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과부, 복수 도와준 백정
쫓겨난 과부, 복수 도와준 백정
부제: 서방이 죽자 서방이 남긴 재산이 상당한 것을 아는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며느리를 바람났다고 모함하여 쫓아낸다.
비바람 속에 쓰러진 며느리를 발견한 백정은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가 보살피는데, 천대받던 그에게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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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남편이 남긴 막대한 재산에 눈이 먼 시어머니와 시동생! 그들은 억울한 누명을 씌워 한밤중 비바람 속에 며느리를 내쫓고 맙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녀를 구한 것은 마을에서 가장 천대받던 백정 사내. 하지만 짐승 피를 묻히고 살던 그에게는 조선 팔도를 뒤흔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으니... 거부가 된 과부의 통쾌한 복수극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탐욕에 눈먼 시댁,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나는 며느리
고을에서 제일가는 만석꾼으로 소문난 최 부잣집. 이 집안의 장남인 최 서방은 심성이 비단결처럼 곱고 타고난 장사 수완이 뛰어나, 아버지가 물려준 전답과 재산을 두 배로 불려놓은 참으로 유능하고 듬직한 사내였습니다. 그의 아내 소화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삯바느질을 하며 잔뼈가 굵었으나, 지혜롭고 부지런하며 시댁 어른들을 극진히 모셔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한 훌륭한 며느리였지요. 부부의 금슬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큼 좋았으나, 호사다마라 했던가요. 최 서방이 한양으로 큰 상단을 이끌고 장삿길에 나섰던 어느 날, 원인 모를 지독한 열병에 걸려 스물여덟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타향 객지에서 피를 토하고 객사하는 참변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끔찍한 슬픔 속에서도 소화는 거친 삼베옷을 입고 식음을 전폐한 채, 밤낮으로 남편의 무덤가를 지키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죽은 남편의 무덤에 채 푸른 떼가 입혀지기도 전에, 으리으리한 최 부잣집의 깊은 안채에서는 음산하고도 끔찍한 탐욕의 그림자가 독사처럼 똬리를 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시어머니인 조 씨 부인과, 기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노름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기 일쑤였던 시동생 최 만득이 그 흉계의 주동자들이었지요. 만득은 늦은 밤마다 어머니 조 씨의 방문을 은밀히 열고 들어가, 뱀처럼 교활하고 끈적한 속삭임을 내뱉었습니다.
'어머니, 생각해 보십시오. 형님이 남긴 저 엄청난 전답과 수많은 상단, 그리고 곳간에 썩어나는 저 금은보화가 결국엔 모두 저 과부년의 치마폭으로 들어갈 터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 집안의 진짜 핏줄인 제가 저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아야 마땅하지 않사옵니까!'
조 씨 부인 역시 아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눈을 번뜩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도 가난하고 천한 집안 출신이라며 며느리 소화를 벌레 보듯 멸시해왔던 터라, 남편을 잃고 독수공방하는 며느리가 재산의 실권을 쥐는 꼴은 죽기보다 보기 싫었습니다. 이참에 그녀를 맨몸으로 내쫓고 그 막대한 재산을 자신과 작은아들이 남김없이 독차지할 기가 막힌 흉계를 꾸미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선 천지에서 과부를 단숨에 쫓아내는 데에는 불륜과 외도라는 치명적인 오명만큼 빠르고 확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행실이 추악하고 돈이라면 부모도 팔아넘길 왈패 놈 하나를 두둑한 엽전 꾸러미로 매수하여, 깊은 밤 소화가 머무는 별채의 담장을 넘게 하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하늘을 찢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던 섣달그믐 무렵의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차가운 방구석에서 죽은 남편의 옷가지를 품에 안고 그리움의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소화의 방문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거칠게 열려 젖혀졌습니다. 방 안으로 횃불을 들고 들이닥친 것은 독기가 바짝 오른 시어머니 조 씨와, 굵은 몽둥이를 치켜든 시동생 만득,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하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방구석 한편에는 그들이 미리 매수하여 몰래 숨겨둔 왈패 놈이, 겉옷을 반쯤 풀어 헤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떠는 추악한 시늉을 하고 있었지요. 소화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기괴한 상황에 아연실색하여 숨이 턱 막혔습니다.
"아이고, 이 망할 년! 이 더럽고 추악한 화냥년아! 남편이 죽어 상복도 채 벗지 않았거늘, 감히 외간 남자를 방구석에 끌어들여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를 벌여? 네 년이 우리 명문거족 최씨 집안을 아주 망조가 들게 하려 작정을 하였구나!"
조 씨 부인은 분노를 가장하여 방바닥을 쿵쿵 치며 거짓 곡을 해댔고, 만득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교묘하게 숨긴 채 소화의 가녀린 머리채를 짐승 잡듯 거칠게 휘어잡았습니다.
