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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무당을 구한 약초꾼

노다지 캐러가자 2026. 7. 15. 18:1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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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무당을 구한 약초꾼

    부제

    눈보라 치는 산길에 쓰러진 무당을 발견한 가난한 약초꾼은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약초를 써 그녀의 생명을 구합니다. 갈 곳을 잃은 무당은 약초꾼과 한집에서 살며 신비한 신기로 장사를 시작하고, 두 사람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버려진 산에서 거부가 될 뜻밖의 길을 발견합니다.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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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눈밭에 쓰러진 무당을 살리기 위해 약초꾼은 빚을 갚을 마지막 약초까지 모두 달여 먹였습니다. 목숨을 건진 무당은 은혜를 갚겠다며 그의 집에 머물렀고, 어느 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버려진 산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산을 사세요. 그 안에 우리 두 사람의 팔자를 바꿀 노다지가 잠들어 있습니다.”

    ※ 1: 눈밭에 쓰러진 여인

    강원도 깊은 산골에 강산돌이라는 약초꾼이 살았다. 이름에 산이 들어간 까닭인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산을 제집 마당처럼 오갔다. 진달래가 피기 전에는 잔설 아래 돋는 세신을 찾았고, 장마가 오기 전에는 절벽에 붙은 석곡을 캤다. 가을에는 더덕과 도라지를 캐고 겨울에는 나무껍질과 마른 열매를 모았다.

    산돌은 약초를 보는 눈이 밝았다. 남들이 잡초라며 밟고 지나가는 풀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기침을 멎게 하고 부기를 가라앉히는 약이 되었다. 그러나 약초를 잘 안다고 해서 살림이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의 약재상 조만복이 약초값을 제멋대로 후려쳤기 때문이다.

    “겨우 이것밖에 못 캤느냐?”

    조만복은 산돌이 가져온 당귀와 황기를 뒤적거리며 인상을 썼다.

    “당귀의 향이 깊고 뿌리도 굵습니다. 적어도 닷 냥은 받아야 합니다.”

    “닷 냥? 썩은 흙뿌리에 금칠이라도 했느냐?”

    “지난 장날에는 같은 품질에 넉 냥 반을 주셨습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싫으면 다른 데 가져가 보아라.”

    고을에서 약초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곳은 조만복의 약재방뿐이었다. 다른 장터로 가려면 산을 두 개나 넘어야 했고, 길에서 도적을 만날 위험도 있었다.

    조만복은 동전 두 냥을 탁자 위에 던졌다.

    “게다가 네 아비가 약값으로 빌린 돈이 아직 열 냥이나 남았다. 이자를 생각하면 이것도 많이 주는 것이다.”

    산돌의 아버지는 삼 년 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빌린 원금은 이미 대부분 갚았지만 조만복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붙였다. 산돌이 따져 물으면 글을 모르는 그에게 빚문서를 들이밀었다.

    “보름 안에 열 냥을 갚지 못하면 네 초가집과 약초밭을 가져가겠다.”

    “봄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려 달라는 말로 빚이 사라지더냐?”

    산돌은 두 냥을 품에 넣고 약재방을 나왔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먹구름이 깔려 있었다.

    그에게 마지막 희망이 하나 있었다. 사흘 전 깊은 산속 바위틈에서 발견한 백년 묵은 산삼이었다. 아직 캐지는 않고 붉은 실만 묶어 두었다. 그것을 온전히 캐서 한양 약령시에 가져가면 빚을 갚고도 몇 년을 살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산돌은 눈이 내리기 전에 산삼을 캐려고 산에 올랐다. 하지만 산허리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거세지며 함박눈이 쏟아졌다. 눈발은 순식간에 길과 바위의 경계를 지워 버렸다.

    “오늘은 내려가야겠구나.”

    산돌이 걸음을 돌리려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낮게 날며 울었다. 까마귀는 소나무 위에 앉아 아래쪽 골짜기를 향해 연신 부리를 움직였다.

    그곳에는 사람의 발처럼 보이는 것이 눈 밖으로 나와 있었다.

    산돌은 비탈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눈을 걷어 내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등에 작은 방울 꾸러미를 지고 머리에는 빛바랜 비녀를 꽂은 것으로 보아 떠돌이 무당 같았다.

    여인의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숨결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손목에는 깊은 상처까지 나 있었다.

    “여보시오. 정신을 차리시오!”

    산돌은 여인을 업고 근처 바위굴로 들어갔다. 불을 피우고 젖은 겉옷을 벗긴 뒤 마른 두루마기로 감쌌지만 체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약초 주머니에는 말린 생강과 황기 몇 조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얼어붙은 몸을 살리기는 어려웠다.

    산돌의 눈이 산삼이 있는 능선으로 향했다.

    '저 산삼만 캐면 빚을 갚을 수 있다. 집도 약초밭도 지킬 수 있어.'

