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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을 살려준 과부가 받은, 부으면 차오르는 호리병 『동패낙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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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죠! 따라내면 콸콸콸 다시 차오르는 기상천외한 마법의 술병이 나타났습니다! 장터에서 횟감이 될 뻔한 거북이를 전 재산 털어 살려줬더니, 용왕님이 내리신 어마어마한 특급 보너스! 마음씨 고운 과부의 요절복통 대박 주막 개업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장터의 위기, 횟감이 될 뻔한 거북을 구출하라!

    아침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 왁자지껄한 활기로 가득 찬 장터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들이 파닥거리는 소리, 방금 쪄낸 뽀얀 떡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냄새, 그리고 물건 값을 흥정하느라 목청을 높이는 상인들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한데 어우러져 장터 특유의 신명 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이 시끌벅적한 장터 한가운데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머리에 하얀 무명 수건을 정갈하게 두르고, 낡았지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젊은 과부였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삶의 고단함 대신 언제나 봄볕 같은 다정한 미소가 머물러 있어,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녀를 '마음씨 고운 댁'이라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남편을 일찍 여의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참으로 따뜻한 심성을 가진 여인이었지요.

    오늘은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과부의 품속에는 지난겨울 내내 남의 집 바느질 품을 팔아 푼푼이 모아둔, 그녀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낡은 비단 쌈지가 조심스레 품어져 있었습니다. 이 귀한 돈으로 시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통통한 마른명태 한 마리와 번듯한 유과라도 조금 사볼까 하여 이리저리 어물전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참이었습니다. "오늘은 날이 참 좋으니 물건들도 실하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던 과부의 발걸음이 돌연 한곳에 멈추어 섰습니다. 장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물전 한구석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이 동한 과부가 발돋움을 하며 인파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그곳에는 산적같이 험악한 인상에 뱃살이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어물전 주인이 소매를 걷어붙인 채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을 허공에 번쩍 들고 서 있었습니다.

    "자자! 다들 눈 크게 뜨고 똑똑히들 보쇼! 이놈이 바로 오늘 새벽, 저 깊은 칠성통 앞바다에서 그물에 떡하니 걸려 올라온 천년 묵은 대왕 거북이올시다! 솥뚜껑만 한 이 등딱지 무늬 좀 보쇼!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 않소? 이 신령스러운 놈의 피를 마시면 굽은 허리가 대나무처럼 쫙 펴지고, 고기를 푹 고아 먹으면 누워있던 앉은뱅이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춘다는 전설의 영약이란 말이오! 자, 오늘 이 귀한 놈을 내 특별히 싼값에 각을 떠서 팔 테니, 약 기운 필요하신 분들은 얼른 줄들 서시오!"

    어물전 주인의 쩌렁쩌렁한 호객 소리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어떤 이는 지갑을 뒤적거렸고, 어떤 이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거북의 자태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과부 역시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그 진귀하다는 대왕 거북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천년을 묵었다는 그 거대한 거북이는, 두꺼운 밧줄에 온몸이 칭칭 감긴 채 바닥에 뒤집혀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과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바로 거북이의 두 눈이었습니다. 사람의 눈망울처럼 크고 맑은 두 눈에서 굵고 투명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려 건조한 흙바닥을 까맣게 적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아는 듯, 그 눈빛은 너무나도 애처롭고 서글퍼 보였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한낱 미물인 줄만 알았는데 저렇게 서럽게 눈물을 흘리다니. 살고 싶어 저리 애원하며 울고 있는 것을 어찌 모른 척한단 말인가. 저 불쌍한 생명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과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깊은 연민이 밀려왔습니다. 그녀는 차마 그 잔인한 광경을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시퍼런 칼날이 무자비하게 허공을 가르고 거북이의 목을 내리치려는 찰나, 과부는 자신도 모르게 억눌렀던 숨을 토해내며 인파를 헤치고 튀어나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그 칼 당장 내려놓으셔요!"

    갑작스러운 난입에 어물전 주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허공에 든 칼을 멈칫했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일제히 숨을 죽이고 과부를 쳐다보았지요. 덩치가 산만 한 주인은 갑자기 끼어든 가냘픈 과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습니다.

    "아니, 이보쇼. 지금 한창 물오른 장사 시작하려는데 웬 훼방이오? 비싼 돈 주고 거북 고기 한 덩이 살 거 아니면 당장 비키쇼! 아침부터 재수 없게스리 웬 여정네가 나서서 초를 쳐!"

    어물전 주인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윽박지르자, 과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 깊은 곳에 간직해둔 낡은 비단 쌈지를 꺼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 제사상 비용은 물론이고, 다가올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푼푼이 모아둔 그녀의 전 재산이 들어있는, 그녀의 목숨줄과도 같은 쌈지였습니다. 하지만 과부의 눈에는 오직 눈물을 흘리는 불쌍한 거북이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 그 거북이, 제가 사겠습니다! 제발 죽이지 마시고 저에게 파셔요!"

    "뭐요? 댁이 이걸 산다고? 하하하! 아이고, 내 배야! 이보쇼, 아주망. 이놈이 얼마나 귀한 놈인 줄 알고 하는 소리요? 댁이 가진 그 얄팍한 쌈지 다 털어봐야 이놈 발톱 하나, 아니 비늘 한 조각도 못 살 텐데? 어디서 장난질이오!"

    "여기! 여기 있는 돈 전부 드리겠습니다! 닷 냥이 넘어요.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제발, 그 거북이를 제게 넘기셔요. 부탁드립니다."

    과부가 쌈지를 통째로 주인의 큼지막한 손에 쥐여주자, 주인의 눈매가 매섭고 교활하게 변하며 쌈지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짤랑거리는 은전과 엽전들을 꼼꼼히 확인한 주인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사실 닷 냥이면 이 장터 어물전의 웬만한 생선을 절반은 쓸어 담고도 남을 엄청난 큰돈이었습니다. 아무리 천 년 묵은 거북이라 한들 닷 냥이라는 거금을 주고 살 사람은 이 시골 장터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주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거북이 한 마리 값으로는 턱없이 비싸고 넘치는 금액이었습니다.

    "허허, 이거 참. 내가 이 영물 중의 영물을 그깟 닷 냥에 넘길 수는 없지만, 아주망이 저리도 간절하게 애원을 하니 내 특별히 선심 쓰는 셈 치고 넘기리다. 자, 가져가쇼! 어휴, 웬 실성한 여정네 덕분에 오늘 아침부터 수지맞았네! 자자, 구경 끝났으니 다들 돌아가쇼!"