"어머니! 이딴 더럽고 천박한 화냥년을 우리 깨끗한 집안에 단 하루라도 더 살려둘 수는 없습니다! 당장 날이 밝는 대로 관아에 고발하여 멍석말이를 하고 난장을 쳐야 마땅하나, 돌아가신 형님의 체면을 보아 이 밤으로 당장 맨몸으로 쫓아내어 두 번 다시 우리 집안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어, 어머니! 도련님! 이, 이 무슨 억울하고 원통한 말씀이십니까! 저는 맹세코 저 사내가 누구인지 얼굴조차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저를 쫓아내려 모함하고 꾸민 짓입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제발 제 이 억울함을 밝혀주십시오!"
소화가 피눈물을 철철 흘리며 시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처절하게 애원했지만, 조 씨는 매몰차게 그녀의 손을 발로 걷어차며 하인들에게 앙칼지게 호통을 쳤습니다.
"당장 저 더러운 년을 마당으로 끌어내라! 은가락지 하나, 비단옷 한 벌도 절대 걸치지 못하게 해! 행여나 우리 집안의 귀한 재물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몸수색을 철저히 하고 대문 밖 진흙탕에 내동댕이쳐버려라!"
비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치는 밤. 소화는 남편이 생전에 정표로 사주었던 옥비녀마저 억지로 빼앗기고, 얇고 해진 홑겹의 소복 단벌만을 간신히 걸친 채 최 부잣집의 육중한 솟을대문 밖으로 무참히 내던져졌습니다. 철컥, 하고 대문이 빗장을 지르며 굳게 닫히는 서늘한 소리는 소화의 심장에 가혹한 사형 선고처럼 내리꽂혔습니다. 평생을 바쳐 헌신했던 가족에게 이토록 처참하게 버림받은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남편을 잃은 처절한 슬픔이 거대한 해일처럼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서방님... 어찌하여 저를 이 지옥 같은 곳에 홀로 두고 먼저 가셨습니까. 차라리 그 먼 길 가실 때 저도 함께 데려가 주시지... 이 가슴이 찢어지는 억울함을 도대체 어찌 씻으란 말입니까!'
소화는 차가운 진흙 바닥에 엎드려 두 주먹으로 땅을 치며 짐승처럼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거세게 내리치는 빗소리에 그녀의 가녀린 울음소리는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고, 무정하게 번쩍이는 번갯불만이 쫓겨난 과부의 창백하고 처연한 얼굴을 잔인하게 비출 뿐이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기댈 곳도 없는 낯선 길거리. 그녀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깊은 산속의 어둠을 향해 비틀거리며 위태로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 2: 비바람 몰아치는 밤,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친 천민 백정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겨울비가 소화의 얇은 홑겹 소복을 무자비하게 적셨습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빗물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채를 타고 창백한 얼굴을 거쳐 발끝까지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날카로운 돌멩이와 진흙탕이 뒤섞인 산길을 걷던 하얀 버선발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 피투성이가 된 지 오래여서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당장 다가올 내일 아침의 해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습니다. 의지할 친정이라도 곁에 있다면 당장 달려가 품에 안겨 울련만, 친정 부모님은 오래전 무서운 역병으로 돌아가시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 넓은 세상 천지에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거두어줄 피붙이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내 고단했던 삶은 결국 여기서 이렇게 비참하게 끝나는구나. 그 악독하고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와 짐승만도 못한 시동생의 더러운 모함에 걸려, 평생을 추악한 화냥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람들 손가락질을 받으며 구걸을 하느니... 차라리 이 빗속에서 깨끗한 몸으로 저승에 가 그리운 서방님을 만나는 편이 백번 낫겠어.'
마을을 한참 벗어나 산짐승이나 다닐 법한 험준한 산길로 접어든 소화의 몽롱한 머릿속에는 오직 죽음이라는 두 글자만이 안식처처럼 맴돌았습니다. 배고픈 늑대와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거센 바람을 타고 스산하게 들려왔지만, 인간 세상의 가장 밑바닥 추악한 탐욕과 배신을 온몸으로 겪어낸 그녀에게 짐승은 오히려 인간보다 덜 무서운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비바람에 꺾일 듯 휘청이며 가파른 산길을 위태롭게 오르던 그녀는, 결국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극심한 굶주림, 그리고 세상을 향한 극도의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산 중턱의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에서 그만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차가운 흙바닥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가느다란 호흡은 점차 잦아들고, 생명의 갸냘픈 불씨가 빗속에서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시각, 마을 외곽의 후미진 산자락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찌그러진 오두막을 짓고 살던 백정 '천수'는 거친 비바람을 온몸으로 뚫고 묵직한 나무 지게를 진 채 험한 산길을 성큼성큼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을 장터 한구석에서 매일같이 소를 잡고 피비린내 나는 고기를 발라내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신분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천민 중의 천민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짐승 피를 묻히고 사는 그를 부정한 존재라며 지나갈 때마다 침을 뱉고 피해 다녔고,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조차 그에게 돌을 던지며 조롱하기 일쑤였지요. 산만 한 우락부락한 덩치에, 얼굴에는 도축하던 소의 뒷발에 강하게 채여 생긴 커다란 흉터까지 흉측하게 자리 잡고 있어 외모는 험상궂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사실 천수는 그 누구보다 속정이 깊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며 자연을 섬길 줄 아는 따뜻한 사내였습니다. 오늘 밤같이 궂은 날씨에 험한 산을 오르는 이유도, 자신이 며칠 전 쳐놓은 사냥 덫에 불쌍한 산짐승이 걸려 거센 폭우 속에 고통받으며 헛되이 죽어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미끄러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살피러 나온 참이었습니다.