    그러나 여인은 당장 숨이 끊어질 듯 가늘게 떨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 하나를 살리자고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산삼을 써야 하는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한 말이 떠올랐다.

    “약초는 돈이 되기 전에 사람을 살리는 풀이다. 눈앞에 죽어 가는 이를 두고 값부터 따진다면 약초꾼이 아니라 장사꾼이지.”

    산돌은 눈보라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산삼을 찾아 조심스럽게 캐낼 시간도 없었다. 그는 얼어붙은 땅을 손으로 파헤쳤다. 손톱이 갈라지고 피가 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산삼을 캐낸 산돌은 바위굴로 돌아왔다. 뿌리 절반을 잘게 찧어 눈 녹인 물에 달이고, 남은 절반은 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이것을 먹고도 깨어나지 못하면 나도 방법이 없소.”

    여인의 입을 벌려 산삼 달인 물을 조금씩 흘려 넣었다. 한참이 지나자 파랗던 입술에 희미한 붉은 기운이 돌았다.

    여인이 눈을 뜨더니 산돌의 손목을 갑자기 붙잡았다.

    “안 돼…… 그 산을 사면 안 돼…….”

    “정신이 드시오?”

    “피가 흐르는 산이야. 그 산을 가진 사람은 모두 죽어.”

    여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산돌은 그녀를 업고 밤새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초가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신도 탈진해 문지방 앞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여인을 아랫목에 눕힌 뒤 산돌은 빈 산삼 보자기를 바라보았다. 빚을 갚을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그때 문밖에서 거친 두드림이 울렸다.

    “강산돌, 안에 있느냐?”

    조만복의 목소리였다.

    “보름을 기다릴 것도 없다. 네가 산삼을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다. 빚 대신 당장 내놓아라!”

    산돌은 아랫목에 누운 여인과 빈 보자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밭의 여인을 살린 대가로, 이제 그가 가진 집과 약초밭을 모두 빼앗길 차례였다.

    ※ 2: 귀신을 보는 눈, 사람을 살리는 손

    산돌은 방문을 열고 조만복과 마주 섰다. 조만복의 뒤에는 몽둥이를 든 사내 둘이 서 있었다. 조만복은 허락도 없이 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산삼은 어디 있느냐?”

    “사람을 살리는 데 썼습니다.”

    “사람을 살려?”

    조만복은 아랫목에 누운 여인을 발견했다. 붉은 치마와 방울 꾸러미를 본 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저 여자는 누구냐?”

    “산에서 쓰러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만복은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더니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죽을 사람은 죽게 두어야지, 귀한 산삼을 떠돌이 무당에게 먹였단 말이냐?”

    “내 산삼을 어디에 쓰든 제 마음입니다.”

    “네 아비의 빚이 남아 있으니 네 것이 곧 내 것이다.”

    조만복은 방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그때 잠들어 있던 여인이 눈을 번쩍 떴다.

    “들어오지 마라.”

    목소리는 약했지만 이상할 만큼 서늘했다. 조만복의 발이 문턱 앞에서 멈췄다.

    여인은 그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남의 피가 묻은 문서를 품고 있구나.”

    조만복이 움찔했다.

    “무슨 헛소리냐?”

    “그 문서 때문에 밤마다 우물에서 물 긷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 네가 빼앗은 집의 주인이 아직 떠나지 못했다.”

    조만복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몇 해 전 빚문서를 위조해 우물가의 기와집을 빼앗은 뒤, 원래 주인이 그 우물에 몸을 던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요망한 계집이 사람을 모함하는구나!”

    그는 큰소리를 쳤지만 방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사흘 뒤 다시 오겠다. 산삼값 열 냥을 내놓지 못하면 이 집을 가져갈 것이다.”

    조만복과 사내들이 돌아가자 산돌은 여인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정신이 좀 드시오?”

    “내 이름은 월령입니다.”

    “나는 강산돌이라 하오.”

    월령은 산삼을 먹었다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산돌의 갈라진 손톱과 피 묻은 손가락을 보았다.

    “그 산삼이면 집을 몇 채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어찌 처음 보는 나에게 썼습니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값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까?”

    산돌은 구멍 난 지붕을 올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조금은 후회됩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소.”

    월령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열 살 때 신병을 앓아 무당의 길로 들어섰다. 사람의 얼굴 주변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보았고, 꿈속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 한 부잣집 아이가 물가에서 큰 화를 입을 것이라 경고했다가 쫓겨났다. 부자는 불길한 말을 했다며 월령을 매질했다. 며칠 뒤 아이가 실제로 얼음물에 빠지자 사람들은 월령이 저주를 내렸다고 몰아붙였다. 신당은 불탔고 그녀는 산으로 도망쳤다.

    “사람들은 좋은 점괘가 나오면 복채를 주고, 나쁜 점괘가 나오면 무당을 때립니다.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모든 불행이 내 탓이 되었지요.”