    주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돈쌈지를 품속 깊숙이 챙겨 넣고는 거북이를 묶어둔 굵은 밧줄을 과부의 발밑으로 툭 던져주었습니다. 구경꾼들은 그 광경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 귀한 거금을 저런 징그러운 미물한테 쓴단 말이야?", "제정신이 아니구먼. 과부가 겨울에 굶어 죽으려고 환장했지.", "어차피 잡아먹지도 못할 거 뭐 하러 돈을 버린담?" 하며 여기저기서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과부는 사람들의 비웃음과 수군거림에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차가운 흙바닥에 주저앉아 거북이를 옭아매고 있던 거친 밧줄을 정성껏 하나하나 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거북이의 살갗에 밧줄 자국이 깊게 파인 것을 보며 과부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가, 많이 놀랐지? 아프진 않니? 괜찮다, 이제 다 괜찮아. 내가 널 다시 푸른 바다로 돌려보내 주마."

    과부의 다정하고 떨리는 목소리에 거북이는 눈물을 멈추고 껌벅껌벅 크고 맑은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치 은인을 알아보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밧줄을 모두 풀어낸 과부는 끙끙대며 솥뚜껑만 한 거북이를 힘겹게 자신의 가녀린 등에 업었습니다. 어찌나 무거운지 단번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과부의 발걸음은 귀한 생명을 구했다는 벅찬 기쁨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습니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조롱 섞인 비웃음 소리는 이미 그녀의 귓가에 닿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커다란 생명을 무사히 고향인 바다로 돌려보내야겠다는 굳은 다짐과 책임감만이 그녀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 2: 바다로 간 거북과 수상한 보은의 술병

    마을 뒤편으로 길게 이어진 험준한 산고개를 넘어 인적이 드문 고요한 바닷가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은, 연약한 과부에게는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솥뚜껑만 한 거북이의 무게는 걸음을 내디딜수록 천근만근으로 느껴졌고, 그녀의 이마와 콧등에는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올라 거칠게 헐떡였고, 얇게 엮은 짚신을 신은 두 발은 뾰족한 돌부리에 차이고 가시덤불에 긁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요. 하지만 과부는 단 한 번도 불평을 내뱉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등에 업힌 거북이가 불편할까 봐, 가파른 길을 오를 때면 자신의 허리를 더 깊이 숙였고 험한 길에서는 행여 떨어질까 두 손으로 거북이의 등딱지를 단단히 부여잡았습니다.

    "조금만 참아라, 아가. 저 고개만 넘으면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릴 게야. 무사히 고향으로 보내줄 테니 조금만 더 힘을 내렴."

    과부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끊임없이 거북이를 달래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언덕을 넘어 시원한 바닷바람이 훅 하고 뺨을 스치고, 눈앞에 코발트빛 푸른 바다가 끝없이 탁 트이게 펼쳐지자, 그녀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고운 모래사장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조심, 또 조심스레 등에 업혀 있던 거북이를 모래 위로 내려놓은 과부의 얼굴에는 피로도 잊은 환한 안도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넌 대체 바닷속에서 무얼 먹고 이리 무거운 거니. 자, 다 왔다. 눈앞에 보이는 저 푸른 물결이 네 집이다. 어서 네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다신 인간들이 쳐놓은 몹쓸 그물 같은 데 걸리지 말고, 깊고 깊은 바닷속 안전한 곳에서 오래오래 평안히 살아야 한다. 알겠지?"

    과부는 거북이의 딱딱하고 거칠거칠한 등딱지를 부드러운 손길로 여러 번 쓰다듬어 주며 빙그레 웃어 보였습니다. 거북이는 엉금엉금 모래밭을 기어 바닷물 쪽으로 향하다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파도가 찰랑이는 물가에 이르자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땀에 흠뻑 젖은 채 자신을 미소로 배웅하는 과부를 지그시 바라보았지요. 그 눈빛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감사와 아쉬움이 서려 있는 듯했습니다. 이내 거북이는 모래바닥에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마치 인간이 절을 하듯 세 번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나, 영물은 참으로 영물인가 보네. 하찮은 미물인 줄 알았더니 은혜를 알고 절을 다 할 줄 안다니.'

    과부가 신기하고 대견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거북이는 마침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깊고 푸른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거북이가 남긴 작은 물보라조차 사라지고 잔잔한 파도만이 넘실대는 평온한 바다를 보며, 과부는 그제야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습니다.

    "휴우,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나. 저 녀석이 무사히 돌아가는 걸 보니 내 마음이 다 시원하다. 그나저나 전 재산을 다 털어버렸으니 당장 오늘 저녁 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제수용품은커녕, 내가 끓여 먹을 좁쌀 한 줌조차 남지 않았네. 허허,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사람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내일 동이 트는 대로 당장 남의 집 품팔이라도 잰걸음으로 다니며 삯바느질거리를 찾아봐야지."

    과부는 텅 비어버린 납작한 주머니를 툭툭 치며 애써 긍정적인 마음으로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비록 배는 고프고 살길은 막막해졌지만,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는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잔잔하던 바다 한가운데서 집채만 한 거대한 파도가 솟구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쿠르르릉!" 하는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좌우로 쫙 갈라지더니, 그 깊은 틈새에서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오색 빛기둥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올랐습니다.

    "아아악! 저, 저게 무어야! 갑자기 웬 해일이람!"

    깜짝 놀란 과부가 중심을 잃고 모래사장에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소리쳤습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살며시 떠보니, 신비로운 오색 빛기둥이 서서히 걷히며 그 자리에는 아까 방금 자신이 바다로 돌려보냈던 그 커다란 대왕 거북이가 바닷물 위로 둥둥 떠올라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기이하게도 거북이의 넓은 등 위에는, 머리에 화려한 산호관을 쓰고 금실로 수를 놓은 번쩍이는 비단옷을 입은 참으로 신비로운 차림새의 노인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은 마치 평지를 사뿐사뿐 걷듯 출렁이는 바닷물 위를 걸어와 과부의 눈앞 모래사장까지 다가왔습니다.

    "놀라지 마시오, 마음씨 고운 부인. 나는 저 깊고 깊은 바닷속 용궁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용왕님의 어명으로 온 시종이외다."

