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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입은 백학을 치료해 준 과부 《대동기문》

    폐허가 된 절 근처를 배회하던 과부가 날개 다친 백학을 품에 안고 극진히 치료한 후 간호해 줍니다. 백학이 떠난 자리에 남겨두고 간 신비로운 발자국을 따라 파헤친 마루 밑에서 과거 왕실이 숨겨둔 막대한 금괴가 쏟아져 나온 기적의 이야기.

    태그(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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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폐허가 된 절터, 상처 입은 백학을 거둔 외로운 과부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은혜! 마루 밑에 숨겨진 왕실의 막대한 금괴와, 그 금괴로 맺어진 충직한 머슴과의 가슴 따뜻한 인연. 버려진 염전에서 황금빛 소금을 피워내 조선 최고의 대행수로 거듭나는 가슴 벅찬 인생 역전극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폐사지에서 상처 입은 백학을 발견하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하며 귀곡성 같은 소리를 내던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때는 수백 명의 스님들이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장엄한 염불 소리를 산봉우리 너머까지 울려 퍼지게 했던 대사찰이었건만, 이제는 병화에 불타 무너져 내린 기와 조각과 잡초만이 무성한 폐허로 변해버린 산중의 절터. 그 적막하고 쓸쓸한 폐사지 한가운데를 낡은 소복 차림의 여인이 홀로 거닐고 있었습니다.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지아비를 가슴에 묻은 그녀는, 모진 시집살이와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이 깊은 산골짜기 외딴집에 홀로 숨어들듯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우면서도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던 그녀는, 답답한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을 때면 종종 이 인적 끊긴 절터를 찾아와 무너진 석탑 앞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곤 했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붉게 물든 저녁놀을 바라보며, 여인은 굽이치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원망하듯 깊고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어찌하여 이 부족하고 가여운 여인에게는 이토록 가혹하고 모진 운명만을 안겨주시는 것입니까. 의지할 지아비도 빼앗아 가시고, 살붙이 하나 남겨주지 않으신 채 이 험난한 세상천지에 저 홀로 내버려 두시니, 저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지독한 고독과 한기를 어찌 견디며 살아가란 말씀이십니까. 차라리 저무는 저 해와 함께 제 명줄도 거두어 가시어, 이 고단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가슴 한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짙은 슬픔을 애써 삼키며, 여인은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는 산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칡넝쿨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옛 대웅전의 허물어진 축대 아래쪽에서, 가늘고도 애처로운 소리가 여인의 귓가를 스쳤습니다. 처음에는 굶주린 산짐승의 새끼가 우는 소리인가 하여 덜컥 겁이 나 몸을 움츠렸으나, 귀를 기울일수록 그 소리는 너무도 구슬프고 간절하여 도저히 모른 척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조심조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간 여인의 눈앞에는, 참으로 믿기 힘든 안타까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깃털을 가진 커다란 백학 한 마리가, 날개가 꺾인 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백학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참혹했습니다. 오른쪽 날개는 사냥꾼의 화살에라도 맞은 듯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꺾여 있었고, 본래의 순백색 깃털은 붉고 검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흉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며칠은 족히 굶고 피를 흘린 듯, 백학의 기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고통 속에서도 낯선 여인의 발자국 소리와 인기척에 놀라 파르르 몸을 떨며, 남은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다리가 꺾이며 속절없이 땅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맑고 깊은 검은 눈동자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극심한 고통이 가득 차 있었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듯한 가느다란 숨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습니다.

    "오라, 이 가엾고 불쌍한 것아. 어쩌다 이 깊고 험한 산중에서 이리 끔찍한 꼴을 당하였느냐. 두려워하지 말거라. 나는 너를 해치려는 포수나 짐승이 아니란다. 가만히 있거라, 옳지. 조금만 참아 보아라."

    여인은 자신의 유일한 옷인 하얀 소복 치맛자락이 검붉은 피에 물들고 흙투성이가 되는 것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가운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귀한 보물을 다루듯,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백학을 품에 안아 올렸습니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닿자 백학은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며 잠시 발버둥을 치려 했으나, 여인의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에 안심한 듯 이내 가만히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의 품에 작은 머리를 기댔습니다.

    여인의 가슴팍에 닿은 백학의 몸은 마치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깃털 너머로 전해지는 가느다란 심장 박동만이, 이 고결하고 아름다운 생명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위태롭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이 차가운 산속에 내버려 둔다면, 이 가엾은 생명은 틀림없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릴 것이야. 내 비록 가진 것 하나 없고 힘없는 아낙에 불과하나, 내 눈앞에서 꺼져가는 이 귀한 생명을 어찌 모른 척 외면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이 외롭고 폐허가 된 곳에서 너를 내게 보내신 데에는, 필시 우리 두 생명이 서로를 구원하라는 깊은 뜻이 있을 터.'

    그녀는 다친 백학이 조금이라도 흔들려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단단하면서도 포근하게 품에 안은 채,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 너머로 완전히 꼴딱 넘어가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졌고,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가을 산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며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여인의 잰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단하고 텅 빈 삶을 위로해주듯 품 안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작은 생명의 따스한 온기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강인한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산길을 내달려 도착한 허름한 초가집. 여인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두툼한 요를 깔고 백학을 눕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부엌으로 달려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솥에 물을 끓이고, 지난봄부터 산에서 정성껏 캐어 처마 밑에 말려두었던 귀한 약초 다발들을 남김없이 꺼내어 돌확에 짓이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외롭던 여인과 죽음의 문턱에 섰던 상처 입은 백학이 맺게 된, 길고도 기적 같은 숭고한 인연의 가슴 벅찬 첫 시작이었습니다.