    “그렇다고 죽으려 한 것이오?”

    월령은 손목의 상처를 가렸다.

    “죽으려 한 것이 아니라 붙잡은 자들의 칼에 베였습니다. 눈보라 속을 달아나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산돌은 더 묻지 않았다. 갈 곳이 없다면 몸이 나을 때까지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월령은 아랫목을 자신이 차지할 수 없다며 부엌 옆 작은 방으로 옮겼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밥을 짓고 약초를 다듬었다. 산돌이 산에서 약초를 캐 오면 월령은 효능별로 묶어 말렸다.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살기 시작하자 마을에는 금세 소문이 돌았다.

    “노총각 약초꾼이 산에서 색시를 주워 왔다더라.”

    “색시가 아니라 귀신 들린 무당이라지?”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월령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산돌이 약초를 팔러 가려 할 때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오늘은 동쪽 장터로 가지 마세요.”

    “왜 그러오?”

    “검은 소가 거꾸로 누워 있고, 수레바퀴가 피에 젖는 모습이 보입니다.”

    산돌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의 표정이 워낙 단호해 서쪽 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

    그날 오후 동쪽 장터로 향하던 소달구지가 벼랑길에서 뒤집혔다. 검은 소가 미끄러지며 수레 세 대가 연달아 넘어졌고, 함께 가던 장사꾼들이 크게 다쳤다.

    소문은 마을 전체로 퍼졌다. 며칠 뒤에는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는 집에서 산돌을 찾아왔다. 의원이 약을 써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돌이 아이의 맥을 짚는 동안 월령은 방구석의 젖은 벽을 바라보았다.

    “병은 아이의 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저 벽을 뜯어 보세요.”

    벽을 뜯자 안에서 썩은 짚과 검은 곰팡이가 쏟아졌다. 월령은 아이가 잠든 자리를 옮기게 했고, 산돌은 열을 내리는 약초를 달였다. 사흘 뒤 아이는 거짓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이의 부모가 쌀 한 말을 가져오자 월령은 절반만 받았다.

    “사람을 살리는 값을 너무 많이 받으면 복이 화로 바뀝니다.”

    산돌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무당도 약초꾼과 비슷한 말을 하는군.”

    “약초는 몸의 병을 보고, 나는 마음과 운의 병을 봅니다. 둘이 힘을 합치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요.”

    두 사람은 장날마다 작은 자리를 펴고 약초와 부적을 함께 팔았다. 월령은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무조건 귀신 탓을 하지 않았다. 얼굴빛과 손의 굳은살, 옷에 밴 냄새를 살핀 뒤 필요한 약초나 피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그녀의 말은 이상할 만큼 잘 들어맞았다. 산돌의 약도 효과가 좋았다. 처음에는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어느 늦은 밤, 월령이 산돌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대로 남의 눈을 피해 살기보다 우리 둘이 제대로 살림을 꾸리면 어떻겠습니까?”

    산돌은 귀까지 붉어졌다.

    “그 말은…… 부부가 되자는 뜻이오?”

    “내 목숨을 살린 사람 곁에서 그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하지만 은혜 때문에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월령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당신 곁에 있으면 귀신 소리보다 사람 숨소리가 더 잘 들립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소박하게 혼례를 올렸다. 가진 것은 초가집과 약초 광주리뿐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부부처럼 웃었다.

    그러나 혼례가 끝난 밤, 월령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산돌의 손을 붙잡았다.

    “내일 조만복이 올 겁니다.”

    “빚을 받으러 오겠지.”

    “빚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당신을 산으로 데려가 죽이려 합니다.”

    ※ 3: 버려진 산을 사시오

    다음 날 아침, 조만복은 뜻밖에도 술과 고기를 들고 찾아왔다. 지난번처럼 몽둥이를 든 사내들도 데려오지 않았다. 그는 마당에 상을 차리게 하고 산돌에게 억지로 술잔을 건넸다.

    “혼인을 했다니 축하할 일이지. 지난번에는 내가 말이 좀 심했네.”

    산돌은 술잔에 입을 대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좋은 장사를 하나 제안하려고 왔네. 북쪽 혈망산에 귀한 약초가 많다는 말을 들었어. 자네가 길을 안내하면 빚을 모두 없애 주지.”

    혈망산은 붉은 절벽과 깊은 구덩이가 많아 사람 잡아먹는 산으로 불렸다. 오래전 광산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갱도가 무너져 수십 명이 죽은 뒤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 산에는 약초가 자라지 않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고 어찌 아나?”

    조만복은 부드럽게 웃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월령이 말한 죽음의 기운이 떠오른 산돌은 제안을 거절했다.

    “빚은 약속한 날까지 갚겠습니다.”

    “빈털터리가 무슨 수로 열 냥을 마련한다는 거냐?”

    조만복은 술상을 걷어차고 일어섰다.

