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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합방했다 진짜 정분난 밤

노다지 캐러가자 2026. 10. 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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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합방했다 진짜 정분난 밤, 보부상과 주막 주모의 계약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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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평생 봇짐 매고 엽전만 모으며 독수공방해 온 짠돌이 노총각 보부상! 피 같은 내 돈 도둑맞을까 두려워, 눈치 백 단 주막 주모에게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우리, 낮에는 부부 행세하고 밤에는 방 가운데 선 그어놓고 딱 비즈니스만 합시다!" 돈 때문에 시작된 기막힌 계약 혼인, 과연 두 남녀는 무사히 첫날밤의 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돈 냄새 쫓다 사람 냄새에 홀려버린 포복절도 합방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엽전 꿰미가 전부인 짠돌이 보부상, 주막에 짐을 풀다

조선 팔도 산천초목 안 밟아본 곳이 없고, 봇짐 하나 메고 팔도강산을 누비는 보부상 황 서방. 그는 장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 중의 사내였습니다. 춘하추동 계절이 바뀌어도 장터에 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물건을 떼다 파는 그의 부지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요. 하지만 황 서방에게는 마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지독한 별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구두쇠 중의 상 구두쇠, 짠돌이 황 서방’이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가지 않고 홀로 객지 생활을 하면서도, 짚신이 닳고 닳아 발바닥에 피가 나도록 새 신발 하나 사 신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가 이토록 지독하게 돈을 모으는 이유는 단 하나, 늙고 병들었을 때 길바닥에 나앉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엽전 꿰미들은 그의 전 재산이자 유일한 피붙이요, 사랑하는 정인이었지요. 전대에 묵직하게 담긴 엽전을 만지작거릴 때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엽전 부딪히는 짤랑 소리는 그 어떤 기생의 가야금 소리보다도 황 서방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들. 오늘도 한 푼, 두 푼 잘도 모였구나. 이 돈이면 나중에 기와집을 짓고도 남지, 암.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노후를 보낼 생각만 하면 발바닥 부르튼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봇짐에 전대를 무겁게 채우고 당도한 곳은 인심 좋고 물 맑기로 소문난 큰 고을의 어귀였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대자, 황 서방은 고을에서 가장 크고 손님이 바글바글한 주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주막 마당에는 이미 장터를 파하고 온 장사꾼들과 동네 한량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요.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구수한 장국밥이 펄펄 끓으며 침샘을 자극했고, 고소한 탁주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그 왁자지껄한 소란의 중심에는, 이 주막의 안주인이자 고을 제일의 여장부로 소문난 과부 주모, 매월이 있었습니다.

"아따, 최 서방! 오늘 장사 망쳤다고 여기서 애꿎은 탁주만 축내면 댁에 있는 마누라 속은 안 터지겠소? 그만 마시고 얼른 들어가 보시구려! 그리고 저기 저 김 서방! 외상값 달아놓은 지가 언젠데 또 고기를 썰어달라 떼를 쓰시오? 내일 장날에 이자까지 쳐서 안 가져오면 다리에 묶인 행전 끈을 다 풀어버릴 테니 그리 아시오!"

시원시원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소맷자락으로 훔치며 진상 손님들을 단숨에 휘어잡는 매월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도 미색이 뛰어나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뭇 사내들이 호시탐탐 수작을 걸려 했으나, 매월의 매서운 눈빛과 거침없는 입담 앞에서는 다들 꼬리를 내리기 일쑤였지요. 황 서방은 구석진 평상에 찌그러져 앉아 가장 싼 우거지 국밥 한 그릇을 훌훌 불어 넘기며, 그런 매월의 모습을 매의 눈으로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허어, 저 주모 참으로 물건이로구나. 사내 열 몫을 거뜬히 해내는 여장부 중의 여장부야. 장부 계산하는 폼을 보니 셈이 칼같이 빠르고, 진상들 쳐내는 솜씨를 보아하니 허투루 사람을 믿고 속아 넘어갈 위인도 아니로다. 저런 여인이 내 재산을 지켜준다면 그보다 든든한 금고가 어디 있겠는가….'