    ※ 2: 지극한 간호와 백학이 남긴 신비로운 발자국

    그날 밤부터 상처 입은 백학을 살리기 위한 여인의 눈물겹고 지극한 간호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인은 펄펄 끓여 식힌 따뜻한 물을 명주수건에 적셔, 백학의 상처 부위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핏자국과 진물을 밤이 새도록 조심스럽게 닦아내었습니다. 뼈가 드러난 참혹한 상처 위에는 돌확에 곱게 짓이긴 귀한 약초들을 아낌없이 듬뿍 올려 덮고, 자신이 입던 깨끗한 무명 속적삼을 찢어 만든 부드러운 천으로 단단하면서도 숨이 통하게 감싸 매어 주었습니다.

    치료하는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러운 듯 백학은 때때로 몸을 비틀며 가늘고 처절한 앓는 소리를 내었지만, 그때마다 여인의 따뜻한 손길이 깃털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일 때면 신기하게도 금세 안정을 되찾고 숨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며칠 밤낮을 꼬박 뜬눈으로 새우며 곁을 지키는 동안, 여인은 쌀독의 바닥이 드러나 자신의 밥그릇은 비울지언정, 백학을 위해서는 귀한 좁쌀과 곡식을 따뜻한 물에 불려 부리 틈새로 한 숟갈씩 정성스레 떠먹여 주었습니다. 혹여라도 문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밤바람에 백학이 한기를 느낄세라, 방구석에 있던 낡은 병풍을 치고 솜이불을 덧대어 외풍을 꼼꼼히 막아주었습니다.

    "옳지, 조금만 더 먹어보련. 이리 약을 바르고 먹을 것을 챙겨주니, 머지않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이 좁은 방구석을 박차고 나가 다시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당당한 모습을 나는 꼭 보고 싶구나. 그러니 부디 힘을 내어다오. 보아라, 나도 이 외롭고 험한 세상에서 이리 억척스럽게 버티고 있지 않느냐. 우리 함께 꼭 살아남아 보자꾸나."

    어느덧 창밖으로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차가운 눈보라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매서운 한겨울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여인의 헌신적인 정성에 하늘도 감동한 것인지, 백학의 상처는 기적처럼 눈에 띄게 아물어갔습니다. 처참하게 부러졌던 날개의 뼈가 단단하게 굳어가며 자리를 잡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뭉텅 빠져버렸던 깃털 자리에는 새하얀 눈송이 같은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나며 본래의 고운 자태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백학은 여인이 부엌에서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설 때면, 긴 목을 빼어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와 부비적거렸습니다. 여인이 호롱불 밑에서 삯바느질을 할 때면 그 곁에 다소곳이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부리로 여인의 치맛자락이나 실타래를 살짝살짝 건드리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철저히 세상과 단절된 채 삭막하기만 했던 여인의 텅 빈 집안에는, 어느새 따뜻하고 포근한 생기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사람과 새라는 짐승의 경계를 허물고 두 생명은 이 길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고마운 일이지. 말 못 하는 미물에 불과할지라도 나와 이리 깊고 애틋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니. 네가 내 곁에 숨 쉬며 있어 준 덕분에, 뼛속까지 시리던 이 기나긴 겨울밤들이 단 한 번도 춥고 외롭지 않았단다. 이제 넌 단순한 한 마리 새가 아니라 내 유일한 지기요, 하늘이 내게 맺어준 소중한 식구로구나.'

    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날카로운 고드름이 눈물처럼 녹아내리고, 언 땅을 녹이는 따스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춘삼월이 찾아왔습니다. 마당 한구석에는 파릇파릇한 연초록 새싹이 다투어 움트기 시작했고, 겨우내 방 안에서만 지내던 백학도 이제는 방문을 나서 마당을 거닐기 시작했습니다. 백학은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틈틈이 커다란 날개를 펴고 퍼덕이는 연습을 하였고, 그럴 때마다 날개는 예전의 위용을 과시하듯 윤기가 흐르고 크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여인은 백학이 마침내 완벽하게 건강을 되찾은 것이 세상을 다 얻은 듯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별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며 칼바람을 맞은 듯 가슴이 시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봄날 아침이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 우뚝 선 백학이 하늘을 우러러 길고 청아한 울음을 세 번 연거푸 터뜨리더니, 하늘을 향해 그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쳐 보였습니다. 여인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그 가슴 벅찬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백학은 당장이라도 창공으로 솟구쳐 오를 듯 땅을 차다가도, 이내 다시 툇마루의 여인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녀석은 여인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깊숙이 파묻고 얼굴을 연신 부비며 한참 동안이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동안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여인의 숭고한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듯, 말 없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 이제 네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네가 진정 있어야 할 곳은 이 답답하고 좁은 내 집 마당이 아니라, 저 끝없이 맑고 넓은 푸른 창공이란다. 가거라, 미련 두지 말고 가거라. 가서 다시는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니렴. 내 평생, 너와 함께 숨 쉬고 온기를 나누었던 이 따뜻한 겨울의 기억을 무덤에 가는 날까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여인의 두 눈에서 뜨겁고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백학은 여인의 눈물을 제 부리로 살짝 닦아주는 듯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흙먼지를 일으키고는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습니다. 푸른 하늘 위를 크게 선회하며 마지막으로 애절하고도 긴 울음소리를 남긴 백학은, 하얀 구름 너머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져 갔습니다.