    “네가 순순히 산으로 갔으면 빚문서라도 찢어 주려 했다. 이제 사흘 뒤 이 집을 비워라.”

    그가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월령이 방에서 나왔다.

    “혈망산에서 무엇을 찾았습니까?”

    조만복의 걸음이 멈췄다.

    “여인이 장사에 끼어들지 마라.”

    “붉은 돌입니까, 아니면 무너진 갱도에 숨겨진 장부입니까?”

    조만복이 놀라 월령을 돌아보았다. 곧 표정을 감추고 비웃었다.

    “신기라는 것이 고작 헛소문을 주워 모으는 재주였느냐?”

    “산에 들어갈 때는 열두 명이었는데 돌아온 사람은 셋뿐이었지요. 그중 두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물과 절벽에서 죽었습니다.”

    조만복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산돌이 재빨리 월령 앞을 막아섰다. 마침 이웃들이 혼례 음식을 돌려주러 오자 조만복은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요망한 입을 오래 놀리면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경고를 남기고 돌아갔다.

    산돌은 월령을 바라보았다.

    “혈망산에서 대체 무엇을 본 것이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산과 조만복은 오래전부터 얽혀 있습니다.”

    월령은 혼례 전날부터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피처럼 붉은 물이 산에서 흘러나왔고, 그 물이 장터에 닿자 황금빛으로 변했다. 산 정상에는 흰 수염의 노인이 앉아 빈 약사발을 두드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노인이 말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독이 되고, 사람을 살리면 금이 되는 돌이 산속에 있다고요.”

    “붉은 돌이 금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금보다 귀해질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남은 돈과 혼례 때 받은 곡식을 밑천으로 장터에 작은 가게를 열었다. 이름은 눈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기려 설중당이라 지었다.

    산돌은 약초를 달여 환과 고약을 만들었고, 월령은 손님의 기색과 꿈을 살펴 필요한 물건을 권했다. 무조건 복채를 받는 대신 장사가 잘되면 그때 값을 내게 했다.

    처음 찾아온 손님은 인근 고을의 비단상 이대복이었다. 그는 다음 달 큰 장이 열리면 비단값이 오를지 물었다.

    월령은 비단을 만져 본 뒤 고개를 저었다.

    “비단을 더 사지 마시고 가진 것도 절반은 파십시오. 보름 안에 큰비가 내려 남쪽 길이 끊깁니다. 대신 짚신과 기름 먹인 우장을 준비하세요.”

    이대복은 미심쩍어했지만 산돌이 아이를 살렸다는 소문을 듣고 따랐다. 보름 뒤 때아닌 폭우가 내려 남쪽 길이 끊어졌다. 비단은 창고에 묶였지만 짚신과 우장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대복은 큰돈을 벌어 설중당을 다시 찾았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면 되겠소?”

    월령은 돈 대신 혈망산의 주인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혈망산은 오랫동안 관아에 세금을 내지 못해 매물로 나온 땅이었다. 사람이 죽는 흉산이라는 소문 때문에 가격은 논 한 마지기보다 쌌다. 그러나 조만복도 같은 산을 사기 위해 몰래 아전을 만나고 있었다.

    이대복의 도움으로 산돌과 월령은 조만복보다 하루 먼저 매매 문서를 작성했다. 초가집을 담보로 잡고 장사 밑천까지 모두 털어 넣은 위험한 선택이었다.

    문서를 받아 든 산돌은 기쁘기보다 막막했다.

    “이제 우리는 사람도 살지 못하는 산의 주인이 되었소.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집까지 잃게 될 것이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산은 없습니다. 사람이 그 쓸모를 모를 뿐이지요.”

    두 사람은 삽과 횃불을 챙겨 혈망산으로 향했다. 무너진 옛 갱도 앞에는 썩은 금줄과 깨진 제기가 흩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벽에는 검붉은 돌이 많아졌다.

    산돌이 돌 하나를 떼어 냄새를 맡았다.

    “쇠 냄새와 약초 냄새가 함께 나는군.”

    월령은 돌을 약사발에 갈아 물에 풀었다. 붉은 가루가 물속에서 천천히 가라앉자 위쪽의 물은 놀랄 만큼 맑아졌다.

    그때 갱도 깊은 곳에서 사람의 신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횃불을 들고 소리를 따라갔다. 무너진 돌무더기 뒤에는 오래된 나무문이 숨겨져 있었다. 문에는 검게 마른 손자국이 수십 개나 찍혀 있었다.

    산돌이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낡은 장부 한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아래에는 사람의 뼈와 녹슨 곡괭이가 뒤엉켜 있었다.

    장부 첫 장에는 조만복의 아버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산돌의 아버지 이름과 함께 믿기 어려운 문장이 남아 있었다.

    혈망산의 붉은 돌은 독이 아니다. 바르게 다루면 썩은 물을 맑히고 사람을 살리는 귀한 약돌이다. 그러나 조씨 부자가 광부들을 가두고 산의 비밀을 빼앗으려 한다.