국밥 국물을 마시는 황 서방의 머릿속에는 엉뚱하고도 기막힌 계산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황 서방에게는 최근 남모를 깊은 근심이 하나 생겼습니다. 재산이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밤마다 누군가 자신의 봇짐을 털어가거나 돈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장터를 떠도는 보부상은 늘 도적 떼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고, 혼자 다니는 늙다리 노총각은 더더욱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니까요. 밤에 잠을 자다가도 쥐새끼 한 마리 지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품에 안은 전대를 꽉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봇짐만 메고 떠돌다간 언제 객사할지 모를 노릇이다. 내 피 같은 돈을 지키려면 한곳에 정착하여 든든한 방패막이를 삼아야 하는데, 이 주막의 저 눈치 빠른 주모라면 내 돈을 훔쳐 갈 좀도둑들을 다 막아주지 않겠는가? 게다가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주막의 어엿한 안주인이니 도적들도 함부로 넘보지 못할 터!'

밤이 깊어 주막의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달빛만이 마당을 고요히 비출 무렵이었습니다. 황 서방은 좁고 퀴퀴한 객방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두툼한 엽전 전대를 배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톡톡 두드렸습니다.

'옳지, 결심했어. 저 주모에게 솔깃한 제안을 해보는 거다. 내가 이 주막에 기둥서방으로 들어앉는다면 내 재산도 지키고 밤잠도 편히 잘 수 있을 게야. 물론 어디까지나 돈을 지키기 위한 가짜 부부 행세지, 내 어찌 저 기가 센 주모와 진짜 살림을 차리겠는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당장 담판을 지어봐야겠구나.'

황 서방의 얼굴에 음흉하면서도 기대에 찬 미소가 번졌습니다. 구두쇠 보부상과 억척스러운 주막 주모,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이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얽혀가기 시작한 첫날 밤이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으로 주모에게 건넬 말들을 수백 번 연습하며, 품속의 엽전 꿰미를 끌어안은 채 모처럼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 2: 돈은 지켜야겠고 도둑은 무섭고, 주모에게 건넨 엉뚱한 제안

다음 날 아침, 산새들이 지저귀고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부터 주막은 아침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로 부산했습니다. 매월은 부뚜막에서 커다란 주걱으로 밥을 푸고 뚝배기에 국을 담아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요. 황 서방은 객방 문틈으로 매월의 부지런한 모습을 지켜보며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아침 장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고, 매월이 대청마루에 앉아 주판을 튕기며 장부를 정리하는 한가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황 서방은 헛기침을 에헴 하고 내뱉으며, 최대한 인자하고 점잖은 표정을 지은 채 매월에게 다가갔습니다.

"주모, 아침 장사 치르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셈은 잘 맞아떨어지오이까?"

매월은 주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습니다.

"아, 황 서방님이시우. 고생은 무슨, 이게 다 내 밥줄인데 열심히 해야지라우. 그런데 어쩐 일이우? 장터에 나가 물건 안 떼다 파시고 여태 안 가셨수? 오늘따라 봇짐도 안 메고 이리 여유를 부리시는 걸 보니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역시 눈치가 백 단인 주모였습니다. 황 서방은 슬쩍 마루 끝에 걸터앉으며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혹여나 담벼락 너머로 누가 들을까 좌우를 살피는 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은밀했습니다.

"흠흠, 다름이 아니라 내 주모에게 아주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솔깃한 제안을 하나 하려 하오. 주모, 내 평생을 봇짐 메고 떠돌았지만 사실 내 전대에 엽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아오? 내 이래 봬도 이 고을 기와집 몇 채는 너끈히 사고도 남을 재산을 가진 알부자란 말이오."

매월은 그제야 주판을 내려놓고 황 서방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다 해진 무명옷에 낡은 짚신을 신고 다니는 황 서방이 알부자라니,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지만 그의 진지한 눈빛에 장난기가 없어 보여 일단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머나, 그리 안 보이시는데 재물이 꽤나 많으신가 보우. 그런데 그 귀한 재산 이야기를 어찌 쌩판 남인 저한테 이리 쉽게 털어놓으시는 겝니까? 돈 자랑하다간 도둑맞기 십상인 거 모르시우?"

"바로 그 때문이오! 내 돈이 썩어나게 많으면 무얼 하겠소? 밤마다 도적놈들이 내 목을 따고 봇짐을 훔쳐 갈까 두려워 두 눈을 부릅뜨고 밤을 새운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오. 내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혼자 다니는 객지 사람을 누가 지켜주겠소? 그래서 말인데…."

황 서방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매월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주모, 우리 합의하에 가짜 부부 행세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내가 이 주막의 바깥양반으로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으면, 동네 사람들도 나를 이 고을 사람으로 인정할 것이고 도적 떼들도 함부로 안주인이 있는 집에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오. 대신 내 재산의 일부를 주모에게 떼어주어 이 주막을 더 크게 번듯하게 늘려주겠소. 어떻소,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않소?"