"어이쿠, 빗줄기가 어찌 이리 하늘이 뚫린 듯 무섭게 쏟아지는고. 용왕님이 단단히 노하셨나. 서둘러 덫을 확인하고 내려가야겠구나."
천수가 비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덫이 있는 고목나무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던 찰나였습니다. 흙탕물이 고인 바닥에 하얀 무명천 같은 것이 기괴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간 그의 두 눈이 화들짝 커지며 숨을 들이켰습니다. 그것은 버려진 천 쪼가리가 아니라,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하얀 소복을 입고 쓰러져 있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아, 아니! 이 깊고 험한 산중에 웬 여인이... 여보시오! 여보시오, 정신 좀 차려보시오!"
천수는 놀란 마음에 황급히 어깨의 지게를 내팽개치고 바닥에 엎드린 소화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습니다. 여인의 가녀린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고, 새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마저 아스라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습니다. 찢겨 나간 피투성이 발과, 거친 매를 맞아 멍투성이가 된 고운 얼굴을 본 천수는, 이 가엾고 어린 여인이 예사롭지 않은 원통한 사연으로 이 험한 밤에 쫓겨났음을 단번에 직감했습니다.
'이대로 빗속에 단 반각이라도 더 두었다가는 날이 밝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말겠구나. 내가 비록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천한 백정이오나, 어찌 귀한 사람의 목숨을 짐승처럼 길가에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천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입고 있던 두툼하고 투박한 가죽옷을 훌렁 벗어 소화의 얼어붙은 몸을 꽁꽁 단단히 감쌌습니다.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워진 그녀를 조심스레 번쩍 등에 업고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끄러운 산길을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듯 단숨에 내달려 자신의 오두막으로 향했습니다. 사방에 짐승의 피 냄새가 배어있는 누추하고 허름한 백정막이었지만,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선 소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무자비한 폭풍우를 막아줄 지붕과 몸을 녹일 따뜻한 아랫목이었습니다. 천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궁이에 미친 듯이 참나무 장작을 밀어 넣고 거센 불을 지피며, 죽어가는 여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고도 헌신적인 간호를 시작했습니다.
※ 3: 피비린내 나는 백정막에 피어난 따뜻한 온기와 서로의 상처
아궁이의 거센 불길이 방바닥을 델 것처럼 절절 끓게 달구고, 천수가 산에서 직접 캐온 귀한 약초를 질그릇에 달이는 쌉싸름한 냄새가 백정막 안을 훈훈하게 채웠습니다. 꼬박 사흘 밤낮을 고열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매던 소화는, 넷째 날 아침의 맑은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올 무렵 마침내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습니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또렷해지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게 그을리고 거미줄이 쳐진 낡은 천장과, 방 한구석 벽면에 무심하고도 섬뜩하게 걸려 있는 커다란 도축용 칼과 쇠갈고리들이었습니다. 순간, 자신이 죽어 지옥의 형벌장에 떨어진 것은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난 소화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아아악! 여,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다가오지 마라!"
"어, 어이쿠! 드디어 깨어나셨소? 놀라지 마시오. 해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오."
비명 소리에 허름한 방문이 벌컥 열리며 험상궂은 흉터 얼굴을 한 거한, 천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뚝배기 사발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쳐 들고 들어왔습니다. 소화는 짐승 같은 거구의 사내를 보자 본능적으로 이불을 끌어안고 방구석으로 몸을 한껏 움츠렸지만,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투박하고 다정했습니다. 천수는 여인이 겁을 먹은 것을 눈치채고는 멀찍이 떨어진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쑥스러운 듯 커다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내 꼴이 짐승처럼 험악하여 아주머니가 많이 놀라셨나 보오. 미안하오. 나는 저잣거리 장터에서 소를 잡고 고기를 발라 파는 천수라는 백정이오. 며칠 전 비바람이 미친 듯이 치던 밤, 산중턱 고목나무 아래에 쓰러져 죽어가던 것을 내 이 누추한 곳으로 업고 왔소이다. 자, 사흘을 꼬박 굶어 기운이 없을 터이니 우선 이 따뜻한 고기 죽부터 좀 들어보시오. 기력을 차리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소."