    그 순간 갱도 입구에서 횃불 여러 개가 나타났다.

    조만복이 칼을 든 사내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내 아버지가 평생 감추었던 것을 기어이 찾아냈구나.”

    그는 산돌이 든 장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장부와 산문서를 내놓아라. 그러면 두 사람의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 4: 황금보다 귀한 붉은 돌

    조만복의 뒤로 칼과 몽둥이를 든 사내 여섯이 갱도 입구를 막고 있었다. 산돌은 장부를 품속에 넣고 월령을 등 뒤로 물렸다.

    “이 장부에 적힌 일이 사실입니까?”

    “죽은 자들이 끼적인 글이 무슨 소용이냐?”

    “당신 부친이 광부들을 갱도에 가두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조만복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 아버지는 혈망산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큰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광부들이 광맥을 감추고 돌을 훔치려 했지. 갱도를 막은 것은 벌을 주기 위해서였다.”

    “벌을 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죽인 것이오!”

    “산 하나를 가지려면 그 정도 피는 흘려야 하는 법이다.”

    조만복은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사내들이 산돌과 월령에게 다가왔다.

    그때 월령이 횃불을 들어 갱도 천장을 비추었다. 바위틈에서 가느다란 흙가루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싸우면 모두 죽습니다.”

    조만복이 코웃음을 쳤다.

    “또 신령 타령이냐?”

    “왼쪽 벽 뒤에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기둥 하나만 흔들려도 천장이 무너질 겁니다.”

    사내 하나가 월령의 손목을 잡으려는 순간, 갱도 깊은 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오래된 나무 기둥이 갈라지며 바위 조각이 떨어졌다.

    “밖으로 나가라!”

    산돌이 외쳤지만 조만복은 장부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뒤엉키는 사이 천장이 무너졌다. 횃불이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갱도를 삼켰다.

    산돌은 월령의 손을 잡고 바닥에 엎드렸다. 굉음이 멎었을 때 입구는 거대한 바위로 막혀 있었다. 조만복과 부하들의 신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횃불을 다시 켜시오.”

    간신히 불씨를 살리자 조만복이 돌 아래에 다리를 깔린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부하들은 주인을 버리고 작은 틈을 찾아 달아나려 했다.

    산돌은 지렛대로 쓸 곡괭이를 주워 들었다.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저자를 꺼내야 하오.”

    월령이 조용히 물었다.

    “우리를 죽이려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죽게 둘 수는 없소.”

    산돌은 곡괭이 자루를 바위 밑에 밀어 넣었다. 월령도 옆에서 작은 돌을 괴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자 조만복의 다리를 누르던 바위가 조금씩 움직였다.

    겨우 빠져나온 조만복은 고맙다는 말 대신 품속의 단도를 꺼냈다. 그러나 산돌이 그의 손목을 쳐 단도를 떨어뜨렸다.

    “두 번은 구해 주어도 세 번은 속지 않겠습니다.”

    월령은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무너진 갱도 안쪽에서 희미한 냉기가 흘러왔다.

    “저 너머에 밖으로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어찌 아시오?”

    “불꽃을 보세요.”

    횃불이 한쪽으로 가늘게 기울고 있었다. 바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틈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월령을 따라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허리를 숙이고 한참을 기어가자 커다란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 틈으로 햇빛 한 줄기가 내려왔고, 바닥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물웅덩이 주변에는 붉은 돌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위쪽에서 흘러드는 물은 흙탕물이었지만 붉은 돌 사이를 통과한 물은 바닥이 보일 만큼 맑아졌다.

    산돌은 작은 그릇에 물을 떠 냄새를 맡았다.

    “썩은 냄새가 사라졌소.”

    그는 붉은 돌을 자세히 살폈다. 돌 표면에는 수많은 작은 구멍이 있었고, 그 틈에 물속의 흙과 불순물이 달라붙어 있었다.

    공간 한편에서는 햇빛과 습기를 먹고 자란 희귀한 약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돌은 잎을 보고 놀랐다.

    “이것은 자초요. 상처와 종기에 쓰는 귀한 약재인데 이렇게 많이 자라다니.”

    더 깊은 곳에는 황정과 천문동, 석곡까지 있었다. 혈망산은 죽은 산이 아니었다. 바깥에서는 메마른 돌산으로 보였지만, 안쪽에는 약초가 자랄 수 있는 따뜻한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월령이 붉은 돌을 바라보았다.

    “꿈속 노인이 말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독이 되고 사람을 살리면 금이 되는 돌.”

    조만복의 눈에 탐욕이 번뜩였다. 그는 몰래 장부를 빼앗으려 했지만 산돌이 먼저 알아채 품에 더 깊이 감췄다.

    사람들은 천장 틈에 밧줄을 걸어 하나씩 밖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나온 조만복은 기다리던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았다.

