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깊은 밤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흐느낌, 그 우물을 파헤치자 터져 나온 천 년의 은보화 《동패낙송》

    태그

    #동패낙송, #노다지야담, #귀신우물, #은보화, #나무꾼, #원혼, #권선징악, #횡재, #미스터리, #전설의고향, #기묘한이야기, #부자되는법, #괴담, #오디오북, #오디오드라마
    #동패낙송 #노다지야담 #귀신우물 #은보화 #나무꾼 #원혼 #권선징악 #횡재 #미스터리 #전설의고향 #기묘한이야기 #부자되는법 #괴담 #오디오북 #오디오드라마

    후킹멘트

    모두가 발길을 끊은 흉가, 그곳 버려진 우물에서는 밤마다 뼛속까지 시린 여인의 구슬픈 흐느낌이 들려옵니다. 귀신이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물로 다가간 가난한 나무꾼! 그가 마주한 억울한 원혼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요? 등골 오싹한 공포가 짜릿하고 통쾌한 천 년의 은보화로 뒤바뀌는 기묘한 노다지 야담,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 1: 가뭄에 말라가는 고을, 그리고 모두가 꺼리는 귀신 들린 흉가 우물

    하늘은 마치 거대한 화로라도 된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를 매일같이 지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굽이굽이 험준하게 이어진 깊은 산자락 아래, 이백여 호가 모여 사는 작은 고을에는 벌써 석 달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독하고 잔인한 가뭄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봄에 정성껏 심어둔 모들은 누렇게 타들어가 바스러졌고, 논바닥은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그 틈새로 흙먼지만이 풀풀 날렸다. 마을 사람들의 타는 목을 축여주고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되어주던 맑고 풍성했던 개울마저도 이미 시커먼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촌장을 비롯한 고을 사람들은 매일같이 산신각에 모여 하늘을 우러러보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우제를 지냈지만, 야속하고 무심한 하늘은 잿빛 구름 한 점, 서늘한 바람 한 점 허락하지 않았다. 식수조차 바닥이 나버려 물 한 모금이 황금보다 더 귀해진 참혹한 시기, 사람들의 절망적인 시선은 자연스레 고을 외곽, 아무도 발길을 주지 않는 후미진 산기슭에 흉물스럽게 버려진 거대한 흉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무너져가는 흉가의 뒷마당 깊숙한 곳에는, 백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다는 아주 깊고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온 고을이 가뭄으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마을 사람들 중 그 누구 하나 감히 그곳에 다가가 물을 길어 올릴 엄두를 내는 이는 없었다. 그 버려진 우물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을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기괴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빛조차 먹구름에 가려진 야심한 밤이 되면, 그 흉가의 버려진 우물가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찢어질 듯 구슬픈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아무리 목이 말라 미칠 지경이라도 그 귀신 들린 우물 근처에는 절대 얼씬도 하지 마소. 지난달에 이웃 고을에서 넘어온 장돌뱅이가 그 소문을 믿지 않고 밤에 몰래 물을 마시러 갔다가, 하얀 소복을 입고 피눈물을 흘리는 목 없는 귀신을 마주하고는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져 반실성하지 않았소!'
    '암, 그렇고말고.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리면 그 흉가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마소. 재수 없게 그 원귀와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물 한 모금 마시려다 온 집안이 삼 년상을 치러야 할 테니 절대 가까이 가서는 아니 되오.'

    고을 사람들은 우물 근처에 지독한 원귀의 살기가 서려 있다며 그곳을 철저히 금기시하고 금촉의 구역으로 삼았다. 물을 구하지 못해 말라 죽는 한이 있어도, 귀신에게 홀려 비명횡사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고을에서 가장 찢어지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무꾼 덕칠의 사정은 남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덕칠은 비록 가진 것 하나 없이 평생을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해다 파는 팍팍한 처지였지만, 병든 홀어머니를 세상 그 누구보다 극진히 모시고 사는 하늘이 내린 효자였다. 지독한 가뭄이 길어지고 끼니마저 거르는 날이 잦아지자, 원래도 몸이 약했던 어머니의 병환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져만 갔다.

    급기야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고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며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바싹 말라 갈라진 입술에서는 쉴 새 없이 마실 것을 찾는 애처로운 신음만이 새어 나왔다. 덕칠은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물을 구하기 위해 인근의 산과 들, 계곡의 구석구석을 미친 듯이 파헤치고 다녔다. 하지만 그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혀를 축일 만한 흙탕물조차 구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숨결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빠지는 것을 지켜보던 덕칠의 두 눈에서는, 무력감과 절망이 뒤섞인 뜨거운 피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어머니께서 저리 타는 목을 부여잡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시는데, 귀신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귀신에게 목이 졸려 죽고 내 혼이 구천을 떠도는 한이 있더라도,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필코 어머니께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떠다 드려야만 한다. 나는 귀신보다 내 어머니를 잃는 것이 천 배 만 배는 더 두렵다!'