소화는 그제야 극도의 공포로 굳어있던 몸을 조금씩 풀고 눈앞의 사내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냄새나고 더럽다며 그토록 멸시하고 짐승 취급하던 천민 백정. 하지만 그가 조심스레 내민 뚝배기에서는 오랫동안 푹 고아낸 진하고 구수한 고기 국물 냄새가 풍겼고, 숟가락과 죽을 건네는 그의 뭉툭하고 굳은살 박인 손끝은 여인을 다치게 할까 두려운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끔찍한 배신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으로 가득 차갑게 얼어붙었던 소화의 마음에, 그 거칠지만 한없이 따뜻한 진심의 온기가 봄눈 녹듯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소화는 천수가 끓여준 정성 가득한 죽을 한 숟갈 떠먹자마자, 허겁지겁 바닥을 비워내고는 왈칵 참았던 피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아 진흙탕에 버려진 저같이 죽일 년을 살려주시다니... 이 크나큰 생명의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죽일 년이라니요. 당치 않은 말씀 마시오. 그 고운 얼굴에 억울함과 원통함이 이리도 깊고 처절하게 패어 있는데. 뉘신지는 몰라도 가슴속을 시커멓게 꽉 채운 억울한 응어리가 있다면 내게 다 털어놓아 보시오. 소 잡는 칼로 그 답답한 속을 단숨에 뻥 뚫어드릴 순 없어도, 밤이 새도록 묵묵히 들어줄 수는 있으니 말이오."
천수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에 소화는 아이처럼 목놓아 통곡하며, 참았던 서러움을 토해내듯 자신의 기구하고 원통한 사연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 막대한 재산을 노린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추악한 탐욕, 그리고 모르는 왈패를 끌어들여 자신에게 화냥년의 누명을 씌우고 비 오는 밤거리에 쓰러져 죽도록 내쫓아버린 그 잔혹했던 밤의 이야기까지. 숨 막히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천수의 커다란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고, 깊은 흉터가 파인 그의 험상궂은 눈가에는 어느새 분노와 슬픔의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천하에 짐승만도 못한 악귀 같은 놈들! 들짐승도 자기 새끼가 남긴 짝은 품어줄 줄 알거늘, 한낱 썩어 없어질 재물에 눈이 멀어 핏줄의 지어미를 그리 내치다니! 아주머니의 억울함이 필시 하늘에 닿아 그놈들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오!"
"제 서방님이 피땀 흘려 일군 소중한 재산이 고스란히 그 악독한 자들의 입으로 들어가 매일같이 노름판에 뿌려질 것을 생각하니, 억울해서 도저히 두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친정 하나 없고 힘없는 제가 도대체 어찌 그들에게 복수를 하겠습니까. 그저 이 피맺힌 한을 가슴에 품고 죽어 귀신이 되는 수밖에요..."
소화가 다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자, 천수는 말없이 굵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심을 한 듯 단호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방에 들어온 천수는, 소화 앞에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앉았습니다.
"아주머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소나 잡는 천한 백정이라 손가락질하고 벌레 취급하지만, 내게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오랜 비밀이 하나 있소. 아주머니의 그 피맺힌 억울함, 내가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소. 아니, 반드시 그리되도록 내 남은 목숨과 모든 것을 걸겠소."
소화는 젖은 눈을 들어 천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소 잡는 시퍼런 칼 한 자루가 가진 것의 전부일 것 같은 이 천민 사내가, 고을 최고의 만석꾼 집안을 상대로 어떻게 복수를 돕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수의 굳게 다문 입술과 매서운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강렬하게 어둠 속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 4: 백정의 엄청난 반전, 바위산 동굴에 숨겨진 황금빛 노다지
계절이 바뀌어 차가운 산천에 어느덧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얼었던 계곡물이 경쾌하게 흐르는 완연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소화는 천수의 오두막에 머물며 그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잃었던 기력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그녀는 천수가 사냥해 온 거친 짐승의 가죽을 고운 솜씨로 다듬어 바느질하고, 산나물을 캐어 따뜻한 밥을 지으며 그의 은혜에 보답하려 애썼습니다. 천수 역시 소화를 누이처럼, 혹은 귀한 안방마님처럼 깍듯하게 모시며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예의를 지켰습니다. 두 사람은 비록 살아온 환경과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서로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짜 가족 같은 든든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달빛이 유난히 밝게 빛나던 늦은 밤, 천수는 커다란 봇짐을 단단히 꾸리더니 소화에게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올 것을 조심스레 권했습니다.
"아주머니, 험한 길이 되겠지만 오늘 밤은 나를 따라 이 산의 아주 깊은 곳으로 가셔야겠소. 겨울에 내가 아주머니의 복수를 돕겠다고 했던 그 약조, 오늘 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시켜 드리리다."
소화는 야심한 시각에 산을 타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천수를 자신의 목숨보다 굳게 믿었기에 아무 말 없이 나갈 채비를 하고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두 사람은 험준한 산맥을 몇 개나 넘고, 인적이 완전히 끊긴 깊고 가파른 계곡을 따라 밤새도록 묵묵히 걸었습니다. 차가운 새벽이슬이 옷깃에 맺히고 동이 틀 무렵, 천수는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산 앞의 빽빽한 잡목 덤불을 거친 손으로 걷어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 한 명이 몸을 웅크려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어두운 동굴 입구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발밑을 조심해서 내 뒤에 바짝 붙어 오시오."
천수가 불을 붙인 횃불을 높이 들고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좁았던 통로가 갑자기 넓어지며 커다란 광장 같은 공간이 나타났고, 천수가 동굴 벽면에 꽂힌 여러 횃불에 불을 옮겨 붙이자 숨 막히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횃불의 붉은 불빛이 사방에 반사되어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고, 소화는 그 자리에 석상처럼 얼어붙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동굴 한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거대한 참나무 궤짝들이 산더미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습니다. 뚜껑이 반쯤 열린 궤짝 안에서는 묵직하고 누런 황금 덩어리와 은괴,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영롱한 오색 빛을 뿜어내는 천연 금강석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한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을 제일의 만석꾼이라 위세를 부리던 최 부잣집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수십 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야말로 전설 속에서나 듣던 무시무시한 노다지였습니다.