    백학이 떠나고 다시 깊은 적막만이 남은 텅 빈 마당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여인은, 밀려오는 상실감에 깊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내리깔던 여인의 시선 끝에, 마당 흙바닥에 남겨진 무언가 기이하고도 이상한 흔적이 뚜렷하게 들어왔습니다.

    방금 전까지 백학이 서서 날아오를 채비를 하던 마당 한가운데서부터 여인이 앉아 있는 툇마루 아래쪽을 향해, 범상치 않은 신비로운 은빛을 머금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한 이슬이 맺힌 듯 은은하게 반짝이는 그 거대한 새의 발자국은, 마치 여인에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리켜 알려주려는 듯 대청마루 가장 안쪽 구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멈춰 있었습니다.

    ※ 3: 마루 밑에서 쏟아져 나온 왕실의 금괴

    '이,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허상의 환영도 아닐진대, 짐승의 발자국에서 어찌 이리 눈이 부시도록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저 은은하게 빛나는 발자국은 마치 누군가 이정표를 남겨둔 것처럼 정확히 저 마루 밑을 향하고 있지 않은가.'

    여인은 홀린 듯이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스스로 빛을 내는 기이한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발자국이 최종적으로 멈추어 선 곳은, 지은 지 오래되어 비바람에 삭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낡은 대청마루의 가장 끄트머리, 구석진 널빤지 바로 아래였습니다. 평소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습기가 차 거들떠보지도 않던 허름하고 컴컴한 마루 밑 공간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의 영혼을 강렬하게 끌어당기며 손짓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여인의 가슴은 알 수 없는 거대한 기대감과, 혹여나 흉한 것이 묻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하며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무언가 결심한 듯 여인은 흩날리는 치맛자락을 허리춤에 단단히 여며 묶고, 부엌으로 잰걸음으로 들어가 밭을 맬 때 쓰던 녹슨 호미자루를 움켜쥐고 나왔습니다.

    "필시 하늘로 무사히 돌아간 그 기특한 아이가, 떠나기 전 내게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알려주려 이리 흔적을 남긴 것이 틀림없어. 도대체 이 퀴퀴하고 어두운 마루 밑에 무엇이 숨겨져 있길래, 이리도 밝은 빛으로 나를 이끄는 것일까..."

    숨을 크게 들이마신 여인이 흙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은 낡은 널빤지를 힘껏 들어 올리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습하고 퀴퀴한 흙내음이 훅 하고 코끝을 강하게 찔렀습니다. 여인은 마루 밑으로 상체를 숙이고 호미를 단단히 쥔 채, 단단하게 굳어있는 서늘한 흙바닥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다급하게 파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에는 어느새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고, 호미질을 하는 손목은 시큰거렸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숨죽여 파내려 갔을까, 흙을 긁어내던 호미 끝에 '텅' 하는 둔탁하고도 묵직한 마찰음이 울렸습니다. 단순한 바윗돌이나 나무뿌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여인이 놀라 숨을 멈추고 손으로 황급히 주변의 흙을 조심스레 걷어내자, 어두운 흙더미 속에서 서서히 그 거대한 형체가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두꺼운 무쇠 띠로 모서리가 굳게 덧대어지고, 최고급 옻칠이 두껍게 발라져 물기조차 스며들지 않은 커다랗고 육중한 나무 상자였습니다.

    여인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피가 맺힌 맨손으로 상자 주변의 흙을 미친 듯이 파헤쳤고, 있는 힘을 다해 그 무거운 상자를 끌어당겨 마침내 환한 대청마루 위로 간신히 끄집어 올렸습니다. 상자 겉면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오래된 흙먼지가 잔뜩 엉겨 붙어 있었지만, 소매로 먼지를 닦아내자 그 한가운데에는 섬세하고도 위압적으로 조각된 화려한 쌍용의 문양과 함께, 왕실의 내탕금임을 엄격하게 상징하는 붉고 거대한 국왕의 인장이 너무도 뚜렷하게 음각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것은... 이야기로만 듣던 궁궐 깊은 곳에서나 쓴다는 왕실의 물건이 아닌가! 어찌하여 감히 평민은 쳐다보지도 못할 이런 지엄하고 귀한 국가의 보물이, 첩첩산중 내 초라한 집 마루 밑 깊은 땅속에 이토록 오랜 세월 묻혀 있었단 말인가!'

    두려움과 경이로움에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상자 앞면에 채워진 낡은 무쇠 자물쇠를 만지자, 오랜 세월 흙 속에 파묻혀 검붉게 삭아버린 자물쇠는 여인의 작은 힘에도 둔탁한 금속음을 내며 맥없이 바스라져 내렸습니다.

    여인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자의 무거운 뚜껑을 밀어 올렸습니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어둡고 침침했던 초가집 대청마루가 도저히 두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도 압도적인 황금빛으로 순식간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아아...! 부처님 맙소사! 이, 이것이 대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커다란 옻칠 상자 안에는 눈을 멀게 할 듯한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막대한 양의 금괴가 빈틈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하나하나가 어른의 주먹을 두 개 합친 것보다 더 큰 묵직한 순금괴들이 겹겹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이 어마어마한 재물이 과거 전란의 위기 속에서 왕실의 누군가가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은밀히 빼돌려 숨겨두었던 비밀 자금임을 증명하듯, 궁궐의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진 옥패와 금패들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수백 년의 기나긴 세월을 캄캄한 흙 속에서 견뎌온 왕실의 막대한 내탕금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낸 한 가녀린 과부의 선행에 대한 백학의 숭고한 보은으로 드디어 세상 빛을 보며 그 찬란한 위용을 드러낸 것입니다.