황 서방의 파격적인 제안에 매월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참나! 황 서방님, 봇짐 메고 다니시다 햇빛을 너무 많이 받으셨수? 돈 지키겠다고 생판 남인 과부랑 가짜 부부 행세를 하자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닙니까! 돈만 떡 하니 맡겨두고 가시면 되지, 어찌 내 방에 외간 남자를 들인단 말이우. 내 신세 망칠 일 있수?"

매월이 단칼에 거절하자 황 서방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변명을 쏟아냈습니다.

"아니, 아니! 내 말 끝까지 들어보시오. 내 결코 주모를 어찌해보겠다는 흑심을 품고 이러는 것이 아니오! 우리는 철저하게 낮에만 부부 행세를 하여 남들의 이목을 속이고, 밤에는 방 한가운데 숯으로 금을 그어놓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기로 약조를 합시다. 만약 내 그 금을 넘어 주모의 옥체에 손을 댄다면, 내 전 재산을 주모에게 다 내어놓고 맨몸으로 쫓겨나겠소!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하리다."

매월은 황 서방의 절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실 매월 역시 과부 홀몸으로 주막을 운영하며 온갖 진상 사내들의 희롱과 수작을 쳐내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던 참이었습니다. 만약 번듯한 바깥양반이 하나 떡하니 버티고 있다면 왈패들이 함부로 행패를 부리지도 못할 것이고, 주막을 늘릴 밑천까지 대준다고 하니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게다가 털끝 하나 안 건드리겠다며 재산까지 걸고 맹세하는 저 맹꽁이 같은 짠돌이 보부상을 보니, 속을 썩일 위인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어허, 이거 꽤 괜찮은 장사인데? 어차피 과부 팔자에 외롭게 늙어갈 바엔, 든든한 바람막이 하나 세워두고 재산이나 굴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게다가 저 구두쇠 양반이 내 방에 선을 그어놓고 덜덜 떠는 꼴을 상상하니 웃음이 다 나는군.'

매월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짐짓 도도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습니다.

"흠, 황 서방님 말씀이 정 그러하시다면 내 눈 딱 감고 거두어 드리지요. 하오나 약조는 확실히 해야 합니다. 방 한가운데 선을 긋고, 발가락 하나라도 선을 넘어오면 그날로 봇짐이고 재산이고 다 내 차지가 되는 겁니다. 동의하시우?"

"암, 동의하고말고! 내 평생 여자 손 한 번 안 잡아본 사내요. 돌부처처럼 가만히 잠만 잘 터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구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종이와 붓을 가져와 기상천외한 ‘가짜 혼인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재산 분배부터 방안의 경계선 침범 시 위약금 조항까지, 꼼꼼하게 도장을 찍은 두 사람의 엉뚱한 동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돈을 지키려는 남자와 돈을 굴려보려는 여자, 오직 은자 냄새로 얽힌 두 사람의 아찔하고 코믹한 계약 혼인은 이렇게 막을 올렸습니다.

※ 3: 방 한가운데 그어진 금, 동상이몽 계약 부부의 첫날밤

그날 저녁, 황 서방과 주모 매월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고을 전체에 퍼졌습니다. 물론 진짜 혼례를 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주막 손님들에게 막걸리 몇 항아리를 크게 쏘며 "이제부터 황 서방이 이 주막의 바깥주인이오!" 하고 선언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동네 왈패들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고, 장터 상인들은 구두쇠 황 서방이 드디어 돈 쓸 곳을 찾았다며 낄낄거렸습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적막이 내려앉은 주막의 안방. 마침내 대망의 첫날밤이자 첫 계약 동거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황 서방은 자신의 전 재산이 든 묵직한 궤짝을 낑낑대며 안방 구석에 밀어 넣고는 그 위에 자물쇠를 두 개나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매월이 챙겨준 화로구덩이의 새까만 숯덩이를 집어 들더니, 방 한가운데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며 굵고 시커먼 선을 죽죽 긋기 시작했습니다.

"주모, 아니 이제 부인이라 불러야 남들 눈을 속일 터이니 부인이라 하겠소. 보시오, 이 선이 우리의 국경선이오. 저쪽은 부인의 땅, 이쪽은 나의 땅. 잠결에라도 이 선을 넘어온다면 계약 위반이니 그리 아시오."