    산돌이 말했다.

    “당신을 살려 주었으니 이제 광부들을 죽인 일을 관아에 자백하십시오.”

    조만복은 흙 묻은 옷을 털며 웃었다.

    “네가 나를 살려 주었다는 증인이 누구냐? 내 부하들은 모두 네가 산을 훔치고 나를 죽이려 했다고 말할 것이다.”

    “장부가 있습니다.”

    “죽은 자의 낙서가 산문서보다 강할 것 같으냐?”

    조만복은 자신의 부하에게 눈짓했다. 사내 하나가 이미 산 아래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산돌과 월령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관아 군졸들이 설중당을 에워싸고 있었다. 조만복이 먼저 관아에 가서 두 사람을 도굴꾼으로 고발한 것이었다.

    “강산돌과 무당 월령은 들으라. 혈망산의 무덤을 파헤치고 사람의 뼈를 훼손한 죄로 체포한다.”

    산돌은 산문서를 내밀었지만 군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품에서 장부를 빼앗아 조만복에게 건넸다.

    조만복은 사람들 몰래 마지막 장을 찢어 삼켰다. 그러고는 장부를 등불에 가져갔다.

    “이런 요망한 물건은 남겨 둘 필요가 없지.”

    월령이 몸을 던져 불붙은 장부를 낚아챘다. 그 과정에서 표지 안쪽에 숨겨진 얇은 천 조각이 떨어졌다.

    천에는 산돌의 아버지 박노인의 것이 분명한 약초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월령은 그 문양을 보자 온몸을 떨었다.

    오래전 무너진 갱도에서 어린 자신을 업고 나왔던 남자의 등이 떠올랐다. 그 남자의 보자기에도 똑같은 문양이 있었다.

    월령은 산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당신 아버지가…… 어린 나를 이 산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 5: 신당에 숨겨진 장부

    군졸들은 산돌과 월령을 관아의 감옥에 가두었다. 조만복은 혈망산의 산문서까지 위조된 것이라 주장했다. 매매를 담당한 아전은 이미 그의 돈을 받고 말을 바꾸었다.

    “강산돌이 문서를 훔쳐 도장을 찍었습니다.”

    “내 앞에서 분명 관아 장부를 확인하지 않았소?”

    “그런 일은 없었네.”

    산돌은 쇠창살을 붙잡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조만복은 현감에게 혈망산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고 속였다. 산을 자신에게 넘기면 수익의 절반을 바치겠다는 약속도 했다.

    감옥 구석에 앉은 월령은 아버지의 약초 문양이 새겨진 천을 꼭 쥐었다. 그것은 장부가 타기 전 가까스로 떼어 낸 조각이었다.

    “기억이 모두 돌아왔습니다.”

    월령의 본래 이름은 서령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서태복은 혈망산의 광부들을 관리하던 서기였다. 광부들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었다. 붉은 돌을 걸러 우물물을 맑게 하고, 산속 약초를 채취해 약재방에 공급했다.

    조만복의 아버지 조덕배는 붉은 돌이 금보다 비싸게 팔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광부들에게 밤낮없이 돌을 캐게 했고, 산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 두려워 퇴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갱도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서태복은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조덕배는 출입문을 잠가 버렸다. 광부들이 돌을 훔쳐 달아나려 한다는 핑계였다.

    산돌의 아버지는 약초를 사러 산에 왔다가 어린 서령을 발견했다. 그는 무너지는 갱도에서 아이를 업고 탈출했지만, 서태복과 광부들은 안에 갇혔다.

    “아버지는 나를 구한 뒤 산 아래 신당에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증거 장부를 들고 관아로 가려 했지요.”

    “그런데 왜 아무 일도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오?”

    “조덕배가 길목에서 장부를 빼앗았습니다. 당신 아버지는 목숨은 건졌지만 매를 맞아 오랫동안 몸이 상했습니다. 훗날 폐병으로 돌아가신 것도 그때 입은 상처 때문일 겁니다.”

    산돌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혈망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아들까지 위험해질까 두려워 모든 일을 가슴에 묻고 산 것이었다.

    “그렇다면 조씨 집안은 우리 두 집안의 원수였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원수의 아들에게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버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오.”

    월령은 눈물을 닦았다.

    “그래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조만복은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날 밤 월령은 감옥 바닥에 귀를 대고 한참을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설중당 신당을 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것을 어찌 아시오?”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떠날 때 신당 문에 방울을 걸어 두었어요. 문이 열리면 바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조만복의 부하들은 설중당을 뒤지고 있었다. 혈망산 장부의 다른 사본이 있을지 모른다는 조만복의 명령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신당 벽 안에는 장부가 아니라 작은 나무함이 숨겨져 있었다. 월령이 어릴 때 신어머니에게 맡긴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부하가 나무함을 꺼내려는 순간 이대복과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설중당에서 도움을 받은 이들이었다. 열병에서 살아난 아이의 부모, 장마를 피한 비단상, 산돌의 약으로 다리를 고친 나무꾼까지 몽둥이와 횃불을 들고 모였다.