    가난하고 멸시받는 삶을 이어가며 당장 내일 아침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외로운 여인에게, 상자 가득 쌓인 이 엄청난 황금은 실로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저승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엄청난 기적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여인은 그 찬란하고도 무서운 황금빛 앞에서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버려 마루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가엾고 신령스러운 백학이, 하늘의 섭리를 받아 미천한 내게 이토록 감당치 못할 엄청난 복을 내려주고 떠났구나. 내 비록 한낱 짐승의 꺼져가는 생명 하나를 살리고자 내민 작은 온정이었거늘, 하늘은 이토록 크고 무거운 은혜로 내 기구한 삶을 보상해 주시는구나.'

    여인은 떨리는 손끝으로 차갑고도 매끄러운 금괴의 표면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기쁨과 환희도 잠시, 이내 그녀의 뇌리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왕실의 재물은, 힘없고 백 없는 천한 과부 홀로 감당하고 지켜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만약 눈치 빠른 관아의 탐관오리나 흉포한 도적 떼들의 귀에 이 엄청난 금괴의 소문이 한 자락이라도 들어간다면, 재물을 고스란히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능지처참을 당해 목숨조차 온전히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감격의 눈물은 어느새 극도의 공포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인은 황급히 덜덜 떨리는 양팔로 상자의 뚜껑을 쾅 닫아버리고는, 무거운 상자를 낑낑대며 다시 원래 있던 마루 밑 깊숙한 구덩이 속으로 필사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파헤쳤던 흙을 맨손으로 미친 듯이 긁어 덮고 그 위에 널빤지를 덮은 뒤, 주변의 먼지와 지푸라기들을 끌어모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철저하게 위장했습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맹렬하게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으며, 흙투성이가 된 손끝의 떨림은 밤이 깊도록 진정될 줄을 몰랐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시한폭탄 같은 금괴를 도대체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세상천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자신이 누구를 믿고 의지하여 이 목숨이 걸린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지... 여인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숨을 죽인 채, 깊고도 두려운 고민의 늪에 빠져들며 평생 잊지 못할 길고도 긴 뜬눈의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4: 충직한 머슴의 헌신과 피어나는 연정

    막대한 왕실의 금괴를 다시 캄캄한 마루 밑 흙바닥에 파묻고 위장해 둔 그날 밤부터, 여인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지독한 불면의 밤으로 얼룩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깊어 산바람에 창호지가 파르르 떨리기만 해도 관아의 포졸들이 칼을 차고 들이닥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부엉이 울음소리에도 산적 떼가 담을 넘는 환청이 들려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죽여 울어야만 했습니다. 단 하루도 편히 눈을 붙이지 못하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끙끙 앓던 여인은, 이 엄청나고도 무서운 비밀을 연약한 아낙네 홀로 온전히 감당하고 지켜낼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당장 이 목숨줄과도 같은 횡재를 무사히 세상 밖으로 꺼내어 줄, 입이 무겁고 믿음직한 누군가의 도움이 너무도 절실했습니다.

    그때 핏발 선 여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의 본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슴살이를 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우직한 사내였습니다. 비록 신분은 천하고 글공부 한 번 해본 적 없는 까막눈이었으나, 심성이 깊은 산속의 바위처럼 굳건하고 입이 무거워 마을 사람들의 신망이 두터운 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사내는 여인이 시댁의 모진 구박을 견디다 못해 홀로 이 척박한 산골짜기로 쫓겨나듯 들어온 후에도, 이따금 깊은 산에서 무거운 땔감을 한가득 해다가는 행여나 여인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인기척도 없이 마당 한구석에 조용히 쌓아두고 가곤 하던, 유일하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은 날이 밝자마자 거울 앞에서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치맛자락을 동여맨 뒤, 사내가 일하는 산등성이 밭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인적 드문 숲길로 사내를 조심스레 불러낸 여인은, 두려움과 절박함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상처 입은 백학을 치료해 준 일부터 마루 밑에서 쏟아져 나온 엄청난 양의 왕실 금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있었던 모든 믿기 힘든 사실을 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여인이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 헛것을 본 것이라 여기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던 사내도, 그날 밤 몰래 여인의 집을 찾아가 직접 마루 밑의 옻칠 된 상자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하고도 압도적인 황금빛을 마주하고는 그만 넋을 잃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흙바닥만 파며 살아온 천한 머슴의 눈앞에 펼쳐진 수백 개의 금괴는 실로 가슴이 멎을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내는 결코 경거망동하거나 헛된 탐욕에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는 크게 놀란 가슴을 깊은 심호흡으로 애써 진정시키고는, 극도의 불안감에 사시나무처럼 떠는 여인의 거칠고 가녀린 두 손을 자신의 투박하고 커다란 손으로 따뜻하고 단단하게 감싸 쥐었습니다.