황 서방의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에, 곱게 빗은 머리를 매만지며 이부자리를 펴던 매월은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참 유난도 떨으십니다. 그깟 선이 대수라고 숯가루를 온 방바닥에 날리십니까. 내 걱정일랑 마시고 서방님이나 잠꼬대하다 선 넘어오지 않게 발가락 꽉 오므리고 주무시구려. 선 넘어오는 순간 서방님 궤짝은 다 내 것이 될 테니까요."

매월은 콧방귀를 뀌며 자신의 자리에 요를 깔고 눕더니 벽을 향해 휙 돌아누웠습니다. 황 서방 역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궤짝 옆에 바짝 붙어 요를 깔고는, 선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겠다는 듯 천장을 보고 반듯하게 누웠습니다. 방 안에는 호롱불이 타들어 가는 타닥타닥 소리만이 어색하게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었습니다. 평소 객방의 차가운 구들장 위에서도 코를 골며 잘만 자던 황 서방이건만, 오늘따라 도통 잠이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궤짝의 자물쇠를 확인하고, 숯으로 그어놓은 선을 쳐다보고, 다시 눈을 감아보아도 정신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졌습니다. 원인은 바로 몇 뼘 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워있는 매월 때문이었습니다.

'허어, 이거 참. 평생 홀아비 냄새나는 사내놈들하고만 한방을 쓰다가, 이리 어여쁜 여인네와 한 공간에 있으니 기분이 묘하구나. 방 안에서 나는 이 은은한 분 냄새는 또 무엇이고, 저리 등 돌려 누워있는 자태는 어찌 이리 곱단 말인가. 아니지, 아니야! 황 서방, 네놈이 미쳤구나! 저 여자는 내 전 재산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호랑이일지도 모른다. 선을 넘는 순간 내 피 같은 돈이 날아간다고!'

황 서방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습니다. 하지만 이불 속에서도 매월의 숨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듯하여 심장이 제멋대로 쿵덕쿵덕 뛰기 시작했습니다. 돈만 바라보고 살아온 메마른 사내의 가슴에, 난생처음 맡아보는 여인의 향기가 이상한 불씨를 지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벽을 향해 누워있던 매월 역시 속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휴, 저 양반 숨소리 한번 거칠기도 하지. 긴장해서 굳어있는 꼴이라니 참으로 맹꽁이가 따로 없네. 그래도 사내는 사내라고, 한 방에 있으니 덩치가 산만하여 묘하게 안심이 되기는 하는구나. 과부 팔자에 밤마다 문고리 흔들리는 소리에 가슴 졸였는데, 저리 든든하게 방을 지켜주니 나쁘지는 않네. 그런데… 나한테 진짜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는 건가? 아무리 계약이라지만 여자가 한 방에 누워있는데 저리 코를 골락 말락 한단 말이지? 괘씸한 양반 같으니.'

어느새 황 서방을 향한 묘한 서운함과 오기가 발동한 매월은, 자는 척하며 슬쩍 몸을 뒤척여 선 쪽으로 조금 다가갔습니다. 스스슥, 하는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에 기겁을 한 황 서방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부, 부인! 지금 넘어온 거 아니오? 내 분명히 선을 넘지 말라 하였거늘!"

"아따, 누가 넘었다고 그러십니까! 잠결에 뒤척인 것 가지고 사람을 잡으시네. 그리 불안하시면 서방님께서 아예 벽에 딱 달라붙어 주무시구려!"

황 서방의 호들갑에 매월은 샐쭉하니 쏘아붙이고는 다시 돌아누웠습니다. 황 서방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돈을 지키기 위해 벌인 기막힌 묘수가,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훔쳐 갈 무서운 덫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어진 선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하고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두 사람의 동상이몽 첫날밤은 엎치락뒤치락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코믹하고도 아찔한 선 긋기 놀이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호롱불만이 두 사람의 붉어진 얼굴을 비추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4: 선 넘을까 말까? 엎치락뒤치락 핑계 만발 코믹 합방기