    "요, 용궁이요? 용왕님? 아이고, 쇤네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구만요! 그저 장터에서 죽어가는 불쌍한 거북이 한 마리 전 재산 털어 사서 풀어준 죄밖에 없습니다요!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과부가 너무 놀라 바들바들 떨며 모래바닥에 두 손을 싹싹 빌며 납작 엎드리자, 노인은 인자한 눈빛으로 허허허 너그러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겁먹을 것 하나 없소이다. 부인이 오늘 장터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살려준 저 거북이가 누구인지 아시오? 저분은 바로 우리 용왕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하나뿐인 늦둥이 왕자님이시라오. 세상 물정 모르고 호기심에 인간 세상 구경을 나갔다가 그만 몹쓸 어부의 그물에 걸려 꼼짝없이 횟감이 될 뻔한 것을, 부인의 크나큰 자비와 희생으로 목숨을 구했으니 어찌 우리 용궁에서 그 크나큰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있겠소."

    노인은 깊은 감사를 표하며 품속에서 옥빛이 영롱하게 감도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매끈한 호리병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어 과부의 두 손에 꼭 쥐여주었습니다. 호리병에서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받으시오. 이것은 용궁의 가장 깊은 보물 창고에 수천 년간 보관되어 오던 전설의 마법 술병이오. 겉보기엔 그저 조그맣고 평범한 병 같지만, 맑은 우물물을 딱 한 바가지 붓기만 하면 그 물이 천하의 진미라 할 수 있는 최고급 명주로 변하여 병 안에 가득 찰 것이오. 게다가 한 잔을 따라내면 곧바로 다시 한 잔이 차오르고, 커다란 항아리 열 개를 가득 따라내면 또다시 항아리 열 개 분량이 차오르니, 영원히 퍼내어도 퍼내어도 절대 마르지 않는 신비한 화수분 술병이라오. 부인의 고운 심성과 숭고한 희생에 대한 우리 용왕님의 작은 선물이니, 부디 거절 말고 기쁘게 받으시구려."

    노인은 온화한 미소를 남긴 채 다시 거북이의 넓은 등에 올라탔고, 거북이는 과부를 향해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건넨 뒤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순식간에 바다 깊은 곳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거대한 소용돌이도, 찬란한 빛기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파도는 다시금 고요해졌지요. 덩그러니 모래사장에 홀로 남겨진 과부는 자신의 두 손에 들린 영롱한 옥빛 호리병과 텅 빈 바다를 번갈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습니다.

    '이게 대체 꿈이야, 생시야? 장터에서 산 거북이가 용왕님의 아들이었다니! 그걸 살려준 것도 모자라, 부으면 차오르는 마법의 술병을 선물로 받다니! 아니, 근데 기왕 은혜를 갚으실 거면 당장 밥 사 먹을 수 있는 번쩍이는 금은보화나 비단 뭉치를 주실 것이지, 하필 당장 배도 안 차는 웬 술병을 주신담? 난 평생 술 한 모금도 입에 대본 적이 없는데!'

    과부는 아쉬운 마음에 호리병을 귀에 대고 살짝 흔들어 보았습니다. 찰랑거리는 물소리 하나 없이 병 속은 텅텅 비어있는 듯 무척이나 가벼웠습니다. 의심스러운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올랐지만, 그래도 명색이 용왕님이 주신 보물이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호리병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한 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과부의 발걸음은, 아까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어딘지 모를 기대감에 차 사뿐사뿐 가볍기만 했습니다.

    ※ 3: 마르지 않는 술병, 전설의 대박 주막 탄생

    저녁놀이 붉게 물드는 시각, 초라한 초가집으로 돌아온 과부는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녀의 두 손에는 여전히 바다에서 가져온 옥빛 호리병이 들려 있었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옥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답긴 했지만, 아침부터 굶은 탓에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쳤고, 당장 오늘 저녁부터 끓여 먹을 쌀 한 톨 없는 처지를 생각하니 이깟 빈 술병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용궁에서 온 사신 영감이 한 말인데, 거짓말은 아니겠지? 어디, 그 신비한 요술이 진짜인지 거짓부렁인지 당장 확인이나 해볼까. 물이 진짜 술로 변한다면 어떻게든 팔아서 좁쌀이라도 살 수 있을 테니.'

    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바가지 하나를 들고 마당 한구석에 있는 우물로 가, 차갑고 맑은 물을 한 바가지 가득 길어 올렸습니다. 그러고는 부엌 흙바닥에 옥빛 호리병을 세워두고, 입구에 조심스레 물을 졸졸졸 부어 넣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호리병은 기껏해야 과부의 두 주먹을 합친 것만 한 작은 크기였는데, 그 커다란 바가지에 담긴 물이 한 방울도 바깥으로 넘치지 않고 쏙 빨려 들어가듯 호리병 속으로 끝없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나 세상에! 이 작은 병에 이 많은 물이 대체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밑이 뚫린 것도 아닌데!"

    물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들어가자, 놀란 과부가 얼른 호리병의 뚜껑을 닫고 두 손으로 쥐어 가볍게 한두 번 위아래로 흔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병 꼭지에서 '펑!' 하는 경쾌하고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코끝을 찌르는 아찔하게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좁은 부엌을 넘어 온 집안에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과부의 평생을 통틀어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꽃향기 같기도 하고 잘 익은 과일 향 같기도 한 참으로 깊고 그윽한 술 냄새였습니다.

    냄새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킨 과부는, 허둥지둥 찬장으로 다가가 가장 깨끗한 사기그릇 하나를 꺼내왔습니다. 그리고 가슴을 콩닥콩닥 졸이며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며 호리병을 기울여 그릇에 내용물을 따랐습니다.

    "쪼르르르르-"

    놀랍게도 아까 부었던 맑고 투명한 우물물은 온데간데없고, 호리병에서는 마치 꿀물처럼 황금빛이 감도는 걸쭉하고 윤기 나는 술이 맑은 소리를 내며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사기그릇 하나를 가득 채웠는데도, 호리병을 들어보니 여전히 묵직했고 병 안에서는 찰랑찰랑 액체가 가득 찬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진짜로 물이 술로 변했잖아! 빛깔 한번 참 곱기도 하지. 냄새가 이리 기가 막힌데, 대체 맛은 어떨까?'

    과부는 홀린 듯이 두 손으로 사기그릇을 들어 올려 조심스레 입술을 대고 한 모금 꿀꺽 마셔보았습니다. 그 순간, 과부의 눈앞에 번쩍하고 오색찬란한 별이 튀는 듯했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술은 아침 이슬처럼 맑고 고왔으며, 입안에 남는 향기는 세상의 온갖 진귀한 꽃을 모두 모아 우려낸 듯 달콤하고 황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한평생 술맛이라곤 전혀 모르고 살았던 과부조차 단숨에 그릇 바닥을 싹싹 핥아 비울 만큼 기가 막힌 천상의 맛이었지요.