    "마님,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이 마님의 그 곱고 착한 심성을 어여삐 여겨 짐승을 통해 내리신 크나큰 복이니, 이 놈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귀한 재물을 온전히 지켜내겠습니다. 당분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여나 누가 보더라도 평소와 똑같이 지내셔야 합니다. 이 막대한 금괴를 한꺼번에 세상 장터에 내놓았다가는 출처를 의심받아 당장 관아에 끌려가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제가 며칠에 한 번씩 금괴를 품에 숨겨, 아무도 저를 모르는 먼 타방의 객주들을 돌아다니며 헐값에라도 조금씩 은전과 엽전으로 바꾸어 오겠습니다. 제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마님께는 절대 불똥이 튀지 않게 할 것이니, 저만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그날부터 금괴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한 사내의 은밀하고도 목숨을 건 위험한 행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묵직한 금괴 한두 개를 거친 무명천으로 둘둘 말아 허리춤 깊숙한 전대에 단단히 숨긴 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며칠씩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 이름조차 생소한 낯선 큰 장터만을 찾아다녔습니다. 눈치 빠르고 탐욕스러운 객주들에게 금의 출처를 의심받으며 협박을 당할 때면 호통을 치며 억센 기세로 위기를 모면하였고, 때로는 금 냄새를 맡고 따라붙은 험악한 왈패와 강도들의 표적이 되어 깊은 산속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매를 맞고 뒹굴면서도, 품속에 바꾼 은전만큼은 악착같이 껴안고 끝내 지켜냈습니다.

    그렇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옷이 다 찢어진 채로 절뚝거리며 돌아온 사내를 한밤중에 맞이할 때면, 여인은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참담한 아픔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여인은 밤을 새워 솥에 끓인 따뜻한 물로 사내의 피 묻은 얼굴과 몸의 상처를 정성껏 닦아주고, 백학을 치료할 때 쓰던 귀한 약초를 짓이겨 발라주며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두려움과 헛된 욕심 때문에, 이리도 착하고 충직한 사람이 내 대신 죽을 고비를 넘기며 험한 꼴을 당하고 있구나. 나를 위해 목숨마저 아끼지 않는 이 사내의 한없이 크고 깊은 은혜를, 내 어찌 미천한 이 한 몸으로 다 갚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상처를 붙들고 오열하는 여인의 눈물을 거친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닦아주며, 사내는 오히려 빙그레 듬직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 슬피 울지 마십시오. 저는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거친 흙바닥에서 구르며 짐승처럼 살아온 놈입니다. 이깟 얕은 생채기는 며칠 푹 자고 나면 씻은 듯이 아무니 제 걱정은 조금도 마십시오. 그저 마님께서 지난날의 고단함을 잊고 다리 쭉 뻗고 편안히 주무실 수만 있다면, 저는 이 한 몸 다 부서져도 그것으로 진정 족합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위험을 묵묵히 함께 넘기고, 서로의 깊은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사이, 엄격했던 신분의 격차와 과부라는 처지를 훌쩍 뛰어넘어 두 사람의 가슴 속에는 어느새 세상 그 무엇보다 깊고 애틋한 연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의지할 곳 없이 세상에 홀로 버려졌던 외로운 여인에게 사내는 이제 그 어떤 찬란한 금괴보다 든든하고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가 되어 있었고, 사내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남몰래 흠모하며 품어왔던 여인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더는 숨기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산바람만이 맴돌던 산골짜기 허름한 초가집 안에는, 차가운 황금의 빛을 덮고도 남을 만큼 눈부시고 가슴 벅찬 사랑의 온기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 5: 부부의 연을 맺고 서해안의 버려진 염전을 사들이다

    사내의 목숨을 건 헌신적인 노력과 피땀 어린 수고 끝에, 마루 밑 구덩이에 숨겨져 있던 막대한 금괴는 어느새 관아의 눈을 완벽히 피한 엄청난 양의 은전과 전국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든든한 어음으로 무사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남의 집 머슴과 천대받는 과부의 신분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평생을 비단옷을 입고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일국을 뒤흔들 만한 막대한 재물이 모였지만, 두 사람은 결코 이 재물 앞에 교만해지거나 들뜨지 않았습니다. 모든 돈 세탁이 끝난 어느 달 밝은 밤, 사내는 여인의 두 손을 꼭 잡고 진심을 다해 이제 이 좁고 외진 산골의 과거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간곡히 청했습니다.

    "우리 이제 슬픔만이 가득했던 이 산골을 훌쩍 떠나,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저 넓은 세상으로 함께 나갑시다. 부족한 제 곁에서 남은 평생을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비록 평생 낫과 지게만 쥐어본 투박하고 무식한 사내지만, 제 남은 생과 심장을 모두 바쳐 당신의 고운 눈에 두 번 다시는 슬픈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태산 같은 방패가 되어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여인은 사내의 거칠지만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품에 푹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깊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달빛만이 비추는 조촐한 마당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경건하고 정갈한 혼례를 올렸고, 죽는 날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평생을 함께할 부부의 굳은 연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모아둔 막대한 재산을 꼼꼼히 수습하여 봇짐에 단단히 꾸린 뒤, 길고 길었던 아픔의 시간들이 묻어있는 정든 산골집을 미련 없이 떠나 서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내륙의 깊은 산세와 들판을 모두 벗어나, 짠내 나는 거친 바닷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오는 서해안의 어느 낯선 포구 마을로 터전을 옮긴 것은, 새롭게 부부로 맺어진 두 사람의 과거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장차 조선의 물산을 쥐락펴락할 거대한 상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사내의 크고 깊은 혜안이었습니다.