    덕칠은 붉게 충혈된 눈을 번쩍 뜨며,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굳은 결심을 내렸다. 그는 마당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나무를 할 때 쓰던 낡고 거친 물지게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물을 담을 커다란 호리병 두 개를 양쪽에 단단히 매달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독한 더위와 굶주림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든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 덕칠은 거센 바람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희미한 등불 하나에만 의지한 채 대문을 나섰다.

    밤의 어둠은 가뭄의 열기만큼이나 무겁고 숨이 막혔다. 산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괴한 적막 속에서, 덕칠은 오직 마을 외곽에 자리한 그 흉흉하고 끔찍한 흉가를 향해 무겁고 비장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메마른 산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마치 누군가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냈고, 바닥에 깔린 낙엽들이 스치는 소리는 원귀의 치맛자락이 끌리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 같은 착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덕칠은 덜덜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직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단 하나의 간절한 맹세가, 공포로 얼어붙어 가는 덕칠의 심장을 끊임없이 뛰게 만들며 그를 그 저주받은 흉가의 입구로 이끌고 있었다.

    ※ 2: 한밤중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흐느낌과 나무꾼의 기묘한 조우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만큼 무너져 내린 흉가의 낡은 담장을 넘어서자,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이 덕칠의 온몸을 뱀처럼 칭칭 휘감기 시작했다. 분명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푹푹 찌는 한여름의 열대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폐가의 안뜰로 들어선 순간만큼은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은 듯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사람 키만큼이나 무성하고 억세게 자라난 잡초들을 힘겹게 헤치며 뒷마당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먹구름에 가려진 희미한 달빛조차 닿지 않는 가장 짙은 어둠 속에 소문으로만 듣던 그 거대한 우물이 흉측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검은 이끼가 잔뜩 낀 우물의 돌무더기 주변에는 소름 끼치는 정적만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덕칠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들고 있던 등불을 앞으로 내밀고 조심스럽게 우물가로 한 걸음 내디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흐으으흑... 흑... 으흐흐흑... 아아아..."

    고요한 정적을 찢어발기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여인의 구슬프고도 소름 끼치는 흐느낌이 우물의 칠흑 같은 밑바닥에서부터 메아리처럼 증폭되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람이 돌틈을 스치며 내는 자연의 소리라고 착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처절한 원한이 담긴 사람의 울음소리였다. "으흐흑..." 하고 길게 늘어지는 여인의 곡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순간, 덕칠은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고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리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손에 쥐고 있던 등불이 바들바들 떨리다 못해 당장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덕칠의 뇌리에는 당장 물지게를 내팽개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이 저주받은 공간을 빠져나가 도망치라는 생존의 본능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덕칠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두 다리를 억지로 흙바닥에 단단히 붙들고 섰다.

    '어머니...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열병으로 신음하시는 내 가엾은 어머니를 빈손으로 뵐 수는 없다. 눈앞에서 들리는 저 기괴한 울음소리의 주인이 천 년 묵은 요괴이든, 내 목을 조를 원귀이든 상관없다. 내 목숨을 기꺼이 저 우물에 내어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물은... 어머니를 살릴 물은 반드시 퍼 가야만 한다!'

    덕칠은 덜덜 떨리는 턱을 악물며 공포를 억누르고, 우물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쑥 내밀었다. 바로 그때였다. 우물가에 쌓인 차갑고 축축한 돌무더기 위로 설명할 수 없는 푸르스름하고 기괴한 안개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우물 주변을 소용돌이치며 맴돌더니, 이내 그 짙은 안개 한가운데서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의 형상이 아주 천천히 그 끔찍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려진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듯 시체처럼 창백하고 기괴했다.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텅 빈 듯 초점 잃은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 붉고 끈적한 피눈물이 끊임없이 뺨을 타고 뚝뚝 흘러내려 새하얀 소복을 붉게 적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인적 끊긴 야심한 밤에... 감히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까지 찾아온 미련한 자가 뉘요... 수백 년을 피눈물로 지새운 내 이 끔찍하고 흉측한 몰골이 정녕 두렵지도 않은 것이요...?"