    “남의 집에서 무엇을 훔치려는 것이냐!”

    부하들은 달아났고 이대복은 나무함을 열었다. 안에는 서태복이 남긴 장부의 사본과 혈망산 광부들의 이름, 조덕배가 출입문을 잠그라고 지시한 각서가 들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매매 계약서였다. 조덕배는 사고 뒤 혈망산을 몰래 차지하려 했지만, 원래 소유주들은 산의 절반을 광부 유족들에게 넘긴다고 서약해 두었다. 어린 서령은 서태복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월령은 혈망산의 정당한 상속인입니다.”

    이대복은 증거를 들고 관아로 향했다. 그러나 현감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조만복에게 뇌물을 받은 그는 다음 날 새벽 산돌과 월령을 다른 고을 감영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감영으로 끌려가면 도중에 산적의 습격으로 꾸며 살해할 것이 분명했다.

    그날 자정이 지나자 감옥 뒤편에서 흙 파는 소리가 났다. 벽 아래로 작은 구멍이 뚫리고 이대복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서 나오십시오. 마을 사람들이 군졸들의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산돌이 고개를 저었다.

    “도망치면 정말 죄인이 됩니다.”

    “그러면 이 안에서 죽을 셈입니까?”

    월령도 탈옥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새벽이 되면 관아 앞에서 공개 심문을 열어 달라고 하세요. 현감이 거절하면 순찰 중인 강원감사에게 직접 상소하겠다고 소문을 내십시오.”

    “강원감사가 이곳을 지난다는 것을 어찌 아십니까?”

    “어제부터 관아에서 길을 쓸고 새 깃발을 걸었습니다. 높은 관리가 온다는 뜻입니다.”

    예상대로 다음 날 강원감사가 고을에 도착했다. 관아 앞에는 이미 수백 명의 백성이 모여 있었다. 현감은 사건을 숨길 수 없었다.

    산돌과 월령이 끌려 나오고, 조만복도 혈망산의 주인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나왔다.

    강원감사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붉은 돌과 산문서, 장부 사본을 확인했다. 이어 월령에게 물었다.

    “네가 신기가 있다 하니 조만복의 죄를 귀신에게 물어 밝힐 셈이냐?”

    월령은 고개를 저었다.

    “귀신의 말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죄는 사람이 남긴 증거로 밝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증거는 어디 있느냐?”

    월령은 조만복의 다리를 가리켰다. 갱도에서 바위에 깔린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조만복은 우리가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리에 감긴 천은 제 남편의 약초 보자기입니다. 남편이 바위를 들어 그를 구한 뒤 상처를 감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천을 풀게 하자 산돌 집안의 약초 문양이 나타났다. 조만복의 부하 중 하나가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산돌이 나리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너진 갱도에서 나리를 구했습니다. 장부를 태운 것도 조 나리였습니다.”

    조만복이 사내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군졸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조만복은 끝까지 웃었다.

    “나 하나를 잡는다고 끝날 것 같으냐? 붉은 돌을 약으로 팔았다가 사람이 죽으면 저 부부도 교수형이다!”

    바로 그때 관아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마을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우물에 독초를 풀어 놓은 것이었다.

    ※ 6: 은혜가 불러온 노다지

    관아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와 노인부터 입술이 파래졌고, 사람들은 배를 움켜쥔 채 쓰러졌다. 조만복은 붙잡힌 상태에서도 비웃음을 흘렸다.

    “설중당에서 판 약초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산돌은 쓰러진 사람의 입 냄새와 혀의 빛을 살폈다. 우물가에 떨어진 풀잎도 확인했다.

    “초오가 섞였습니다. 잘못 먹으면 손발이 마비되는 독초입니다.”

    그는 군졸에게 설중당의 약재함을 가져오게 했다. 해독에 쓰는 감초와 생강, 검은콩을 달이는 동안 월령은 사람들을 상태에 따라 나누었다. 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먹이고, 숨이 약한 사람은 불 가까이 눕혔다.

    “붉은 돌을 가져오세요.”

    산돌은 혈망산에서 가져온 돌을 잘게 부수어 항아리 바닥에 깔고, 숯과 깨끗한 모래를 층층이 얹었다. 독을 없애는 약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우물물에 섞인 흙과 풀 찌꺼기를 걸러 내기 위해서였다.

    감사는 먼저 가축에게 걸러 낸 물을 먹여 상태를 살피게 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해독약을 달이는 데 사용했다.

    해가 기울 무렵 쓰러진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산돌은 밤새 환자 곁을 지켰고, 월령도 한숨 자지 않고 물과 약을 날랐다.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조만복의 약재방 창고에서는 남은 초오와 우물의 자물쇠가 발견되었다. 그의 부하가 설중당에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독초를 풀었다고 자백했다.