"이... 세상에 맙소사.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어찌 천수 님의 동굴에 이런 엄청난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 있단 말입니까..."
천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동굴 한편의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십여 년 전, 내가 사냥을 하러 깊은 산에 들어왔다가 다친 멧돼지를 쫓아 우연히 이 바위산의 숨겨진 금맥을 발견했었소. 하지만 나 같은 천한 백정이 금덩이를 주워 장터에 가져갔다간, 당장 도적으로 몰려 관아에 끌려가 목이 베일 것이 불 보듯 뻔했지요. 하여 아무에게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밤마다 몰래 이곳에 들어와 금을 캐내어 궤짝에 숨겨두었지요. 언젠가 이 썩어빠진 세상을 단숨에 뒤집어버리거나, 정말 나와 같이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구하는 데 쓰려고 평생 짐승 피를 묻히며 가난한 척 살아온 것이오."
천수는 주먹만 한 묵직한 황금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어 떨고 있는 소화의 두 손에 단단히 쥐여주었습니다. 차가우면서도 묵직한 순금의 감촉이 소화의 손끝을 타고 심장까지 강렬하게 전해졌습니다.
"나는 이 어마어마한 노다지를 이용해 아주머니를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거상으로 만들어 드릴 작정이오. 아주머니의 죽은 남편이 큰 상단을 이끌었으니, 그 장사의 생리와 수완을 아주머니도 곁에서 어깨너머로 보아 아주 잘 아실 터. 우리는 이 금괴를 가지고 당장 한양으로 올라가 신분을 완벽히 세탁하고, 이 압도적인 재력을 앞세워 최 부잣집을 옭아맬 거대한 그물을 짤 것입니다. 그 탐욕스럽고 비열한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목을 조르는 것은 무력이나 칼이 아니라, 그들이 평생 환장하며 쫓았던 '돈'이어야 가장 통쾌한 법입니다."
소화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사그라졌던 복수의 붉은 불꽃이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비바람 속에 맨몸으로 쫓겨나 산길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던 비참하고 연약한 과부가 아니었습니다. 천수라는 절대적으로 든든한 조력자와 막대한 재력, 그리고 남편 곁에서 익혀둔 상술을 합친다면 능히 그 추악한 자들을 철저히 파멸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뼈저리게 섰습니다.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든 동굴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밤하늘의 늑대보다 더 매섭고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참혹했던 과거의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 탐욕에 찌든 자들에게 끔찍한 천벌을 내리기 위한 그 위대한 복수의 서막이 마침내 장엄하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 5: 복수의 서막, 거상의 여인으로 신분을 바꾼 과부의 한양 행차
그날 밤, 동굴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막대한 노다지의 일부를 챙긴 소화와 천수는, 미련 없이 산기슭의 낡은 백정막을 떠나 조선의 심장부인 한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봇짐 속에 숨겨진 황금의 무게는 두 사람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그들의 발걸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결연했습니다. 한양 땅에 무사히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가장 먼저 과거의 허름하고 천대받던 흔적들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천수는 봇짐 속의 금괴를 단번에 시장에 내놓지 않고, 한양 도성 안의 여러 전당포와 금은방을 은밀히 돌며 조금씩 엽전과 은자로 바꾸어 자금을 확보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소화는 그 막대한 자금으로 최고급 청나라산 비단과 명주를 사들여 화려하고 기품 있는 치마저고리를 지어 입었고, 헝클어졌던 머리에는 값비싼 산호 비녀와 영롱한 옥가락지로 치장했습니다. 모진 고생과 굶주림, 그리고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파리하게 말라붙었던 얼굴에 질 좋은 산해진미로 기름기가 돌고 고운 화장기를 더하자, 그녀는 한양 도성 안의 웬만한 정승 판서댁 규수들이나 왕실의 여인들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할 만큼 압도적으로 귀티가 흐르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완벽하게 변모했습니다. 천수 역시 우락부락하게 자라났던 산적 같은 수염을 말끔하게 다듬고, 천한 짐승 가죽 대신 기품 있고 윤기가 흐르는 짙은 남색 명주 두루마기를 걸치자, 피 냄새를 풍기며 소를 잡던 천민 백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수백 명의 수하를 거느린 듯한 위엄 있고 듬직한 상단의 대행수이자 호위무사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지요.