    원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순간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녹슨 쇳덩이가 거칠게 긁히는 듯 차갑고 날카로워 덕칠의 고막을 고통스럽게 찔러왔다. 일반적인 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압도적인 원기(怨氣)와 소름 끼치는 형상 앞에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혼절을 하거나 미쳐버리고도 남을 끔찍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생을 가난 속에서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뼛속까지 선하고 우직하게 살아왔던 나무꾼 덕칠의 마음속에는 공포와는 다른 기묘한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덕칠은 텅 빈 눈으로 피눈물을 쏟아내며 허공을 맴도는 원혼의 처절한 모습에서, 귀신을 향한 두려움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깊고 서글픈 슬픔을 느꼈다. 대체 얼마나 큰 한이 맺혔기에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며 이토록 피눈물을 쏟아내고 있단 말인가. 덕칠은 공포로 굳어가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원혼을 향해 정중하고도 깊숙이 허리를 숙여 두 손을 모았다.

    "소, 소인은 저 산 아래 다 쓰러져가는 초가에 사는 가난한 나무꾼 덕칠이라 하옵니다. 열병에 걸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시는 가엾은 홀어머니께,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떠다 드려 목숨을 살리고자 목숨을 걸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원컨대, 제가 물을 기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귀신이 되어서도 이 차갑고 어두운 우물가를 떠나지 못하고 이토록 서럽게 피눈물을 흘리시는 연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비루한 나무꾼에 불과하지만, 제가 감히 도울 일이 있다면 제 남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돕겠습니다."

    원혼은 떨리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덕칠의 말에 크게 당황한 듯, 미친 듯이 흔들리는 기괴한 눈동자로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수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흉가를 우연히 찾아왔던 인간들은 모두 자신의 겉모습과 울음소리만을 듣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빴다. 자신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 슬픈 사연을 물어봐 준 인간은 수백 년 만에 이 비루한 나무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분노와 살기로 가득했던 여인의 눈에서 흐르던 붉은 핏빛 눈물이, 아주 서서히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가슴 깊이 맺혀있던 천 년의 지독한 한이, 나무꾼의 따뜻하고 의로운 진심 앞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누그러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 3: 하얀 소복의 원혼이 털어놓는 억울한 죽음의 진실

    투명해진 눈물을 흘리며 공중에 떠 있던 원혼은 이내 푸른 안개를 거두며 차가운 우물가 돌무더기 위에 소리 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수백 년이라는 억겁의 세월 동안 그 누구에게도 입 밖으로 내어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기구하고도 처절하게 억울한 죽음의 사연을 마침내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인의 한 맺힌 목소리는 스산한 밤바람을 타고 가늘게 떨려 퍼졌고, 덕칠은 물을 길어야 한다는 다급함조차 잠시 잊은 채 숨을 죽이고 그녀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내 이름은 월향이라 하오. 아주 오래전, 이 고을 일대의 모든 상권을 쥐락펴락하며 엄청난 부를 누리던 큰 거상의 목숨보다 귀한 외동딸이었지요. 아버지는 내게 평생을 물 쓰듯 쓰고도 다 쓰지 못할 엄청난 양의 은화와 진귀한 보물들을 혼수로 챙겨 물려주셨소. 딸이 시댁에서 기죽지 않고 평생토록 남부럽지 않게 살기를 바라는 애틋한 부정이었건만... 하지만 그 막대한 재물이, 그 넘쳐나던 은보화가 내게 지옥불보다 끔찍한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알지 못했소이다."

    월향의 가늘게 떨리던 목소리에 이내 뼛속을 얼어붙게 만드는 깊은 원망과 섬뜩한 분노가 짙게 서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난하지만 학식이 깊고 심성이 다정해 보였던 한 젊은 서생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 서생의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다정한 미소는 철저히 꾸며낸 가면에 불과했다. 그의 뱃속은 오직 월향의 집안이 가진 재물을 향한 지독한 탐욕과 악독함으로 가득 찬, 인간의 탈을 쓴 악귀나 다름없었다. 혼인을 한 지 불과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월향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숨죽이고 있던 남편은 짐승처럼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며 월향이 가진 막대한 재산을 모두 가로채기 위해 인륜을 저버린 끔찍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 악마 같은 자는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던 내게 다가와 위로하는 척 독이 든 탕약을 먹였소. 그리고는 내가 고을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는 무서운 역병에 걸렸다는 거짓 소문을 널리 퍼뜨려 아무도 내 곁에 오지 못하게 만들었지. 내 몸이 독에 중독되어 서서히 마비되어 가던 그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 짐승만도 못한 악귀는 쓰러진 나를 머리채를 잡아끌고 바로 이 깊고 어두운 우물가로 끌고 왔소이다. 그리고는 억센 손으로 내 목을 잔인하게 졸랐지. 내가 숨이 막혀 핏발 선 눈으로 살려달라 애원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그자의 두 눈에는 내 목숨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이 아니라 오직 내 혼수와 재산에 대한 번뜩이는 탐욕의 광기만이 서려 있었소."