    서해안의 활기찬 포구에 당도한 부부는 평범한 피난민 부부처럼 신분을 위장하고 마을 외곽에 소박하고 단출한 초가집을 한 채 구했습니다. 여인은 그저 이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지난날의 상처를 잊고 남편과 함께 텃밭이나 일구며 평온한 여생을 보내기를 바랐으나, 남편이 된 사내의 원대한 뜻은 달랐습니다. 하늘이 내린 기적 같은 재물을 그저 곳간에 쌓아두고 조금씩 갉아먹으며 안일하게 허송세월하는 것은, 천지의 이치에 맞지 않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굳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 막대한 돈은 신령한 백학이 헐벗은 우리 부부에게 베푼 크나큰 은혜요, 하늘이 세상을 위해 쓰라고 주신 천재일우의 기회다. 이 재물을 밑천 삼아 더 큰 부를 일구어,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돕고 세상에 참으로 이로운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하늘의 숭고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사내는 매일같이 허름한 봇짐을 메고 서해안 일대의 갯벌과 포구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가진 돈을 쏟아부어 큰일을 도모할 만한 장삿거리를 치밀하게 물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의 예리한 시선 끝에 마을 외곽 끄트머리에 끝없이 넓게 펼쳐진 흉물스럽고 황량한 땅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거대한 폐염전이었습니다. 한때는 제법 많은 소금을 구워내어 한양으로 올려보내던 활기찬 곳이었으나, 이 지역 갯벌 흙의 기이한 성질과 바닷물의 흐름 탓인지 생산된 소금에서 혀가 마비될 정도로 지독히 쓴맛이 나 상품 가치가 완전히 떨어져 버렸고, 결국 견디지 못한 상인과 일꾼들이 모두 파산하여 떠나버린 버려진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흉흉한 소문이 도는 그곳을 가리켜 '저주받은 짠 땅'이라 부르며 근처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극도로 꺼렸습니다.

    하지만 사내의 눈빛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예사롭지 않게 번뜩였습니다. 소금은 사람이 살아가고 목숨을 잇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귀하고 필수적인 물건이었고, 조선 팔도 어디서나 금값처럼 대우받는 절대적인 재화였습니다. 만약 남들이 포기한 저 넓고 버려진 염전에서 소금의 쓴맛을 잡고 질 좋은 흰 소금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천하의 상권을 거머쥐는 것과 다름없을 터였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사내는 아내의 두 손을 꽉 쥐며 굳은 결심을 담아 염전을 사들이겠다는 강렬한 뜻을 밝혔습니다.

    "부인, 이 마을의 모든 이들이 쓸모없다고 침을 뱉고 버린 저주받은 땅이지만, 제 두 눈에는 저 끝없이 황량한 갯벌이 엄청난 황금을 쏟아낼 거대한 노다지로 보입니다. 조금만 지혜를 모으고 피땀을 흘려 쓴맛을 없앨 방도를 기어코 찾아낸다면, 우리 부부는 이 조선 땅에서 가장 으뜸가는 거상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한 번만 믿어 주시겠습니까."

    아내는 남편의 형형한 눈빛 속에서 굳은 의지와 번뜩이는 거상의 안목을 보았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부는 그동안 목숨 걸고 모아둔 재물 중 상당 부분을 과감하게 풀어, 서해안 일대에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던 버려진 폐염전들을 헐값에 모조리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오갈 데 없이 거리를 떠도는 유랑민들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난한 백성들을 불러 모아, 쌀과 고기 등 후한 품삯을 선뜻 내어주고 일꾼으로 거두어들였습니다. 수년 동안 방치되어 흙막이가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한 수로를 다시 깊게 파내고, 질퍽한 갯벌의 흙을 평평하게 고르고 단단하게 다지는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쓴 소금밖에 나지 않는 썩은 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기이한 부부를 보며 어리석다며 혀를 차고 손가락질했지만, 부부는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새로운 희망의 거대한 터전을 서서히 일구어 나갔습니다.

    ※ 6: 쓴맛 나는 간수를 뺀 기적의 소금 개발

    [씬 6] 쓴맛 나는 간수를 뺀 기적의 소금 개발

    오랜 대공사 끝에 드디어 서해안의 갯벌 위에 광활한 염전의 형태는 갖추어졌습니다. 사내와 일꾼들은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을 넓은 염전 판에 가두고, 매서운 바닷바람과 뜨거운 햇빛에 수분을 말려 마침내 하얀 소금 결정을 얻어내는 데까지는 순조롭게 성공했습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 소금 산을 보며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진짜 피 말리는 사투는 갓 거두어들인 첫 소금을 맛보는 그 순간부터 잔인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갓 나온 하얀 소금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자마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혀가 아리고 목이 타는 듯한 떫고 지독한 쓴맛이 강하게 맴돌았던 것입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일꾼들은 입안의 소금을 황급히 바닥에 뱉어내며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독약과도 같은 맛이었습니다.

    "아이고 나리, 퉤퉤! 아무래도 여긴 정말 저주받은 땅이 맞는 모양입니다요! 이 염전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에는 태생적으로 독하고 쓴 간수라는 놈이 징글징글하게 섞여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예전 주인들도 이 지독한 쓴맛을 잡으려 평생을 바쳤으나, 결국 파산하고 야반도주를 한 것입니다요. 우리도 더 큰 돈을 날리고 패가망신하기 전에, 어서 손을 터는 것이 유일한 살길입니다!"