    "크아! 세상에 마상에! 달콤한 꿀물 같으면서도 톡 쏘는 청량한 과일 즙 같기도 한 게... 세상 천지에 어찌 이런 기막힌 맛이 날 수가 있지? 게다가 목구멍을 넘어가자마자 뱃속이 뜨끈해지는 게, 아침부터 굶어 풀렸던 다리에 기운이 번쩍 솟아나네!"

    과부는 너무나 신기하고 신이 나서 비어버린 사기그릇에 다시 호리병을 기울였습니다. 쪼르르르- 맑은 소리와 함께 황금빛 술은 여전히 기세 좋게 쏟아져 나와 그릇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무리 따라내고 또 따라내어 빈 독을 채워 보아도, 호리병은 마치 처음 물을 가득 부었을 때처럼 묵직함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야말로 아무리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전설 속의 화수분이었던 것입니다!

    '옳거니! 내 비록 전 재산을 털어 불쌍한 거북이한테 다 바쳤지만, 이 요술 술병만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절대 없겠구나! 그래, 이 기가 막힌 술로 당장 장사를 시작해보자! 이 맛이라면 양반이든 평민이든 줄을 서서 먹으려 할 게야!'

    희망에 찬 과부는 그 길로 헛간에서 굴러다니던 낡은 널빤지를 가져다 대문 밖에 내걸고는, 숯검정을 개어 삐뚤빼뚤하지만 정성스럽게 '용궁 주막'이라는 커다란 글자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 낡은 평상에 멍석을 깔고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에서 땔감을 잔뜩 짊어지고 내려오던 이웃 마을 촌장 어르신과 건장한 사내들 몇 명이 과부네 집에서 풍기는 진동하는 술 냄새를 맡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아니, 과부댁. 당장 끼니 이을 쌀도 떨어졌다면서 무슨 돈이 있어서 갑자기 대문짝만하게 주막을 차렸는가? 그나저나 이 집에서 아까부터 웬 기가 막히게 좋은 냄새가 온 동네 진동을 하는데, 혹시 귀한 술이라도 빚었소?"

    "아이고, 어서 오셔요, 어르신들! 마침 제가 아주 우연히 기가 막힌 명주를 한 병 얻었는데, 오늘 주막 개업 기념으로 첫 잔은 돈 안 받고 공짜로 대접해 드릴 테니 여기 평상에 앉아 한번 맛이나 보셔요."

    과부는 특유의 넉살 좋고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사내들을 평상에 앉히고는, 부엌에서 가져온 커다란 주전자에 호리병의 술을 콸콸콸 따라 부었습니다. 주전자가 가득 차서 흘러넘칠 정도가 되었는데도 호리병은 여전히 마법처럼 무거웠지요. 과부가 찰랑찰랑 넘치도록 부은 황금빛 술잔을 사내들 앞에 하나씩 놓아주자, 그들은 '공짜 술이니 맛이나 보자'는 의심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잔을 입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모금을 삼킨 순간! 사내들의 두 눈이 화들짝 놀라 이마 밖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습니다. 지게를 내려놓던 사내는 지게 작대기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카아아앗! 이, 이것이 대체 무슨 술이란 말인가! 내 평생 조선 팔도의 수백 군데 주막을 다 돌아다니며 온갖 막걸리와 청주를 다 맛보았지만, 이토록 향기롭고 목 넘김이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술은 맹세코 처음 먹어보네!"

    "그러게나 말일세! 술 한 모금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고, 온몸에 불끈불끈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기분이야! 과부댁, 공짜는 무슨 공짜! 여기 내 주머니에 있는 엽전 다 줄 테니, 당장 큰 주전자로 한 주전자 가득 더 가져오시게!"

    사내들은 흥분하여 주머니에 있던 엽전과 은전을 평상 위에 와르르 쏟아부으며 앞다투어 술을 더 내오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들이 연거푸 감탄사를 내뱉으며 술잔을 들이켜는 소리와, 대문 밖을 넘어 저 멀리 장터까지 퍼져나간 그 기막힌 술 냄새는 순식간에 온 마을 사람들을 홀려놓았습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좁은 '용궁 주막' 앞은 금세 발 디딜 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체통을 중시하며 헛기침을 하던 선비들부터, 하루 종일 밭을 매다 흙투성이인 채로 뛰어온 농부들, 심지어는 저 멀리 이웃 마을의 원님까지 변복을 하고 몰래 찾아와 줄을 설 정도였지요. 과부는 작은 호리병 하나를 쥔 채 커다란 술독에 쉴 새 없이 술을 따라 붓고 또 부었습니다. 퍼내고 퍼내도 끝없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황금빛 술방울과 함께, 텅 비어 쥐구멍만 하던 과부의 낡은 돈궤에는 어느새 은전과 엽전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전설의 대박 주막이 탄생하는 가슴 벅찬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4: 술 냄새 맡고 온 장똘뱅이의 직진 청혼

    퍼내고 퍼내도 절대로 마르지 않는 신비한 호리병 덕분에 과부의 '용궁 주막'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하루가 다르게 번창해 나갔습니다. 아침 해가 산머리에 걸리기도 전부터 주막 앞에는 술맛을 보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고, 달이 중천에 떠올라 밤벌레가 우는 깊은 밤이 될 때까지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일 줄을 몰랐습니다. 주막 앞마당은 늘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흥겨운 노랫소리, 그리고 코끝을 아찔하게 맴도는 진하고 달콤한 술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과 장터 상인들만 알음알음 찾아오던 곳이었지만, 이 기막힌 명주의 술맛에 대한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순식간에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조선 팔도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과부댁 주막에서 파는 황금빛 술을 딱 한 잔만 들이켜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고, 세 잔을 연거푸 마시면 앓아누웠던 사람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 지게를 진다더라!" 하는 과장 섞인 소문까지 돌며, 매일같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지요. 과부는 밀려드는 손님들을 치르느라 하루 종일 쉴 틈조차 없었지만, 고단함보다는 밀려드는 활기와 사람들의 웃음에 힘든 줄도 모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사람 키보다 높게 짐을 쌓아 올린 무거운 등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장터가 없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장똘뱅이 사내 한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을 어귀에 나타났습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에 검게 그을린 피부, 하지만 눈매만큼은 서글서글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다니는 이 사내는, 유독 코가 크고 후각이 예민하여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코'라 불리며 장터 바닥을 주름잡던 사내였지요. 평생을 거친 길 위에서 보내며 팔도의 온갖 명주란 명주는 죄다 맛보고 다녔다는 이 장똘뱅이 사내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는 킁킁거리며 큼지막한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공기 중에 아스라이 섞여 들어오는 한 줄기 기가 막힌 향기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허허! 대체 이 촌구석에서 이게 무슨 냄새란 말이냐! 달짝지근하면서도 톡 쏘고, 백 가지 꽃향기가 나는 듯하면서도 묵직하고 깊은 이 향기! 내 평생 수백 가지의 온갖 술 빚는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이토록 단숨에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미치도록 황홀한 향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로구나! 틀림없어! 저기 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 저 주막에서 나는 냄새렷다!"

