜨렸습니다. 마을의 천덕꾸러기 빈털터리 망나니와 가난하고 외롭던 과부가 만나, 폭풍우 치는 밤 빗속의 철제 궤짝 하나로 완벽하게 엮어낸 기상천외한 신분 상승과 부귀영화의 유쾌한 질주. 그들의 거짓말 같은 인생역전 스토리는 훗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끝없이 전해지며, 듣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기막히고도 통쾌한 노다지 야담의 전설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엔딩 멘트
오늘 밤 쏟아지는 빗속에서 터진 망나니 총각과 과부의 통쾌하고도 유쾌한 인생역전 이야기, 어떠셨나요? 질척이는 흙탕물 속에서 발견한 엽전 궤짝 하나, 그리고 여인의 지혜가 만나 두 사람의 인생을 떵떵거리는 양반으로 완벽하게 바꿔놓았습니다. 우리 구독자님들의 삶 속에도 언제 어디서 이처럼 묵직한 궤짝 같은 뜻밖의 기막힌 행운이 묻혀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밤, 담장 밑에서 금은보화가 와르르 쏟아지는 짜릿하고 기분 좋은 대박 꿈 꾸시길 바라며, 내일 하루도 금빛 찬란한 행운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편안하고 달콤한 밤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