    절망에 빠진 일꾼들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결코 포기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소금의 쓴맛을 내는 원흉이 갯물 속에 섞여 있는 '간수'라는 끈적하고 무거운 액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이 악마 같은 간수를 하얀 소금 결정에서 완벽하게 분리해 낼 방도를 찾기 위해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사내는 며칠 밤을 하얗게 새우며 커다란 무쇠솥에 쓴 소금을 넣고 다시 펄펄 끓여보기도 하고, 산에서 길어온 맑은 계곡물에 소금을 벅벅 씻어내 보기도 했으며, 고운 황토를 섞어 짠물을 걸러내 보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솥에 끓인 소금은 까맣게 타버리기 일쑤였고, 물에 씻은 소금은 형체도 없이 녹아버려 막대한 돈과 일꾼들의 피땀만 썰물처럼 빠져나갈 뿐이었습니다. 텅 빈 창고 앞에는 버려야 할 쓴 소금만이 산더미처럼 흉물스럽게 쌓여만 갔습니다. 몸도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곁에서 묵묵히 따뜻한 밥을 짓고 소금물에 젖어 튼 남편의 거친 손을 어루만지며 결코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반드시, 기필코 쓴맛을 잡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늘이 우리 부부를 이 낯설고 거친 바닷가 땅으로 이끄셨을 때는, 필시 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함께 주셨을 터. 사람의 억지스러운 힘으로 짜내려 할 것이 아니라, 자연이 품은 독이라면 오직 자연의 순리와 시간 속에서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갯마을을 걷던 사내는, 한 노파가 마당 한구석 평상 위에 대나무 소쿠리를 올려두고 그 안에 소량의 굵은 소금을 담아 둔 것을 무심코 보게 되었습니다. 소쿠리 바닥에는 짚풀이 듬성듬성 깔려 있었고, 짙은 바다 안개가 낀 습한 아침이 되자 소금은 공기 중의 물기를 잔뜩 머금고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쿠리의 틈새를 타고 끈적하고 누르스름한 액체가 한 방울씩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홀린 듯이 다가가 평상 아래로 떨어지는 누런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습니다. 혀가 마비될 듯한 끔찍한 쓴맛, 바로 그 지독한 간수였습니다! 반대로, 소쿠리 안에 남겨져 물기가 쫙 빠진 하얀 소금을 한 꼬집 집어 입에 넣어본 사내는 그만 온몸에 전율이 일며 번쩍 눈을 떴습니다. 혀를 찌르던 쓴맛은 온데간데없이 말끔히 사라지고, 혀끝에 오랫동안 기분 좋게 감도는 달큼하고도 깊은 바다 본연의 짠맛만이 완벽하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었어! 간수는 공기 중의 물기를 빨아들여 스스로 녹아내리는 성질이 있었구나! 불로 억지로 끓이거나 물로 씻어낼 것이 아니라, 통풍이 잘되는 곳에 소금을 가득 쌓아두고 자연의 흐르는 시간에 온전히 맡겨두면, 바닷바람의 습기를 머금은 간수가 스스로 무거워져 중력에 의해 밑으로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이었어!"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사내는 미친 듯이 염전으로 달려가 즉시 흩어졌던 일꾼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염전 한편에 이제껏 누구도 본 적 없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특수 소금 창고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사내는 먼저 굵은 통나무 기둥을 세워 창고의 바닥을 땅에서 사람 키만큼 높게 띄워 올렸습니다. 밑으로 서해의 눅눅하고 강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다음 널빤지를 틈새가 벌어지도록 듬성듬성 깔고, 그 위에 굵게 엮은 볏짚 거적과 대나무 채반을 켜켜이 깐 뒤, 갯바람에 잘 말린 솔가지와 잎을 두툼하게 덮어 천연 거름망을 만들었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사내는 갓 생산된 쓴 소금을 가마니에 담아 창고 안으로 쉴 새 없이 져 날라 천장 끝까지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게 했습니다.

    "자, 이제 사람의 할 일은 모두 끝이 났소. 이제부터는 저 거친 바닷바람과 구름,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나머지 일을 해줄 것이오."

    사내와 아내, 그리고 일꾼들은 창고 문을 굳게 닫고 간절한 마음으로 묵묵히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짙은 해무가 끼는 날들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금 결정 사이에 끈질기게 머물러 있던 독하고 쓴 간수들이 습기를 머금고 녹아내려 솔잎과 대나무 틈 사이로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고 바닥 아래에는 커다란 독방석을 여러 개 받쳐두어 떨어지는 간수를 모았는데, 훗날 이 간수는 두부를 굳히는 데 더없이 귀한 재료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애가 타는 삼 년이라는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약속된 날이 다가왔고, 삐걱거리는 낡은 창고의 문을 조심스레 연 사내와 일꾼들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거무튀튀하고 습했던 쓴 소금 산은 탁한 빛과 쓴맛을 모두 토해내고, 눈이 시리도록 투명하고 새하얀 은빛 결정을 반짝이며 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새하얀 소금을 한 움큼 쥐어 일꾼들에게 내밀었고, 숨을 죽인 채 소금을 맛본 일꾼들의 입에서는 이내 천지를 진동하는 벅찬 탄성과 감격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이고 나리! 대행수 어르신! 부처님 맙소사, 혀를 찌르던 그 모진 쓴맛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구먼유! 씹을수록 이리 고소하고 깊은 단맛이 우러나는 고운 소금은, 지가 이 바닥에서 평생 구르며 살아온 중 처음 봅니다요! 우리가 해냈습니다요!"