    사내는 짊어지고 있던 등짐이 천근만근 무거운 줄도 잊은 채,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홀린 사람처럼 잰걸음으로 달려가 용궁 주막 앞마당에 당도했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손님들 틈바구니를 요리조리 뱀처럼 비집고 들어간 사내는, 마침내 펄펄 끓는 커다란 부뚜막 앞에서 쉴 새 없이 뚝배기에 국밥을 토렴하며 맑고 영롱한 황금빛 술을 뚝뚝 따라내고 있는 과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구슬 같은 땀방울을 소매로 스윽 닦아내며 손님들에게 환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과부의 모습은, 거친 바닥에서 평생을 굴러온 사내의 눈에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옥황상제의 선녀처럼 눈부시게 반짝거려 보였습니다.

    "주모! 여기, 여기 이 불쌍한 장똘뱅이에게도 그 기가 막힌다는 술 한 사발만 듬뿍 주시오! 내 먼 길을 걸어오느라 목이 타서 그러니, 오늘 이 술맛을 보지 못하면 당장 혀가 말라 숨이 꼴까닥 넘어갈 것 같소이다!"

    과부는 넉살 좋고 목청이 커다란 사내의 호통 섞인 농담에 까르르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큼지막한 사기 사발에 찰랑찰랑 넘치도록 황금빛 술을 가득 따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내밀었습니다.

    "아이고, 참으로 멀리서 오신 길손이신가 본데, 짐도 무거우신 분이 그리 급하게 드시다가는 단단히 체하실라. 여유를 가지시고 천천히 드셔요. 모자라면 얼마든지 더 내어 드릴 테니 안심하시고요."

    사내는 짐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사발을 공손하게 조심스레 받아 들었습니다. 먼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사발 위로 피어오르는 아찔한 향기를 가슴 깊은 곳까지 깊게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단숨에 꿀꺽꿀꺽 커다란 목울대를 굴리며 목구멍으로 술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크으으으으! 카아아아앗! 하아!"

    사발을 바닥까지 싹싹 핥듯 비워낸 사내의 입에서 마치 산중 호랑이의 포효 같은 엄청난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내는 번쩍 뜨인 맑은 두 눈으로 빈 사발과 빙그레 웃고 있는 과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 이것은 정녕 인간 세상의 술이 아니오! 천상의 이슬을 모아 빚은 것이 분명하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는 최고급 비단결처럼 한없이 부드럽더니, 뱃속에 들어가니 꽁꽁 언 한겨울 아랫목처럼 온몸의 혈관을 뜨끈하게 데워주는구려! 게다가 이 입안을 맴도는 달콤한 뒷맛은 마치 산삼과 꿀단지를 통째로 삼킨 것 같소! 세상에, 내 평생 길바닥을 떠돌며 숱한 유명하다는 주막을 다 거쳤건만, 이토록 완벽하고 황홀한 명주는 내 목숨을 걸고 맹세코 처음이오!"

    사내의 호들갑스럽고 요란한 극찬에 평상에 앉아 구경하던 손님들도 손뼉을 치고 맞장구를 치며 껄껄껄 웃어댔습니다. 하지만 사내가 받은 진정한 감동은 비단 술맛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술을 마시며 가만히 지켜보니,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부자 손님들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인데도, 과부는 낡은 옷을 입고 돈이 모자라 쭈뼛거리는 늙은 농부에게는 빙그레 웃으며 선뜻 공짜 술을 내어주고, 무거운 나무짐을 들고 가는 어린아이를 불러 세워서는 따뜻한 국밥을 고기까지 듬뿍 덤으로 얹어 먹여 보내는 등 한없이 따뜻한 인심을 베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곱고 착한, 계산 없는 맑은 마음씨를 두 눈으로 목격하자 거칠기만 하던 장똘뱅이 사내의 가슴이 쿵쾅쿵쾅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바로 저 여인이다! 저렇게 맑고 고운 심성을 가진 여인이라면, 내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외로웠던 마음을 뉘어도 좋겠구나! 저 여인을 위해서라면 내 남은 평생의 땀과 눈물을 바쳐 비바람을 막아주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다! 외롭고 고단했던 이 장똘뱅이 떠돌이 생활도 이젠 청산할 때가 되었어!'

    결심을 굳힌 사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던 자신의 무거운 등짐을 툭 하고 시원하게 풀어헤쳤습니다. 그 안에는 그가 전국 팔도를 십여 년간 돌아다니며 악착같이 모아둔 최고급 비단 두루마리며, 반짝이는 놋그릇이며, 영롱한 옥비녀 같은 귀한 물건들이 한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사내는 결연하고도 씩씩한 표정으로 부뚜막 앞의 과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습니다.

    "주모! 아니, 낭자! 내 오늘부로 이 지긋지긋한 장똘뱅이 짓은 영원히 때려치우겠소! 내가 비록 배운 것은 없고 얼굴은 투박하지만, 전국 팔도를 밑바닥부터 돌아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어 장사 수완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타고난 놈이오! 낭자는 그 안에서 기가 막힌 술을 빚어 내시고, 나는 낭자의 곁에서 이 바글바글한 손님들을 응대하고 진상을 쳐내며 이 주막을 고을 제일의 대궐처럼 키워보겠소! 낭자의 그 따뜻한 마음에 내 심장이 송두리째 베였으니, 나랑 짝을 지어 평생 이 주막에서 알콩달콩 원앙처럼 살아보지 않겠소?"