    강원감사는 조만복과 현감, 매수된 아전들을 결박했다. 조만복은 살인 미수와 문서 위조, 광산 사고 은폐의 죄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빼앗은 집과 논은 원래 주인의 후손들에게 돌아갔다.

    혈망산은 산문서와 서태복의 유품에 따라 월령과 광부 유족들의 공동 소유로 인정되었다. 산돌 부부는 산을 독차지하지 않았다.

    “이 산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몫이 먼저입니다.”

    그들은 붉은 돌과 약초를 팔아 얻은 수익의 절반을 유족들에게 나누었다. 남은 돈으로 무너진 갱도를 보강하고, 광부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여러 개 만들었다.

    붉은 돌은 의원과 장인들의 시험을 거쳤다. 돌 자체를 먹는 약은 아니었지만 물을 맑게 거르는 항아리 재료로 훌륭했다. 붉은 빛깔은 기와와 옹기에 쓰는 안료가 되었고, 돌 사이에서 자란 자초와 석곡은 귀한 약재로 인정받았다.

    설중당에는 팔도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산돌은 약초의 품질을 살폈고 월령은 어느 고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했다.

    어느 해에는 꿈에서 말라붙은 강과 병든 소를 본 월령이 북쪽 고을로 약재와 정수 항아리를 보냈다. 얼마 뒤 그곳에 큰 가뭄이 들었다. 미리 도착한 물건 덕분에 많은 사람이 깨끗한 물을 얻었다.

    다른 해에는 남쪽 바닷길이 거칠어지는 모습을 보고 배에 실을 물건을 육로로 돌렸다. 경쟁 상단들은 풍랑으로 큰 손해를 보았지만 설중당은 물건을 지켰다.

    사람들은 월령의 신기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령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꿈이 길을 가리켜도 직접 걷는 것은 사람입니다. 내 남편이 약초를 알아보는 눈과 사람을 살리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설중당은 십 년 만에 조선 팔도에 스무 개가 넘는 약재방을 둔 큰 상단이 되었다. 창고에는 약초와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수십 대의 수레가 장날마다 오갔다.

    산돌과 월령은 기와집과 넓은 땅을 갖게 되었지만 처음 살던 초가집을 허물지 않았다. 눈밭에서 돌아온 날 월령이 누웠던 아랫목과 산돌이 약을 달였던 아궁이를 그대로 보존했다.

    어느 겨울밤, 두 사람은 초가집 처마 아래 나란히 앉아 눈을 바라보았다.

    “그날 나를 그냥 지나쳤다면 당신은 산삼을 팔아 작은 부자가 되었을 겁니다.”

    “작은 부자는 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좋은 사람과 함께 살지는 못했겠지.”

    “내가 무당이라 두렵지는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조금 두려웠소.”

    월령이 눈을 흘겼다.

    “지금은요?”

    “당신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았소. 장부를 틀리게 쓰면 꿈에서까지 쫓아오지 않소?”

    월령이 웃으며 산돌의 어깨를 때렸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눈 덮인 마당에 퍼졌다.

    그때 산돌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편지는 어린 월령을 신당에 맡기던 날 쓴 것이었다.

    산에서 구한 아이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비친다. 훗날 내 아들이 이 아이를 만나거든, 내가 못다 한 은혜를 이어 주었으면 한다.

    산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는 우리가 만날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소.”

    월령은 편지를 가슴에 품었다.

    “당신 아버지가 어린 나를 살렸고, 당신이 다시 나를 살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하지요.”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오.”

    “아닙니다. 우리를 부자로 만든 것은 혈망산의 붉은 돌도, 내 신기도 아니었습니다.”

    월령이 산돌의 손을 잡았다.

    “죽어 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은 마음이 우리의 첫 재산이었습니다.”

    산돌 부부는 큰돈을 번 뒤에도 가난한 사람에게 약값을 받지 않았다. 흉년이 들면 창고를 열어 곡식을 풀었고, 형편이 어려운 약초꾼에게는 정당한 값을 주었다. 조만복처럼 빚으로 사람을 묶지 않기 위해 외상 장부에도 이자를 붙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설중당의 재산이 금광에서 나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혈망산에서는 금 한 덩이도 나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물을 맑히는 붉은 돌과 사람을 살리는 약초, 그리고 오래전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진실이었다.

    그것들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자 금보다 더 큰 재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은 산돌과 월령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다지는 땅속 깊은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눈밭에 쓰러진 사람에게 내민 손끝에서 시작되며,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속에서 가장 오래 마르지 않는 법이라고.

    유튜브 엔딩 멘트

    마지막 산삼을 내어 준 약초꾼은 당장의 재산을 잃었지만, 그 선택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금보다 귀한 신뢰를 얻었습니다. 진짜 노다지는 우연히 발견한 광맥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은혜를 나누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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