방 한가운데 시커먼 숯으로 그어놓은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가짜 부부의 어색하고도 기막힌 첫날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황 서방은 자신의 전 재산이 담긴 묵직한 궤짝에 등딱지를 찰싹 붙인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만 노려보고 있었고, 매월 역시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애써 숨소리를 죽이며 잠을 청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안방이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마치 활시위를 당긴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평생 돈 냄새만 맡고 살아온 늙수그레한 짠돌이 보부상과, 억척스럽게 주막을 일구며 사내들의 숱한 수작을 단칼에 베어 넘기던 콧대 높은 여장부 주모.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한 방에 누워있으니, 아무리 목숨 걸고 재산을 건 계약을 맺었다 한들 사람의 본능적인 떨림마저 무 자르듯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이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로구나. 잠이 와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든 장부를 쓰든 할 터인데, 심장은 왜 이리 제멋대로 방아를 찧어댄단 말인가. 저기 누워있는 주모는 꼼짝도 않는 것을 보니 벌써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인데, 나 혼자 이리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니 사내 체면이 말이 아니로다.'

황 서방이 속으로 온갖 푸념을 늘어놓으며 애써 눈을 감으려던 찰나였습니다. 귓가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앵~ 앵~" 하는 소리, 바로 초여름 밤의 불청객인 모기 한 마리가 방 안으로 숨어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모기는 황 서방의 귓가를 맴돌다 얄밉게도 숯으로 그어놓은 선을 훌쩍 넘어 매월의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곤히 자는 척하고 있는 매월의 하얀 목덜미 근처를 빙빙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 서방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어허! 저 요망한 모기 새끼가 감히 어디라고 앉으려 드는 것이냐! 내 비록 계약으로 맺어진 가짜 서방이지만, 명색이 이 방의 바깥주인인데 내 여인, 아니 내 동업자의 피를 빨아먹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황 서방은 모기를 쫓아내겠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조심스레 반쯤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쫙 펴고 모기를 향해 팔을 힘껏 뻗었습니다. "찰싹!"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황 서방의 커다란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고, 그 바람에 황 서방의 상체가 숯으로 그어놓은 경계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것은 황 서방이 아니라 잠든 척하고 있던 매월이었습니다. 자신의 목덜미 바로 옆에서 들린 찰싹 소리에 기겁을 하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매월은, 선을 넘어와 있는 황 서방의 억센 팔뚝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아니, 서방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우! 맹세코 발가락 하나 안 넘기겠다더니, 지금 제 목덜미를 치려 한 겁니까? 옳지, 선을 넘으셨으니 서방님 저 궤짝은 이제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수다! 계약 위반이우!"

매월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치자, 황 서방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며 다급하게 양손을 휘저었습니다.

"아, 아니오! 오해 마시오, 주모! 아니, 부인! 내 결코 부인의 옥체에 흑심을 품고 선을 넘은 것이 아니오. 저기, 저기 요망한 모기 놈이 부인의 고운 목덜미에 앉아 피를 빨려 하기에, 내 바깥양반 된 도리로서 모기를 잡아주려다 그만 팔이 길어 넘어간 것뿐이오! 내 돈을 빼앗으려 억지를 부리면 곤란하오!"

황 서방의 쩔쩔매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매월은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습니다.

"허 참, 핑계도 가지가지십니다. 모기를 잡으려다 내 재산을 잡혀주게 생기셨수다. 모기가 아니라 벼룩이 뛰어다녀도 선은 선이니, 내일 아침 당장 궤짝 열쇠부터 내어놓으시지요."

"아이고, 부인!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감아 주시오. 내 다시는 선 쪽으로 팔도 뻗지 않고 돌부처처럼 굳어서 자겠소이다!"

두 사람이 방 한가운데 그어진 숯 검댕이 선을 두고 엎치락뒤치락 실랑이를 벌이며 코믹한 말싸움을 이어가던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창밖에서 마른하늘에 날카로운 번개가 번쩍! 치더니, "우르릉 쾅쾅!" 하는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주막을 뒤흔들었습니다. 낮부터 끄물끄물하던 하늘이 기어이 한밤중에 무서운 여름 폭우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찬 빗줄기가 기와지붕과 창호지를 거세게 때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평소 여장부처럼 굴던 매월이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남모르는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천둥소리를 끔찍하게 무서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쾅! 하는 굉음이 울릴 때마다 매월은 "엄마야!"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둥글게 말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 억척스럽고 기세등등하던 주모가 겁에 질려 파들파들 떠는 모습을 보자, 황 서방의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보호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황 서방에게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주막이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거센 폭우를 견디지 못한 지붕 한구석에서 비가 새기 시작한 것입니다. "똑, 똑, 뚝뚝뚝!" 하필이면 비가 새는 곳은 황 서방이 눕기로 한 구역이자, 그의 전 재산이 담긴 소중한 궤짝이 놓여 있는 바로 위쪽 천장이었습니다.