    수백 명의 손님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벼락처럼 터져 나온 사내의 거침없고 뚝심 있는 직진 청혼에, 시끌벅적하던 주막은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과부는 너무 놀란 나머지 국밥을 토렴하던 놋국자를 바닥에 쨍그랑 떨어뜨릴 뻔했고, 하얀 두 볼은 가을볕에 잘 익은 홍시처럼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어, 어머나! 초면에 대체 무슨 망발이셔요! 사람들 다 보는데 남사스럽게 시리 그런 농담은 거두셔요..."

    "농담이라니요! 맹세코 망발이 아니오! 내 비록 겉모습은 먼지를 뒤집어쓴 투박한 장똘뱅이오나, 낭자를 향한 이 속마음만은 방금 마신 맑은 명주보다 더 투명한 순정파란 말이오! 낭자의 그 고운 마음씨와 다정한 눈빛에 내 심장이 다 녹아내렸으니, 어쩌겠소! 내 당장 내일 아침부터 빗자루를 들고 마당쇠 노릇이라도 할 테니, 부디 나를 내치지 말고 거두어 주시오!"

    사내의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절절한 눈빛과 하늘을 찌를 듯한 우렁찬 목소리에, 숨죽여 지켜보던 손님들 사이에서 "오오!" 하는 커다란 환호성과 함께 천둥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망! 사내대장부가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나오는데 눈 딱 감고 한번 믿어보쇼!", "보아하니 허우대도 멀쩡하고 싹싹한 게 이 바쁜 주막 일 돕고 험한 일 막아주기엔 아주 제격이구먼!", "우리가 증인이 될 테니 얼른 받아주시오!" 하며 여기저기서 신이 나서 부추기는 통에 과부는 어쩔 줄을 몰라 치맛자락만 꽉 쥐며 쩔쩔맸습니다. 하지만 과부 역시 다부진 체격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사내의 씩씩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영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습니다. 얼굴을 붉힌 채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과부의 모습에 사람들은 한바탕 잔치가 열린 듯 기뻐했습니다. 불쌍한 거북이를 전 재산을 털어 살려주며 시작된 신비한 인연이, 이제는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갈 평생의 든든한 반려자까지 과부의 품으로 다정하게 데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 5: 퍼주면 퍼줄수록 차오르는 화수분 주막의 기적

    장똘뱅이 사내의 우렁차고 박력 있는 청혼이 있은 지 한 달 후, 마을에는 사흘 밤낮으로 풍악이 울리는 커다란 잔치판이 벌어졌습니다. 과부와 사내가 동네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드디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지요. 평생을 거친 장터 바닥을 떠돌며 산전수전 다 겪은 남편의 장사 수완과 특유의 넉살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기가 막혔습니다. 아내는 부엌에서 따뜻하고 푸짐한 국밥을 정성껏 토렴하고 부으면 차오르는 신비한 호리병에서 향긋한 명주를 쉴 새 없이 따라냈고, 남편은 쩌렁쩌렁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손님들을 맞이하며 주막의 흥을 돋우고 때로는 진상을 부리는 취객들을 솜씨 좋게 달래어 돌려보냈습니다. 부부의 이 찰떡같은 환상의 호흡 덕분에 '용궁 주막'은 날이 갈수록 무서운 기세로 번창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새던 낡은 초가집을 시원하게 허물고 그 자리에 으리으리하고 번듯한 기와집으로 주막을 새로 지어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아이고, 서방님. 어제 창고에 들어가 장부 정리를 새로 해보니, 곡간에 천장까지 쌓인 쌀가마니가 족히 백 가마는 훌쩍 넘고, 방 한구석에 둔 커다란 돈궤에는 은전과 엽전이 하도 꽉 차서 이젠 자물쇠 뚜껑이 안 닫힐 지경이어요. 평생을 굶주리며 살았던 제가, 살다 살다 이런 어마어마한 호사를 누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구만요."

    늦은 밤, 호롱불 아래서 무거워진 돈궤를 정리하던 아내가 감격스러운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남편도 껄껄 웃으며 고생한 아내의 어깨를 다정하게 주물러 주었습니다.

    "이게 다 당신이 평생을 착하고 바르게 살아온 덕분에 하늘과 용왕님이 내리신 크나큰 복 아니겠소. 아무리 퍼내어도 줄지 않는 이 화수분 술병이 우리 집안의 제일가는 보물이오. 그나저나 오늘 밤은 날씨가 제법 매섭고 쌀쌀해지는 것이, 곧 살을 에이는 듯한 무서운 겨울이 닥칠 모양이오. 올겨울은 눈도 많이 온다는데 걱정이구려."

    남편의 걱정스러운 말마따나 바깥에는 어느새 쌩쌩 칼날 같은 찬 바람이 불어닥치고, 하늘에서는 굵은 첫눈이 펑펑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하게 군불을 지핀 온돌방 아랫목에 마주 앉아있던 부부는, 거세게 문풍지를 때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에 문득 걱정이 되어 창문을 살며시 열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막 앞마당 너머, 잎이 다 떨어진 낡은 성황당 고목나무 아래에서, 얇고 남루한 홑적삼 옷차림의 노인 대여섯 명이 살을 에는 추위에 덜덜 떨며 위태로운 모닥불 하나에 의지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참혹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병들고 늙어 자식들을 여의었거나 갈 곳이 없어 이 마을 저 마을로 동냥을 다니며 연명하는 참으로 딱하고 불쌍한 노인들이었습니다.

    그 안타깝고 시린 광경을 바라보던 아내의 환했던 얼굴에 순식간에 깊은 수심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녀는 품속 깊은 곳에서 항상 지니고 다니던 영롱한 옥빛 호리병을 꺼내어 가만히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서방님,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 신비한 호리병 덕에 평생 구경조차 하지 못할 큰돈을 벌고, 눈비 맞지 않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이렇게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지내게 되었잖아요. 하지만 이 술병은 애초에 제가 가엾은 거북이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용왕님께 받은 은혜의 선물이어요. 그런데 이 넘치도록 과분한 복을 그저 우리 부부만 배부르다고 독차지하고, 저 밖에서 꽁꽁 얼어 죽어가는 불쌍한 이웃들을 모른 척 눈감는다면... 필시 하늘이 크게 노하시어 우리가 받은 이 복을 한순간에 다시 거두어 가시고 천벌을 내리실지도 몰라요."

    남편은 곁눈질로 밖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아내의 맑고 깊은 속내에 크게 감복한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습니다.