소화는 자신의 본명을 깊은 곳에 묻어두고, 성을 바꾸어 '송 행수'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한양에서 가장 상거래가 활발하고 땅값이 비싸다는 운종가(雲從街) 한가운데의 노른자위 땅을 사들여, 어마어마한 규모의 번듯한 객주를 차렸습니다. 천수가 바위산 동굴에서 가져온 그 자금력은 실로 무시무시하고도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막강한 현금을 무기로 삼아 청나라에서 들여오는 희귀한 비단과 도자기, 개성에서 올라오는 최상급 인삼, 그리고 남쪽 곡창지대에서 올라오는 질 좋은 쌀과 콩을 독점하다시피 싹쓸이로 사들이며 순식간에 한양 상권을 집어삼키듯 장악해 나갔습니다. 소화는 비록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생전에 대상단을 이끌던 죽은 남편의 곁에서 장부 정리와 상단의 생리를 어깨너머로 철저하게 배워둔 영특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천재적인 장사 수완과 혜안이 빛을 발하고, 천수가 묵묵히 그녀의 곁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든든한 호위무사이자 실행대장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자, 불과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송 객주'의 이름은 한양을 넘어 조선 팔도 전체를 쩌렁쩌렁 뒤흔드는 거대한 상단으로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고 상계를 쥐락펴락하는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손에 쥐게 되자, 자신을 사지로 내몰았던 시댁을 향한 소화의 치밀하고도 잔혹한 복수의 덫이 서서히 그 정교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소화는 가장 발이 넓고 입이 무거운 정보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고향 마을에 있는 최 부잣집의 동태를 밤낮으로 면밀히 살피게 했습니다. 한양으로 매일같이 들려오는 소식은 그녀의 서늘한 예상과 단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죽은 남편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억울한 누명으로 빼앗아 독차지한 시동생 만득은, 형의 소중한 상단을 지키고 불리기는커녕 매일 밤 기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기생들 치마폭에 돈을 뿌리고, 판돈이 어마어마한 노름판에 빠져 가산을 물 쓰듯 탕진하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조 씨 부인 역시 아들의 그 방탕한 행패를 말리기는커녕, 눈엣가시 같던 며느리를 내쫓은 후 수십 벌의 화려한 비단옷을 맞추어 입고 고을을 거들먹거리며 허영심과 사치에 흠뻑 젖어 살고 있었지요. 주인을 잃고 방탕한 자들의 손에 넘어간 남편의 튼튼했던 상단은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아 서서히 그 기둥이 썩어 들어가며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이제 저 오만하고 어리석은 물고기들을 향해 치명적인 낚싯대를 드리울 차례입니다."
소화가 객주의 화려한 자개장 앞에서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매섭게 눈을 빛냈습니다. 곁에 산처럼 굳건히 서 있던 천수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뜻에 동조했습니다. 소화는 천수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한양 도성 안에서 가장 손기술이 화려하고 성품이 질 나쁘기로 소문난, 사람의 간을 빼먹는 교활한 투전꾼(타짜) 무리를 거액의 돈으로 매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두둑한 밑천을 쥐여 고향 마을로 내려보내십시오. 그리고 그 탐욕스러운 시동생 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처음에는 돈을 크게 잃어주어 그놈의 허풍과 탐욕을 하늘 끝까지 부풀려 놓으라 이르십시오. 놈이 이성을 잃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 착각하는 그 순간, 날개를 부러뜨려 천길 낭낭떠러지로 무참히 추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그놈들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입니다."
며칠 뒤, 소화의 치밀한 계획대로 고향 고을의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이름난 투전판에 한양에서 내려왔다는 낯선 부호 행색의 사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로 천수가 막대한 뇌물을 주고 고용한 조선 최고의 타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물에 걸린 먹잇감을 노리듯 자연스럽게 만득에게 접근했고, 소화의 지시대로 처음 며칠간은 일부러 멍청한 척 수천 냥의 돈을 잃어주며 만득의 비뚤어진 탐욕과 자만심을 한껏 부풀려 놓았습니다. 돈맛을 제대로 본 만득은 스스로가 투전의 신이라도 된 양 착각에 빠져, 며칠 밤낮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기생을 끼고 앉아 노름판에 미친 듯이 매달렸지요. 하지만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지옥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의 화려한 탑승권일 뿐이었습니다. 판돈이 걷잡을 수 없이 산더미처럼 커지자, 한양의 타짜들은 드디어 숨겨두었던 짐승의 이빨과 섬뜩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신들린 손장난과 교묘한 속임수 앞에 만득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하룻밤 새에 형이 물려준 어마어마한 전답의 문서와 대대로 내려오던 집문서까지 모조리 판돈으로 걸었다가 몽땅 털리고 마는 참담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 6: 함정에 빠진 시동생과 시어머니, 탐욕이 부른 처참한 몰락
숨 막히는 담배 연기와 쩐내가 진동하는 투전판 한가운데서, 믿을 수 없는 패배에 넋이 나간 만득은 핏발이 시뻘겋게 선 눈으로 타짜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며 처절하게 애원했습니다.
"아, 안 돼! 이것이 우리 형님이 평생을 바쳐 물려준 최 부잣집의 마지막 남은 재산이란 말이오! 내가 잠깐 실수를 한 것이오. 제발 한 판만, 딱 한 판만 더 합시다! 내가 당장 집에 가서 돈을 더 구해올 터이니 그 문서들을 돌려주시오!"