"아이고! 내 돈! 내 피 같은 엽전 궤짝에 물이 떨어지네!"

황 서방은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나 궤짝을 껴안았습니다. 방의 절반은 이미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흥건해지고 있었고, 황 서방이 비를 피할 곳은 숯으로 선을 그어놓은 건너편, 즉 매월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고 있는 그 좁은 구역뿐이었습니다. 선을 지키자니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리고 궤짝이 썩게 생겼고, 선을 넘자니 계약 위반으로 전 재산을 빼앗기게 생겼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천둥은 계속해서 치고,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황 서방은 궤짝을 머리에 이고 방바닥을 동동 구르며 절규했습니다. 돈 때문에 시작된 이 기상천외한 합방은 예상치 못한 대자연의 변덕 앞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 5: 돈이고 뭐고 당신이 최고! 가짜 부부에서 진짜 부부로

"우르릉 쾅쾅!" 또다시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천둥이 내리치고, 방 안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 황 서방의 무명옷을 흠뻑 적시고 있었습니다. 빗물에 젖어 벌벌 떠는 황 서방과, 천둥소리에 놀라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떠는 매월. 그 잘난 계약 혼인의 선 긋기 놀이도 하늘의 조화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장난에 불과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귀를 막고 떨고 있던 매월이, 빗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황 서방의 애처로운 기침 소리에 슬그머니 이불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어두운 방 안, 호롱불 불빛 아래로 궤짝을 끌어안고 처마 밑 똥개처럼 비를 맞으며 쭈그려 앉아 있는 황 서방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니, 서방님! 융통성이 없어도 어찌 그리 없으십니까! 비가 새서 물바다가 되었는데 선 타령이나 하고 비를 맞고 계시면 어쩝니까! 돈 지키려다 사람 얼어 죽게 생겼으니, 잔말 말고 얼른 이쪽으로 넘어오시구려!"

매월이 참다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탕탕 쳤습니다. 그제야 황 서방은 구세주를 만난 듯 궤짝을 질질 끌고 숯으로 그어진 선을 넘어 매월의 구역으로 허겁지겁 피신했습니다. 물바다가 된 방의 절반을 피해 남은 좁은 공간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게 되자, 어깨와 어깨가 닿을 만큼 거리가 바짝 좁혀졌습니다. 황 서방의 몸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과, 매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한데 뒤섞이며 방 안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묘하고도 아찔한 분위기가 피어올랐습니다.

황 서방은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습니다.

"흠흠… 부, 부인. 부인께서 먼저 넘어오라 허락하신 것이니, 이것은 계약 위반이 아니오. 내 궤짝은 여전히 내 것이오."

그 와중에도 돈 타령을 하는 황 서방의 맹꽁이 같은 모습에 매월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참으로 대단한 구두쇠 나셨습니다. 그깟 궤짝, 열쇠는 쳐다보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 젖은 옷이나 말리시지요. 사내대장부가 어찌 그리 돈통만 껴안고 사십니까. 평생 돈만 보고 사느라, 따뜻한 밥 한 끼, 정다운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이 그리 팍팍하게 살아오셨수?"

매월의 핀잔 섞인, 그러나 묘하게 다정한 그 한마디가 황 서방의 단단했던 가슴벽을 쿵 하고 때렸습니다. 황 서방은 궤짝 위에 얹어두었던 거칠고 투박한 손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창밖의 빗소리에 시선을 던졌습니다.

"부인 말이 맞소. 나는 참으로 미련한 사내요. 어릴 적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 부모님을 약 한 첩 못 써보고 떠나보낸 후로, 내게 믿을 것은 오직 엽전밖에 없었소. 돈이 있어야 버림받지 않고, 돈이 있어야 늙어 굶어 죽지 않는다고 믿었지. 짚신이 다 해져 발바닥에서 피가 나도, 국밥 한 그릇 더 사 먹는 돈이 아까워 주린 배를 찬물로 채우며 살아온 세월이오. 그리 악착같이 모아 이 큰 궤짝을 다 채웠건만… 이상한 노릇이지. 오늘 밤 이리 천둥이 치고 비가 새는데, 내가 안고 있는 이 궤짝은 나를 따뜻하게 덥혀주지도, 무섭지 않게 안아주지도 못하는구려. 그저 무겁고 차가운 나뭇조각일 뿐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소."