    "부인! 당신의 그 고운 마음씨에 내 어찌 반대하겠소! 당신 말이 백번 천번 지당하고 옳소! 우리가 지금 벌어들인 이 엄청난 돈과 재물은 오롯이 우리 것이 아니라, 저렇게 불쌍하고 굶주린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라고 하늘이 잠시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이 틀림없소. 당장 지체할 것 없이 내가 밖으로 나가 저 어르신들을 안으로 모시고 오리다! 오늘부터 우리 기와집 주막의 크고 따뜻한 뒷방은, 의지할 곳 없고 배고픈 늙은이들의 따뜻한 쉼터가 될 것이오!"

    부부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밖으로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서둘러 뛰어나가,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붙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노인들을 정성껏 부축하여 주막 안에서 가장 군불이 잘 들어오는 따뜻한 아랫목 방으로 모셨습니다. 아내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커다란 가마솥에 김이 펄펄 모락모락 나는 진하고 기름진 고기 국밥을 한가득 끓여내었고, 남편은 화수분 술병에서 향긋하고 몸을 데워주는 명주를 듬뿍 따라 노인들에게 정성스럽게 대접했습니다.

    "아이고, 이 귀하고 비싼 쌀밥과 고깃국을 우리 같은 냄새나고 다 죽어가는 늙은이들에게 이리 듬뿍 공짜로 내어주다니... 주모, 아니 마님. 정말 고맙소. 이 크나큰 은혜를 죽어서라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뜨거운 국밥 한 숟갈에 언 속을 달래고 달콤하고 뜨끈한 술 한 모금에 언 몸을 녹인 노인들은, 주름진 얼굴 위로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부부의 손을 꼭 잡고 연신 감사를 표했습니다.

    "어르신들, 그런 부담스러운 말씀일랑 거두셔요. 저희 집 술은 아무리 바가지로 퍼내어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 신비한 요술 술병에서 나오는 것이니, 갚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고 모자라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하셔요. 고기도 더 내어드릴 테니, 이 매서운 겨울눈이 다 녹아내릴 때까지 이곳 아랫목에서 편히 드시고 주무시어요."

    그날부터 마음씨 고운 부부의 대문 앞에는 커다란 방이 하나 붙었습니다. '돈이 없어 굶주리는 노인과 병자들에게는 언제든 국밥과 술을 무료로 대접하오니 주저 말고 들어오시오.' 이 믿기 힘든 헛소문 같은 이야기는 혹독한 겨울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가뭄의 단비처럼 빠르게 퍼져나갔고, 매일같이 수십 명의 가난한 이웃들이 눈길을 헤치고 주막을 찾아와 배불리 먹고 꽁꽁 언 몸과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부터 참으로 기이하고도 온 세상을 놀라게 할 엄청난 기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굶주리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선뜻 술을 퍼주기 시작한 바로 그날 밤부터, 늘 아내의 품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옥빛 호리병이 스스로 은은하고 신비로운 붉은빛을 뿜어내며 진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평소처럼 손님들에게 술병에서 술을 따라내자, 늘 찬란한 황금빛이던 술의 색깔이 마치 아침 해가 떠오르는 듯 붉은 노을빛으로 영롱하고 눈부시게 변해있었습니다.

    이 새롭게 변한 붉은 술의 효능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평생 농사일에 허리가 기역 자로 굽어 지팡이 없이는 단 한 걸음도 걷지 못하던 옆집 할머니가 이 붉은 술을 반 잔 마시더니, 우두둑 소리와 함께 굽은 허리가 활대처럼 쫙 펴져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걸어 나갔고, 십 년째 피를 토하는 해소기침을 앓아 오늘내일하던 아랫마을 할아버지는 국밥에 곁들여 단숨에 술을 들이켜고는 그 자리에서 기침을 뚝 멈추고 이십 대 청년의 팔팔한 기력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세상에 마상에, 부부의 한없이 착한 마음에 하늘과 용왕님이 크게 감동하시어 저 요술 술병이 아예 만병통치약 생명수로 변했구나! 저 부부는 살아있는 부처가 틀림없다!"

    사람들은 이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에 혀를 내두르며 부부의 숭고한 덕행을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습니다. 매일같이 수십 명의 가난한 자들에게 공짜로 귀한 술과 고기를 베푸느라 당연히 쌀독이 비고 적자가 나야 정상일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소문을 듣고 주막을 찾아오는 전국 방방곡곡의 돈 많은 부자 손님들과 양반들은 "저런 훌륭하고 의로운 부부가 운영하는 주막에서는 술값을 두 배, 세 배로 내야 마땅하다!"며 엽전 꾸러미와 금덩이를 앞다투어 산더미처럼 던져놓고 가는 통에, 곡간의 재물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세 배, 네 배로 미친 듯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퍼주면 퍼줄수록 내 곳간이 채워지고, 베풀면 베풀수록 복이 커지는 진정한 의미의 '화수분'의 기적이 부부의 주막에 찬란하게 내려앉은 것입니다.

    ※ 6: 복이 넝쿨째 굴러온 부부의 끝없는 해피엔딩

    그렇게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가난배기 과부와 장똘뱅이 사내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어느덧 십여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과거 조그맣고 허름했던 '용궁 주막'은 이제 웬만한 고을 사또의 관아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넓은 기와 대궐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막의 절반은 여전히 기막힌 붉은 명주를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백 명의 손님들로 벅적거리는 화려하고 거대한 객잔이었고, 나머지 절반의 수십 칸짜리 행랑채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조건 없이 거두어 무료로 먹이고 입히며 돌봐주는 거대한 구휼소이자 병원이 되어 있었지요. 밤낮으로 사람들을 챙기느라 부지런히 뛰어다닌 남편과 아내는 어느덧 이마에 깊은 주름이 훈장처럼 잡히고 머리엔 희끗희끗 세월의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평온하고 자애로운, 참으로 눈부신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이제 조선 팔도에 이 선행 베푸는 부부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감히 없었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고을 원님과 암행어사조차 주막을 지나갈 때면 말에서 내려 그들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이분들이야말로 진정 인간 세상에 내려온 살아있는 보살이요, 의인들이시다"라며 칭송과 존경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부부가 십여 년 전, 어물전에서 무자비한 식칼에 목숨을 잃을 뻔한 불쌍한 대왕 거북이를 전 재산을 털어 살려주어 푸른 바다로 돌려보낸 바로 그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부부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까지 수천 명을 빠짐없이 모두 불러 모아, 사흘 밤낮으로 꽹과리와 장구를 치고 고기 떡을 큼지막하게 돌리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커다란 잔치를 벌이곤 했습니다. 대궐 같은 앞마당에는 수십 개의 커다란 무쇠 가마솥이 일렬로 걸려 뽀얗고 진한 고깃국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고, 부자와 빈자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저마다 화수분 술병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온 영롱한 붉은빛 만병통치약 술을 한 잔씩 들고 덩실덩실 흥겹게 어깨춤을 추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잔치의 열기가 절정으로 무르익어갈 해 질 녘 무렵이었습니다. 왁자지껄한 주막의 커다란 솟을대문 너머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최고급 비단 도포를 차려입고 머리에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옥관자를 쓴, 참으로 범상치 않은 기품을 뿜어내는 노인 한 분이 매끄러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 들어왔습니다.