    월향은 자신의 텅 빈 가슴을 세차게 치며 처절하고도 구슬프게 흐느꼈다. 그 피 끓는 울음소리에 덕칠은 주먹을 꽉 쥐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자는 아직 내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를 이 깊고 차가운 우물 밑바닥의 어둠 속으로 가차 없이 내던져 버렸소. 그리고는 나의 그 수많은 은보화가 담긴 무거운 나무 궤짝들마저 수레에 싣고 와 우물 속에 쏟아부었지. 자신의 더러운 범행을 숨기고 훗날 은보화를 독차지하기 위해, 은보화 궤짝으로 내 몸을 짓눌러 영원히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만든 것이요. 그러고는 수십 명의 장정을 시켜 무거운 바위와 흙으로 이 우물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렸소. 세상 사람들은 내가 역병에 걸려 비참하게 죽어 야산 깊은 곳에 묻힌 줄로만 철석같이 믿게 된 것이요."

    수백 년의 무심한 세월이 흐르며, 그 악독했던 남편도 결국 병에 걸려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갔고, 웅장하고 거대했던 그녀의 기와집은 모두 무너져 내려 지금의 흉측한 폐가가 되어버렸다. 후손들이 모두 끊어져 우물 입구를 막았던 흙과 바위는 세월에 씻겨 내려갔지만, 차가운 물속 진흙 바닥에 끔찍하게 수장된 월향의 백골과 억울한 영혼은 구천을 떠돌지 못하고 이곳에 지박령으로 묶여버렸다. 그녀는 매일 밤 이 끔찍한 우물가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언젠가 자신의 이 처절한 억울함을 들어주고 백골을 거두어 원한을 풀어줄 단 한 명의 누군가를 애타게, 아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젊고 의로운 나무꾼이여, 부탁이 있소. 내일 날이 밝고 태양이 떠오르거든 두려워하지 말고 이 우물 깊은 바닥으로 내려와 주시오. 그리고 진흙 속에 다 썩어문드러진 채 흩어져 있는 내 불쌍한 백골을 온전히 수습해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시오. 당신이 내 이 끔찍하고 억울한 원한을 풀어준다면, 저 우물 밑바닥 진흙 속에 나와 함께 억겁의 세월을 가라앉아 있는 그 수천 냥의 막대한 은보화를 모두 당신에게 주겠소. 부디... 부디 버려진 내 마지막 한을 풀어주시오."

    월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꾼 덕칠을 향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깊고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그 간절하고 처절한 애원에 덕칠의 두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자신보다 더 기구하고 원통한 삶이 이 차가운 물속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에 덕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아니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와 아씨의 흩어진 백골을 수습하고 그 피맺힌 한을 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비천한 나무꾼의 입술이지만, 제 목숨과 명예를 걸고 하늘에 약속하옵니다."

    덕칠의 흔들림 없는 단단한 다짐을 들은 월향은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입가에 옅고도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푸른 안개로 흩어지며 우물 속 짙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덕칠은 서둘러 물지게를 지고 우물 깊은 곳에서 얼음장처럼 차갑고 맑은 물을 가득 길어 올렸다.

    단숨에 산길을 내달려 집으로 돌아온 덕칠은 밤을 새워가며 어머니의 바싹 타들어 간 입술을 시원한 우물물로 적셔드리고,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 열을 내리기 위해 혼신의 정성을 다했다. 덕칠의 지극한 효심과 맑고 기운 넘치는 우물물 덕분인지, 기적처럼 어머니의 끓어오르던 열이 서서히 내리고 거칠고 불안하던 숨소리가 새근새근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을 확인한 덕칠은 마당으로 나와 떠오르는 여명을 바라보며, 날이 밝자마자 다시 그 흉가의 우물로 돌아가 월향과의 맹세를 지키기 위한 비장한 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 4: 날이 밝고 원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나무꾼