황 서방의 목소리에는 평생 짊어지고 온 외로움과 서글픔이 깊게 배어 있었습니다. 늘 돈타령만 하던 짠돌이의 진심 어린 고백에, 매월의 가슴 속에도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매월 역시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홀로 험한 주막을 일구며 사내들의 멸시와 수작을 견뎌내기 위해 억지로 독을 품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누군가의 따뜻한 어깨를 간절히 원했던 그녀였습니다.

매월은 말없이 자신의 덮고 있던 이불을 반쯤 끌어당겨 비에 젖어 떠는 황 서방의 어깨에 살며시 덮어주었습니다.

"서방님도 참으로 고단한 세월을 사셨구려. 저 역시 과부 홀몸으로 주막을 지키려다 보니 입은 거칠어지고 눈초리만 매서워졌지요. 밤마다 문살 흔들리는 소리에 도둑일까 수작 부리는 왈패일까 가슴 졸이며, 머리맡에 식칼을 두고 잔 밤이 수백 날입니다. 계약으로 맺은 가짜 인연이라지만, 오늘 밤 서방님께서 제 옆에 이리 든든하게 앉아 계셔주시니, 평생 처음으로 무섭지가 않사옵니다."

매월의 다정하고 촉촉한 목소리에 황 서방은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코끝에 스치는 여인의 은은한 향기와, 어깨를 감싸는 이불의 온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는 매월의 따뜻한 눈빛. 황 서방은 궤짝 대신 매월의 부드러운 손을 와락 맞잡았습니다.

"부인… 매월아. 내가 오늘 계약을 위반하겠소."

"네? 무슨 말씀이신지…."

황 서방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궤짝의 열쇠를 꺼내어 매월의 손에 꼭 쥐여주었습니다.

"아까 숯으로 그은 선을 넘으면 내 전 재산을 부인에게 다 내어주기로 약조하지 않았소. 나는 방금 빗물을 핑계 삼아 부인이 있는 선을 넘어왔고, 이제는 그 알량한 선을 지킬 마음조차 싹 사라져버렸소. 이 궤짝의 열쇠도, 내 전 재산도 모두 당신 것이오. 약조대로 내 모든 것을 드릴 터이니… 제발 나를 내쫓지 말고, 가짜 서방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사내로 받아주면 안 되겠소? 돈통을 껴안고 자는 홀아비가 아니라,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진짜 지아비가 되고 싶소."

투박하지만 세상 그 어떤 시보다 진실한 황 서방의 고백에, 매월의 두 눈에 감동의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매월은 손에 쥐여진 차가운 열쇠를 방바닥에 툭 내려놓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활짝 웃었습니다.

"바보 같은 서방님. 제게 필요한 것은 저 차갑고 무거운 쇳덩어리가 아니라, 이리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지아비의 체온이옵니다. 선은 서방님이 넘으신 게 아니라, 제 마음이 먼저 넘어가 버렸으니 이 계약은 오늘부로 무효입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따뜻하게 끌어안았습니다. 차가운 빗소리는 어느새 아름다운 악기 소리처럼 들려왔고, 방 한가운데를 흉하게 갈라놓았던 시커먼 숯덩이 선은 두 사람이 끌어안고 뒹구는 이불 자락에 쓸려 흔적도 없이 까맣게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돈 냄새를 쫓아 시작된 엉뚱한 계약 혼인이, 사람의 따뜻한 살 냄새와 진실한 마음에 홀려 진짜 사랑으로 활짝 피어난, 기막히고도 황홀한 첫날밤이었습니다.

※ 6: 주막을 주름잡는 금실 좋은 잉꼬부부의 탄생

간밤의 요란했던 여름 폭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그치고, 다음 날 아침 주막 마당에는 눈부시게 맑은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함께 아침 장사를 알리는 주막의 굴뚝에서는 어김없이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해장국을 먹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주막을 찾은 장터 상인들과 동네 한량들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두 눈을 비벼야만 했습니다.

늘 다 해진 무명옷을 입고 평상 구석에서 가장 싼 국밥만 깨작거리던 구두쇠 황 서방이, 어느새 산뜻하고 깨끗하게 다려진 새 옷을 차려입고 마당을 쩌렁쩌렁 울리며 장작을 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랴! 으쌰!" 힘차게 도끼질을 하는 황 서방의 얼굴에는 십 년은 젊어진 듯 생기가 넘쳐흘렀고, 입가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실실거리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게다가 그 옆에서는 언제나 무뚝뚝하고 서슬 퍼렇던 주모 매월이, 수건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콧소리를 섞어가며 황 서방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우리 서방님. 무리하지 마셔요. 밤새… 어흠흠, 아무튼 비 새는 거 막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아침부터 이리 힘을 쓰시면 소첩 가슴이 찢어집니다요. 얼른 장작 놓고 들어오셔서 시원한 고깃국부터 한 사발 드시지요."