    "주인장 계시오. 내가 아주 먼 길을 오랫동안 걸어오느라 목이 타서 쓰러질 지경인데, 소문으로만 익히 듣던 그 기가 막힌 명주 한 잔 시원하게 얻어 마실 수 있겠소? 허나 참으로 딱하게도 내 수중에 가진 엽전이 단 한 닢도 없구려. 동냥이라도 좋으니 목만 축이게 해주시오."

    잔치가 한창인 와중에 불쑥 들어온 노인의 뜬금없는 소리에, 시끌벅적 구경하던 앞마당의 손님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허름한 차림새도 아닌 양반 행색을 한 이가 돈 한 푼 없이 구걸을 하니 이상할 법도 했지요. 하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히 무거운 음식 쟁반을 나르던 아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법 없이 조금도 망설이거나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얼굴에 활짝 핀 꽃 같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노인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참으로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용궁 주막은 돈이 없으셔도, 양반이든 상놈이든 언제든 배불리 드시고 쉬어갈 수 있는 넉넉한 곳이옵니다. 마침 오늘이 저희 부부에게 가장 뜻깊고 큰 잔칫날이니, 부디 안쪽 가장 편안한 상석에 앉아 마음껏 드시고 목을 축이시지요. 돈 걱정은 일절 마시옵소서."

    아내는 잰걸음으로 남편을 시켜 주막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옻칠 교자상에 갓 구운 고기와 산해진미를 떡 벌어지게 가득 차려내고, 손수 십 년째 품속에 간직해온 옥빛 호리병을 들어 노인의 빈 은잔에 찰랑거리도록 붉은 술을 정성껏 따랐습니다. 잔에 담긴 붉은 술에서는 그 넒은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황홀하고 깊숙한 꽃향기가 진동하며 피어올랐습니다. 노인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그 신비로운 향기를 여유롭게 음미하더니, 천천히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 술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허허허.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황홀하구나. 십 년 전 바닷가에서 내가 부인에게 처음 건네주었던 그 투명한 술보다 백 배, 아니 천 배는 더 맑고 달콤하고 깊어졌어. 사람의 고운 심성이 섞여 들어가니 선계의 술도 이리 맛이 변하는구먼."

    "네? 십 년 전 바닷가라니요...? 그게 대체 무슨..."

    깜짝 놀란 아내와 옆에 있던 남편이 숨을 헉 들이켜며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노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참으로 인자하고 신비로운 웃음을 지으며 허리까지 내려온 자신의 허연 수염을 스윽 쓰다듬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노인의 몸에서 태양보다 더 눈부신 찬란한 푸른 광채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에 앞마당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아이고 눈부셔라!" 하며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인 사이, 노인의 둥근 등 뒤로 거칠고 거대한 푸른 바다의 일렁이는 환영과 함께 힘차고 평화롭게 헤엄치는 커다란 대왕 거북이의 웅장한 형상이 아른거렸습니다.

    "마음씨 고운 부인, 그리고 든든한 서방. 나를 벌써 잊었소? 나는 용왕님의 어명을 받드는 시종이외다. 그 옛날 장터에서 우리 왕자님을 기꺼이 살려준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영원히 마르지 않는 화수분 술병을 모래사장에서 내린 지 어느덧 십 년. 우리 용왕님께서는 부부가 과연 그 어마어마한 재물을 얻고 어찌 쓰는가 가만히 지켜보셨소이다. 만약 재물에 눈이 멀어 초심을 잃고 탐욕을 부렸다면 당장 그 마법의 술병을 벼락과 함께 거두어 가려 하였으나, 두 사람은 오히려 그 넘치는 복을 수많은 가여운 이웃들과 아낌없이 나누며 하늘을 크게 감동시켰소. 용왕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며 눈물을 흘리셨고, 부부의 조건 없는 선행이 이 탁한 세상을 맑게 정화하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소이다."

    노인의 온화한 말에 아내와 남편은 지난 십 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왈칵 뜨거운 눈물을 쏟았고,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이고, 저희는 그저 우연히 받은 과분한 은혜를 주변에 조금 나누었을 뿐인데, 용왕님께서 이리 큰 칭찬을 해주시니 그저 부끄럽고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허허허, 얼른 고개를 드시오. 그대들 부부가 지난 십 년간 보여준 넉넉한 인심과 베풂은, 이 마르지 않는 요술 화수분 술병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값지고 귀한 진짜 세상의 기적이라오. 이제 이 붉은빛 술병의 영험한 기운은 그대들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부부의 자손 대대로 큰 복과 재물이 넝쿨째 굴러들어와 평생을 남에게 베풀면서도 절대 부족함 없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게 될 것이오! 이것이 하늘의 뜻이오!"

    세상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노인의 모습은 향긋한 푸른 안개가 되어 서서히 저 높은 밤하늘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습니다. 앞마당에 엎드려 이 모든 기적을 숨죽여 지켜보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부부를 향해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이후로도 부부는 평생토록 옥빛 호리병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만병통치약 붉은 술과 어마어마한 재물을 아낌없이 병들고 가난한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거북이를 가엾게 여겨 전 재산을 내어놓은 착한 과부의 작은 다정함은 마법의 술병을 불러왔고, 그 술병을 결코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쏟아부은 부부의 크나큰 사랑은 마침내 영원히 마르지 않는 행복과 기적이라는 진정한 화수분이 되어 그들의 온 삶을 찬란하고 아름답게 채워주었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동패낙송' 속 기상천외한 화수분 주막 이야기, 배꼽 잡고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퍼주면 퍼줄수록 채워지는 기적은 마법의 술병이 아니라, 부부의 '따뜻한 마음'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구독자님들 가정에도 오늘 이야기처럼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기적이 펑펑 터지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려요! 다음엔 더 꿀잼 보장하는 전래동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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