    동쪽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태양이 장엄하게 솟아오르며, 기나긴 가뭄에 지친 고을 위로 또다시 뜨거운 햇살을 무자비하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닭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이른 아침, 덕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밤, 자신이 떠온 차갑고 맑은 우물물 덕분에 펄펄 끓던 열이 내리고 새근새근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든 어머니의 핼쑥한 얼굴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덕칠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섰다. 이제는 그 차갑고 어두운 우물 밑바닥에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갇혀 있던 가엾은 원혼, 월향 아씨와의 맹세를 지켜야 할 시간이었다. 덕칠은 헛간 구석에서 가장 굵고 튼튼한 동아줄을 찾아 길이를 가늠하고, 단단한 쇠스랑과 곡괭이, 그리고 다 썩어문드러졌을 백골을 정성스럽게 수습하기 위해 장롱 깊숙한 곳에 보관해 두었던 가장 깨끗하고 고운 삼베 천을 챙겨 등짐을 꾸렸다. 혹여라도 깊은 우물 속의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가릴까 염려하여, 허리춤에는 기름을 넉넉히 채운 작은 호롱불도 단단히 매달았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은 마를 대로 말라버린 개울가에 모여 웅성거리며 흙바닥을 파헤치고 있었지만, 덕칠은 그들을 뒤로한 채 오직 흉가가 있는 산기슭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간밤에 마주했던 그 소름 끼치는 원귀의 형상과 뼛속을 얼어붙게 만들던 곡소리의 공포는 이미 덕칠의 마음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에는 오직 인간의 탐욕에 희생되어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차가운 물속에 수장된, 그 가엾고 원통한 여인의 피맺힌 한을 반드시 내 손으로 시원하게 풀어주겠다는 뜨겁고 굳건한 사명감만이 거대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흉가의 담장을 넘어 다시 찾은 뒷마당은, 눈부신 아침 햇살 아래서도 여전히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밤새 피어오르던 푸른 안개는 걷혔지만,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검은 우물은 마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지옥의 문처럼 불길하고 아득해 보였다.

    덕칠은 우물가에서 가장 가까이 자라난,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고목의 밑동에 챙겨 온 동아줄의 한쪽 끝을 겹겹이 휘감아 절대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남은 밧줄의 끝을 자신의 허리에 단단히 동여맨 뒤, 심호흡을 깊게 한 번 내쉬고는 주저 없이 그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천천히 몸을 내리기 시작했다. 우물의 내벽은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미끄러운 검푸른 이끼와 곰팡이로 뒤덮여 있어, 손끝과 발끝에 제대로 힘을 주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래로 십여 척을 내려가자, 지상의 눈부신 햇빛은 순식간에 차단되었고, 마치 누군가 검은 천을 뒤집어씌운 듯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완벽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덕칠의 온몸을 짓눌러왔다. 코끝으로는 썩은 흙냄새와 물비린내, 그리고 수백 년 묵은 서늘한 사기(死氣)가 훅하고 끼쳐와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덕칠은 허리춤에 매달아 둔 호롱불에 불을 붙였다. 작지만 따스한 주홍빛 불꽃이 일렁이며 좁고 둥근 우물 내벽을 비추자, 덕칠은 다시금 밧줄을 꽉 쥐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밑바닥을 향해 하강을 계속했다. 거칠고 날카로운 돌벽에 쓸려 팔뚝과 정강이의 살갗이 벗겨지고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덕칠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오직 밑바닥에 닿기만을 기도했다. 마침내 "첨벙"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덕칠의 짚신 신은 두 발이 차가운 물속으로 빠져들며 단단한 진흙 바닥에 닿았다. 다행스럽게도 수개월째 이어진 지독한 가뭄 덕분에 원래라면 사람의 키를 훌쩍 넘겼을 우물의 수위가 턱없이 낮아져 있어, 탁하고 차가운 흙탕물은 덕칠의 허리춤까지만 찰랑거리고 있었다.

    "월향 아씨, 저 나무꾼 덕칠이 간밤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이 밑바닥까지 내려왔습니다. 부디 제가 아씨의 옥체를 온전히 수습할 수 있도록, 이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열어 주십시오."

    덕칠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에서 덜덜 떨리는 턱을 악물며, 호롱불을 높이 치켜들고 수면 아래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차가운 물속 진흙 바닥은 너무나도 탁해 눈으로는 도저히 그 속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결국 덕칠은 호롱불을 안전한 돌 틈에 끼워둔 뒤, 허리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속으로 양팔을 깊숙이 집어넣고 맨손으로 차가운 진흙 바닥을 샅샅이 더듬기 시작했다. 썩은 나뭇가지와 날카로운 돌멩이들이 손끝을 찔러 피가 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차가운 물속을 기어 다니며 바닥을 파헤쳤을까. 온몸이 동상에 걸린 듯 감각이 무뎌져 갈 즈음, 진흙을 파고들던 덕칠의 열 손가락 끝에 둥글고 단단하며 묘하게 매끄러운 무언가가 '툭' 하고 둔탁하게 걸려왔다. 단순한 돌멩이의 촉감이 아니었다. 덕칠은 조심스럽게,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 양손으로 그것을 감싸 쥐고 천천히 탁한 물 밖으로 건져 올렸다. 호롱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 그 형체가 드러나는 순간, 덕칠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렸다. 그의 두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고 모두 삭아버린, 텅 빈 두 눈동자 구멍만이 휑하게 뚫려 있는 하얀 두개골이었다.