"허허허, 부인! 사내가 이깟 장작 몇 개 패는 게 대수라고 그리 호들갑이오. 부인이 끓여준 국밥을 생각하니 힘이 장사라도 된 듯 솟구쳐 오르는구려! 얼른 패놓고 들어갈 터이니 가서 앉아 쉬시오!"

두 사람의 닭살 돋는 애정 행각에, 국밥을 기다리던 최 서방과 김 서방은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리고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어이구, 시상에 마상에!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저 지독한 구두쇠 황 서방이 돈 궤짝 대신 도끼를 들고 마당쇠 노릇을 자처하다니! 게다가 우리 무서운 매월 주모가 저리 애교를 떠는 꼴은 내 평생 처음 보네그려. 봇짐장수 영감, 간밤에 대체 무얼 잘못 주워 먹었기에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다니는 겐가? 가짜 부부 행세하기로 했다더니 아주 찰떡궁합 잉꼬부부가 다 되었어!"

최 서방의 짓궂은 농담에 황 서방은 도끼를 내려놓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가슴을 쫙 폈습니다.

"허허! 이보시오, 최 서방. 가짜 부부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 마시오! 오늘부로 나 황 서방은 이 주막의 진짜 바깥주인이자, 우리 어여쁜 매월 부인의 평생 지아비가 되기로 굳게 언약하였소이다! 내가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 이제 혼자 껴안고 늙어가는 짓은 그만둘 작정이오. 내일 당장 고을에서 제일가는 목수들을 불러모으시오! 밤새 비가 새던 낡은 지붕은 당장 기와로 싹 다 갈아엎고, 마당은 두 배로 넓혀서 방방곡곡의 손님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조선 팔도 제일의 대형 주막을 새로 지을 것이오! 오늘 아침 국밥은 이 황 서방이 쏘는 것이니 다들 배 터지게 마음껏 드시구려!"

구두쇠 황 서방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주막을 으리으리하게 키우고 공짜 국밥까지 쏘겠다는 선언을 하자, 마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궤짝 속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던 황 서방의 차가운 엽전들은, 사랑하는 아내 매월과 함께 살아갈 든든하고 따뜻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가장 가치 있는 밑천으로 새롭게 쓰이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매월의 주막은 황 서방의 엄청난 재력과 꼼꼼한 사업 수완, 그리고 매월의 탁월한 장사 솜씨가 합쳐져 인근에서 감히 견줄 곳이 없는 으리으리하고 번듯한 대형 객주로 탈바꿈했습니다. 밤낮없이 돈 떼일까 불안해하던 황 서방은 이제 든든한 호위무사이자 안주인인 매월 덕분에 다리 쭉 뻗고 코를 골며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매월 역시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남편 덕분에 얼굴에서 다정한 웃음꽃이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돈 때문에 엉뚱한 마음을 품고 시작했던 기상천외한 방 한가운데의 선 긋기 놀이는, 결국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체온을 나누는 진정한 부부의 연으로 아름답게 완성되었습니다. 평생 봇짐 메고 떠돌던 짠돌이 보부상과 주막의 억척 주모는, 낮에는 환상의 호흡으로 은자를 긁어모으고 밤에는 깨가 쏟아지도록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조선 팔도에서 가장 돈 많고 가장 금실 좋은 부부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재물은 나누고 사랑은 더할수록 그 가치가 빛난다는 것을 깨달은 황 서방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주막 마당을 더욱 환하게 채우고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돈 지키려다 마음까지 몽땅 털려버린 구두쇠 보부상과 억척 주모의 기막힌 합방기, 즐겁게 들으셨나요? 방 한가운데 선을 긋고 덜덜 떨던 두 사람이 빗소리에 핑계 삼아 진심을 나누는 장면은 참으로 유쾌하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재산은 궤짝 속의 엽전이 아니라, 내 곁에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이라는 걸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이야기였네요.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꾹 눌러주세요! 시청자 여러분의 일상에도 이런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꽃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다음에도 재미난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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