그러나 한양에서 내려온 타짜들은 비웃음을 흘리며 달라붙는 만득의 가슴팍을 차갑고 무자비하게 걷어찼습니다. 바닥에 나뒹구는 만득을 향해 그들은 섬뜩한 살기를 내뿜으며 협박했습니다.
"이런 멍청하고 미련한 놈을 보았나! 투전판에서 돈을 잃었으면 목숨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이 바닥의 법도이거늘! 이미 네놈 집안의 모든 권리는 우리 손에 넘어왔다. 내일 해가 지기 전까지 현찰로 만 냥을 더 가져와 빚을 갚지 못하면, 네놈의 그 건방진 손목을 모조리 잘라 개먹이로 던져주고, 너희 어미는 당장 관아의 관노비로 팔아버릴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썩 꺼져라!"
사색이 되어 덜덜 떨며 집으로 도망쳐 온 만득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머니 조 씨 부인에게 노름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떵떵거리며 평생을 살 줄 알았던 조 씨 부인은, 아들의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고 거품을 물며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찬물을 뒤집어쓰고 간신히 깨어난 조 씨는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남편과 큰아들이 피땀으로 일군 최 부잣집은 하루아침에 험악한 빚쟁이들에게 둘러싸여 풍비박산이 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바로 그때,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허덕이던 그들의 귓가에 동아줄 같은 소문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한양에서 내려온 조선 최고의 거상 '송 객주'가 거래를 트기 위해 고을의 가장 크고 화려한 객사에 머물고 있는데, 이자를 확실히 쳐준다는 담보만 있다면 그 어떤 막대한 큰돈이라도 당장 내어준다는 희소식이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려 당장 손목이 잘리고 노비로 팔려 갈 위기에 처한 만득과 조 씨는, 남아있는 가장 비싼 비단옷을 챙겨 입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송 객주가 머무는 화려한 전각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갔습니다. 그 전각의 깊은 방 안에는 촘촘하게 짜인 비단 발 너머로, 자신들이 억울한 누명을 씌워 비바람 속에 내쫓았던 가엾은 며느리 소화가 싸늘하고 매서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최고급 침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화려한 비단 병풍과 값비싼 도자기로 장식된 객주의 너른 방 안.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을을 호령하며 거들먹거리던 조 씨 부인과 만득은, 이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비굴하게 애걸복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얇고 고운 명주 비단 발이 길게 쳐져 있었고, 그 너머로 화려한 가채를 올리고 비단옷을 입은 객주 대행수 송 씨, 즉 소화의 실루엣만이 안개처럼 흐릿하게 비칠 뿐이었습니다. 거구의 천수는 묵직한 장검을 허리에 찬 위압적인 호위무사의 복장으로, 발 너머 소화의 곁을 바위산처럼 묵묵히 지키고 섰습니다.
"행수 어르신, 제발 이 어리석은 놈을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투전판에 눈이 멀어 그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산을 몽땅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장 이만 냥만 융통하여 빌려주신다면, 우리 최 부잣집의 남은 선산과 숨겨둔 대지 문서를 모두 담보로 잡히고, 이자를 남들보다 두 배로 후하게 쳐서 한 달 안에 기필코 갚겠사옵니다!"
만득의 벌벌 떨리는 비굴한 목소리를 들으며, 발 너머에 앉은 소화는 속으로 차갑고도 서늘한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신의 죽은 남편이 뼈를 깎는 고통과 땀방울로 일군 귀한 땅을, 제 목숨 하나 살리겠다고 노름판 빚 갚는 데 쓰려는 그 뻔뻔하고 추악한 모습이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겹기 그지없었습니다.
"최 부잣집이라... 한양에까지 그 소문이 들릴 정도로 고을 제일의 만석꾼 집안이라 들었건만, 어찌 그 귀하고 막대한 가산을 천박한 투전판에 다 털렸단 말이오. 가져온 담보 문서들을 쭉 살펴보니 이만 냥을 빌려줄 가치는 충분해 보이오만... 장사치란 본디 눈앞의 문서보다 사람의 신용과 됨됨이를 보고 큰돈을 내어주는 법. 당신네 같이 방탕한 집안에 이 엄청난 돈을 기한 내에 갚을 만한 인재와 장사 신용이 털끝만큼이라도 남아있단 말이오?"