    수백 년 전, 짐승 같은 남편의 손에 목이 졸린 채 이 차가운 물속으로 내던져져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야만 했던 월향 아씨의 한 맺힌 백골이었다. 덕칠은 두려움이나 불결함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슬픔과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연민이 밀려와, 두개골을 품에 안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허리춤에서 미리 챙겨 온 깨끗한 삼베 천을 조심스럽게 펼쳐 진흙을 닦아낸 두개골을 경건하게 감쌌다. 그리고는 다시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숙여,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을 나머지 유골들을 찾아 묵묵하고도 처절한 수색을 이어나갔다.

    ※ 5: 진실을 밝혀줄 백골의 수습,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은보화

    덕칠은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우물물 속에서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면서도, 흩어진 월향의 유골을 단 한 조각도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바닥의 끈적한 진흙을 맨손으로 미친 듯이 파헤쳤다. 수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억센 물살과 진흙 속에 묻혀 뼈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지만, 덕칠은 두개골을 시작으로 목뼈와 늑골, 그리고 가늘고 길쭉한 팔다리뼈와 손가락, 발가락뼈의 작은 마디 하나하나까지 기적처럼 찾아내어 조심스럽게 건져 올렸다. 물 밖으로 건져 올린 뼈들은 진흙으로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으나, 덕칠은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정성스럽게 진흙을 닦아낸 뒤 펼쳐놓은 삼베 천 위에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가지런히 모아놓았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작은 발가락뼈 하나까지 모두 찾아내어 온전한 한 구의 백골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 덕칠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삼베 천의 네 귀퉁이를 단단히 묶어 등에 둘러업을 수 있도록 야무진 보따리를 만들었다.

    '이토록 차갑고 어두운 흙탕물 속에서, 그 오랜 세월을 홀로 묻혀 얼마나 춥고 외로우셨을까. 이제 다 되었습니다, 아씨. 이 지긋지긋하고 원통한 지옥에서 제가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한 덕칠이 등에 백골 보따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밧줄을 잡아당겨 위로 올라갈 채비를 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골을 수습하느라 깊게 파헤쳐진 진흙 바닥 한구석에서, 묘하게 희끄무레하면서도 은은한 빛이 호롱불의 불빛을 반사하며 새어 나오는 것이 덕칠의 눈에 들어왔다. 그 빛은 탁한 흙탕물 속에서도 영롱하게 반짝이며 덕칠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덕칠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의 진흙을 양손으로 거칠게 걷어내자, 그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랗게 휘둥그레졌다.

    "이... 이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것이 정녕 아씨께서 말씀하시던 그 혼수란 말인가!"

    진흙과 돌무더기 속에 꽁꽁 파묻혀 있던 것은, 오랜 세월 물에 잠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고 부서져 가는 거대한 참나무 궤짝들이었다. 월향의 악독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뒤 그녀의 시신이 떠오르지 못하도록 짓누르기 위해 함께 던져 넣었던 바로 그 은보화 궤짝들이었던 것이다. 덕칠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곡괭이를 꺼내어 궤짝의 썩은 틈새를 살짝 후벼 파자, 삭아버린 나무판자가 힘없이 부서져 내리며 그 안에서 눈이 멀어버릴 듯 눈부시고 영롱한 은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저 몇 푼의 단순한 은덩어리가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거상이었던 월향의 아버지가 금지옥엽 외동딸을 위해 평생을 바쳐 모아 마련해주었던, 수백 년 전 주조된 순도 높은 수천 냥의 막대한 은화 무더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화려한 세공이 돋보이는 값비싼 은비녀, 영롱한 비취가 박힌 은가락지, 그리고 각종 진귀한 은제 장신구들이 거대한 궤짝 서너 개에 가득 차 넘쳐흐르고 있었다. 탐욕에 눈이 먼 인간의 악랄한 범죄로 인해 가엾은 여인과 함께 우물 밑바닥에 묻혀 영원히 잊힐 뻔했던 그 어마어마한 양의 은보화들이, 수백 년이라는 억겁의 세월을 뚫고 마침내 의로운 나무꾼의 손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덕칠은 무너져 내린 궤짝에서 쏟아져 나온 은화와 보물들을 바라보며 충격과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평생을 뼈 빠지게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해도 구경조차,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할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재물이었다. 가뭄으로 죽어가는 온 고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만한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아씨께서 간밤에 내게 남기신 약속이 결코 헛것이 아니었구나. 억울한 백골을 수습해 주면 이 모든 것을 내게 주겠다 하시더니, 이 엄청난 재물을 참으로 나 같은 비루한 나무꾼에게 내려주신단 말인가...'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지만, 덕칠은 결코 재물에 눈이 멀어 자신의 본분과 도리를 잊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그는 탐욕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은보화가 아니라,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월향 아씨의 가엾은 유골이었다. 덕칠은 먼저 수습한 월향의 백골 보따리가 젖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자신의 가슴 앞으로 단단히 고쳐 묶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미리 챙겨 온 튼튼하고 커다란 마대 자루 여러 개를 꺼내어, 물속에 잠긴 은화와 보물들을 정신없이 퍼 담기 시작했다.