    마침내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달콤한 천일염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쓰디쓴 실패와 죽음의 땅이라 불리며 모두가 버렸던 서해안의 폐염전은, 자연의 이치를 꿰뚫어 본 사내의 번뜩이는 지혜와 초인적인 기다림, 그리고 아내의 따뜻하고 묵묵한 내조 덕분에 조선 최고의 최상품 천일염을 끝없이 쏟아내는 거대한 황금어장이자 생명의 터전으로 완벽하고 화려하게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 7: 조선 팔도를 주름잡는 대행수로 우뚝 서다

    독한 간수를 완벽하게 빼내어 쓴맛이 전혀 없고 오히려 뒷맛이 기분 좋게 달큼한 기적의 소금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봇짐장수들의 입과 발이 달린 듯 순식간에 서해안을 넘어 한양 도성부터 국경 끝자락까지 조선 팔도 방방곡곡으로 거침없이 퍼져나갔습니다. 전국 각지의 돈 냄새를 맡은 거대 상단과 내로라하는 객주들이 이 진귀하고 뛰어난 품질의 소금을 앞다투어 구하기 위해, 먼지가 날리는 험한 길을 뚫고 서해안의 작은 포구 마을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소금을 싣기 위해 당도한 거대한 상선들이 배가 포구에 닿기도 전에 바다 위에서 억대의 소금 계약이 치열하게 체결되었고, 은전과 엽전을 궤짝째 소달구지에 실어 들고 와서 며칠씩 객잔에 진을 치며 차례를 기다리는 상인들로, 한적했던 갯마을 포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횃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나리! 아니, 대행수 어르신! 어르신의 소금은 한양 운종가의 난전 상인들뿐만 아니라, 까다롭기로 소문난 궁궐 수라간의 대령숙수들조차 이 소금이 아니면 임금의 수라를 짓지 않겠다며 찾을 정도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요! 값을 부르는 것이 곧 법이 되니, 내년이 오기 전에 조선 팔도의 모든 소금 상권과 뱃길은 어르신께서 전부 쥐락펴락하시게 될 겝니다!"

    한때 깊은 산골짜기에서 남의 집 땔감을 패며 끼니를 연명하던 천하고 버림받았던 머슴은, 이제 그 누구도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수백 명의 일꾼을 거느리고 수십 척의 상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조선 최고의 거상, 대행수로 당당히 우뚝 섰습니다. 가난과 뼈저린 외로움에 떨며 짐승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가녀린 과부 역시, 기품 있고 자애로우며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대행수 상단의 안방마님으로서 눈부신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 권세가들의 아부가 쏟아졌으나, 부부는 결코 지난날의 자신들을 잊고 교만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뼈저리게 겪었던 그 지독한 가난과 절망의 고통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천하를 얻은 대행수가 된 사내는 해마다 흉년이 들거나 역병이 돌 때면,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자신의 거대한 창고 문을 활짝 열어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소금과 곡식을 무상으로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갈 곳 없이 거리를 떠도는 어린 고아들과 병든 노인들을 위해 마을에서 가장 양지바른 곳에 커다란 구휼소를 지어 먹이고 입혀 거두었으며,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는 일꾼들에게는 조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넉넉한 삯을 주고 융숭하게 사람대접을 하니, 서해안 일대에서 대행수 부부의 크나큰 은혜와 자비를 입지 않은 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 어느 화창하고 눈부신 봄날, 어느덧 머리엔 하얀 눈이 내린 듯 백발이 성성해진 노부부가 지팡이를 짚고 산기슭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 아래로는 그들이 평생을 바쳐 일구어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 염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맑은 봄의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수십 개의 하얀 소금 산들은, 마치 아주 오래전 가난한 산골 초가집에서 그들이 정성껏 구해주었던 신령한 백학의 새하얀 깃털처럼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보, 저 눈부시게 하얀 소금밭의 산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꼭 그 옛날 우리에게 은혜를 갚고 푸른 하늘로 훌쩍 떠나갔던 그 아름다운 백학의 커다란 날갯짓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우리가 함께 손을 맞잡고 피땀으로 이룬 이 모든 것들이, 참으로 한바탕 기적 같고 달콤한 꿈만 같습니다그려."

    백발의 부인은 남편의 투박하고 주름진 손을 마주 잡으며, 세월의 깊이가 담긴 자애롭고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아닙니다, 영감. 이 거대한 모든 기적은 백학의 보은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신의 변치 않는 선한 마음과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굳건한 용기가 만들어낸 땀방울의 결실입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맺어준 이 귀한 인연과 그 큰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세상의 가엾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살았으니, 험난했던 우리의 지난 삶은 참으로 차고 넘치도록 충만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서해의 하늘 위로, 거짓말처럼 커다랗고 기품 있는 백학 한 쌍이 날아와 노부부가 앉아 있는 정자 위를 여유롭고 우아하게 선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그 옛날의 빚을 잊지 않고 찾아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며 훌륭하게 삶을 일구어낸 두 사람의 황혼을 진심으로 축복이라도 하듯, 청아하고 긴 울음소리가 짭조름한 서해안의 바람을 타고 온 마을에 평화롭고 성스럽게 울려 퍼졌습니다. 상처 입은 작은 생명을 거둔 가녀린 여인의 작은 연민에서 시작된 이 놀라운 인연은,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두 사람의 운명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고 수백수천 사람의 배를 불리는 거대한 기적이 되어, 조선 팔도에 오래도록 구전되는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전설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들려드린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작은 온정이 큰 기적으로 돌아오고, 숱한 고난 끝에 마침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부부의 모습에 가슴이 참 뭉클해집니다. 우리 시청자 여러분의 삶에도 백학이 물어다 준 기적처럼, 뜻밖의 행운과 웃음꽃이 가득 피어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다정한 댓글 한 줄 잊지 마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가슴 벅차고 재미있는 <노다지 캐러가요> 옛날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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