    양이 어찌나 많은지 한두 자루로는 어림도 없었고, 물을 머금은 은화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웠다. 덕칠은 가슴에 유골을 품은 채, 무거운 은보화 자루를 하나씩 밧줄에 단단히 묶어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고된 작업을 반복했다. 밧줄을 잡은 두 손의 살갗이 다 벗겨져 피가 흐르고, 팔다리의 근육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이 악물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우물 바닥과 지상을 수차례나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며 마지막 은화 한 닢까지 모두 자루에 담아 끌어올린 뒤에야, 덕칠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지상의 햇빛 아래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온몸은 악취 나는 흙탕물과 끈적한 진흙, 그리고 상처에서 흐른 피와 땀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지만, 우물가에 쓰러져 누운 덕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 후련하며 경건해 보였다. 덕칠은 흉가 한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은보화 자루들을 깊숙이 숨겨둔 뒤, 자신의 가슴에 소중히 안겨 있는 월향의 백골 보따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약속, 그녀를 따뜻한 곳으로 모셔 한을 풀어줄 일만이 남아 있었다.

    ※ 6: 억울함을 푼 원혼의 승천과 벼락부자가 된 나무꾼의 통쾌한 해피엔딩

    덕칠은 젖은 옷을 짜낼 새도 없이 월향의 백골이 담긴 보따리를 두 팔로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고을 뒷산의 가장 험준하지만 풍수지리가 좋기로 소문난 산 중턱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땀 흘리며 덤불을 헤치고 산을 오르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온종일 따뜻한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굽이치는 산세가 포근하게 감싸 안은 듯한 아름답고 아늑한 명당자리였다. 발아래로는 고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등 뒤로는 든든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서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덕칠은 가져온 곡괭이와 쇠스랑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으로 땅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지만, 그는 손바닥이 다 부르트고 피가 나도록 정성을 다해 깊고 넓은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그 안에 깨끗한 나뭇잎을 깐 뒤, 자신의 품에 안고 있던 삼베 보따리를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눕히듯 더없이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내려놓았다. 흙을 한 줌씩 조심스레 덮으며 정성껏 작고 예쁜 봉분을 둥글게 만들어 올린 덕칠은,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꽃들을 꺾어다 봉분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미리 챙겨 온 호리병의 맑은 물을 제기에 담아 소박하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제사상을 차렸다.

    "월향 아씨, 이제 그 춥고 어둡고 축축했던 지옥 같은 우물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셨습니다. 이곳은 햇볕이 참으로 따뜻하고, 산새들이 노래하는 평온한 곳이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 아씨의 그 처절했던 억울함과 피맺힌 한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것이니, 부디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과 미련, 그리고 짐승 같았던 자들을 향한 원망은 모두 바람에 흩날려 보내시고 가장 좋은 곳으로 가시길 이 비루한 나무꾼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덕칠이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진심을 다해 세 번의 큰절을 올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기적처럼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오색찬란한 무지개 빛이 봉분 위로 사르르 내려앉더니, 따스하고 향기로운 산바람이 한차례 훅 하고 덕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오색 빛무리와 산바람이 소용돌이치는 허공 한가운데서, 하얀 소복을 입은 월향의 형상이 다시 한번 부드럽게 그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하지만 지난밤, 흉가 우물가에서 보았던 그 끔찍하고 원한에 사무쳤던 공포스러운 원귀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뺨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던 소름 끼치는 피눈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핏기 없던 창백하고 일그러진 얼굴에는 둥근 보름달처럼 환하고 평온하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 번져 있었다. 헝클어져 악귀 같았던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곱게 빗겨져 있었고, 그녀의 몸 주위로는 천상의 선녀처럼 은은하고 따뜻한 후광이 감돌고 있었다.

    월향은 투명하게 빛나는 고운 자태로 덕칠을 향해 깊은 감사가 묻어나는 큰절을 천천히 올렸다.

    "참으로, 참으로 고맙소, 나의 은인. 당신의 그 욕심 없고 선하며 따뜻한 마음씨와 거룩한 용기 덕분에, 수백 년 동안 내 영혼을 갈기갈기 찢으며 짓눌러왔던 그 끔찍한 원한이 마침내 봄눈 녹듯 온전히 사라졌소이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그 차가운 지옥 속에서 악귀로 남아 세상을 저주했을 것이오. 이제야 비로소 가벼운 깃털 같은 마음으로 저승길에 올라 내 아버지를 뵈러 갈 수 있게 되었구려."

    "아닙니다, 아씨. 저는 그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작은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안하시고, 다시는 아프지 마십시오."

    월향은 눈시울이 붉어진 덕칠을 향해 다시 한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몸을 돌려 천천히 푸른 하늘을 향해 나비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수만 개의 빛나는 별가루로 변하며 허공으로 흩어져 가려는 찰나, 월향의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덕칠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맴돌았다.

    "그 우물에서 당신이 고생하여 꺼낸 은보화는, 당신의 그 맑고 의로운 마음에 대한 하늘과 나의 아주 작은 보답일 뿐이오.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부디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고 풍족하게 오래오래 사시오. 당신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럴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치는 참으로 귀한 사람이오..."

    하얀 빛무리가 완전히 푸른 하늘 저편으로 스며들어 사라지자, 덕칠의 가슴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후련함, 그리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이 교차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덕칠은 월향이 사라진 하늘과 봉분을 번갈아 향해 마지막으로 아주 깊숙이 허리를 숙여 진심 어린 인사를 올렸다.

    그날 밤,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덕칠은 흉가에 숨겨두었던 그 엄청난 양의 은보화를 여러 번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무사히 집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덕칠은 그 거대한 재물을 혼자 독차지하며 사치와 교만에 빠지는 어리석은 짓을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그 은화를 헐어 한양에서 제일간다는 명의를 고을로 모셔와 어머니의 열병과 오랜 지병을 완벽하게 고쳐드렸다. 그리고 낡고 다 쓰러져가던 초가집을 허물고 크고 번듯한 기와집을 지어 어머니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모셨다.

    나머지 막대한 재물은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지독한 가뭄으로 굶어 죽어가는 고을 사람들을 위해 매일같이 곳간을 열어 수십 가마니의 쌀을 나누어 주었고, 사람들을 동원해 고을 곳곳에 수백 척 깊이의 새로운 우물을 파주어 맑은 물이 마르지 않게 하였다. 또한 가난에 허덕이다 고리대금을 빌려 써 자식을 노비로 팔아야 할 위기에 처한 이웃들의 빚을 모두 대신 갚아주며 끝없는 선행을 베풀었다.

    고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덕칠이 흉가에서 귀신을 만나 미쳐버려 헛것을 들고 왔다고 수군거렸지만, 그가 억울한 원혼의 한을 목숨 걸고 풀어주고 그 보답으로 천 년의 은보화를 얻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모두들 덕칠의 그 엄청난 담력과 천사 같은 의로운 성품에 감격하며 고개를 숙여 그를 칭송해 마지않았다. 무섭고 흉흉한 귀신이 나온다며 모두가 기피하던 흉가의 우물은, 이제 억울함을 씻어낸 맑고 깨끗한 우물이 되어 다시금 고을 사람들의 타는 목을 축여주는 생명의 근원이 되었다. 가장 비루한 나무꾼이었던 덕칠은 끔찍한 가난을 벗어던지고 고을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덕망 높은 거부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오래오래 평안하고 다복한 삶을 누렸다. 원혼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은 그의 용기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억울한 원혼의 한을 풀어주고 엄청난 은보화로 벼락부자가 된 나무꾼 덕칠의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와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선의가 결국 가장 큰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권선징악의 통쾌한 메시지를 담은 기묘한 야담이었습니다. 우리 곁에도 남모를 아픔을 간직한 누군가가 있다면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여러분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더욱 기묘하고 재미있는 <노다지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