소화가 일부러 목소리를 무겁게 내리깔고 싸늘하게 묻자, 옆에 엎드려 있던 시어머니 조 씨 부인이 다급하게 끼어들며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아이고, 행수 어르신! 비록 이 둘째 놈이 못나서 실수를 하였으나, 우리 일찍 죽은 큰아들이 살아생전에 조선 팔도에 훌륭하게 쌓아둔 상단의 명성과 거상들과의 거래처들이 아직 고을 곳곳에 탄탄하게 남아있습니다요! 어르신께서 빌려주신 돈으로 당장 급한 불만 끄고 나면, 우리 상단을 다시 굴려 빌린 돈을 곱절로 갚아 드릴 수 있습니다! 제발 불쌍한 이 늙은 어미를 보아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조 씨의 간사한 입에서 나온 '큰아들'이라는 단어에, 소화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수년간 억눌러왔던 피맺힌 분노가 거대한 화산처럼 폭발하듯 끓어올랐습니다. 큰아들이 남긴 재산은 온갖 모함으로 다 가로채고, 그 아들이 목숨처럼 아끼던 지어미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비 오는 밤거리에 쓰러져 비참하게 죽도록 내쫓아놓고서, 이제 와서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그 불쌍한 큰아들의 명성을 팔아먹다니. 아무리 미물인 짐승이라도 이토록 뻔뻔하고 잔혹할 수는 없을 터였습니다. 소화는 치밀어 오르는 살기를 간신히 억누르며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좋소. 당신네 그 죽은 큰아들의 훌륭한 명성을 보아 특별히 이만 냥의 어음을 내어줄 터이니, 이 차용증과 담보 문서에 붉은 지장을 찍으시오. 단, 변제 기한은 정확히 보름이오. 보름 안에 원금과 이자를 단 한 푼이라도 갚지 못하면, 그대들이 담보로 잡힌 모든 집과 땅은 내 소유가 될 것이며, 그대들의 목숨까지 관아에 노비로 넘겨 처분할 것이니 뼈에 새겨 명심하시오."
만득과 조 씨는 당장의 지옥에서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보 문서에 붉은 지장을 꾹꾹 눌러 찍었습니다. 그 문서가 자신들의 숨통을 영원히 끊어놓을 참혹한 사형 집행장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약속한 보름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한양 타짜들에게 빌린 빚을 갚고 나니 만득의 수중에는 상단을 다시 굴리기는커녕 입에 풀칠할 돈조차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약속한 상환 기한의 해가 저물자, 이번에는 소화와 천수가 직접 수십 명의 건장한 호위무사와 관아에서 빌려온 포졸들을 대동하고, 최 부잣집의 육중한 대문을 산산조각 내듯 박살 내며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쳤습니다.
"약조한 기한이 지났소이다! 당장 기어 나와 빌린 돈을 내놓지 못할까!"
천수의 산을 호령하는 듯한 우렁찬 호통에 만득과 조 씨는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며 마당으로 비참하게 기어 나왔습니다.
"아, 행수 어르신... 상단에 물건이 묶여 돈이 도지 않아 그러니 제발 며칠만, 딱 며칠만 더 말미를 주시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려 고개를 조아리던 조 씨 부인의 눈이, 가마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서는 여인을 향하는 순간 공포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발에 가려져 있던 거상 송 객주의 진짜 얼굴. 최고급 비단옷을 입고 금은보화로 치장한 채, 뼛속까지 시려오는 서늘한 눈빛으로 벌레 보듯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은, 바로 몇 해 전 그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화냥년으로 몰아 빗속으로 내쫓았던 며느리 소화였던 것입니다.
"소, 소화야... 네가, 네가 어찌 살아서... 어찌 저 모습으로..."
조 씨 부인은 백주대낮에 원한 맺힌 귀신을 본 듯 거품을 물며 뒤로 나자빠졌고, 만득 역시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채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 도련님. 비바람 치던 칠흑 같은 밤 짐승처럼 내쫓겨 길바닥에서 썩어 죽었을 줄 알았던 과부년이, 조선 최고의 거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니 혼백이 달아나셨습니까?"
소화의 목소리는 한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차갑고도 날카롭게 마당을 울렸습니다.
"제 서방님이 피땀 흘려 일군 이 소중한 재산을 독차지하려, 무고한 지어미의 방에 왈패를 끌어들여 더러운 불륜의 누명을 씌우고 사지로 내몰았던 당신들의 그 끔찍한 탐욕! 오늘 그 추악한 죗값을 피눈물로 톡톡히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 집안의 모든 재산 문서는 문서의 약조대로 모두 내 손에 들어왔소! 포졸들은 무얼 하는가! 당장 저 파렴치한 사기꾼 놈들을 포박하여 관아의 감옥으로 끌고 가라!"
소화가 미리 증거를 쥐여주고 손을 써둔 포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조 씨와 만득의 목에 거친 오랏줄을 걸고 꽁꽁 묶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며 진흙 바닥을 뒹굴고 발악하는 그들의 비참한 절규는, 과거 소화가 비바람 속에 쫓겨나며 홀로 삼켜야 했던 그 피눈물의 무게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고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핏줄과 인륜을 져버렸던 자들의 처참하고도 완벽한 몰락의 순간이었습니다.
※ 7: 빼앗긴 재산을 되찾고 백정과 함께 이룬 진정한 부와 행복
다음 날 아침, 고을 사또가 좌정하고 있는 동헌 마당에서 엄숙하고도 준엄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소화가 증인으로 데려온 그날 밤의 왈패와 투전꾼들의 낱낱이 고해바치는 증언 아래, 만득과 조 씨 부인이 저지른 그간의 추악한 범죄는 백일하에 명명백백히 드러났습니다. 형의 가산을 탕진하고 무고한 며느리를 모함하여 사지로 몰아넣은 죄로, 시동생 만득은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도록 곤장 육십 대를 맞고 멀리 북방의 외딴섬으로 귀양을 가는 처절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조 씨 부인 역시 탐욕으로 빚은 모든 재산을 완전히 몰수당하고, 늙은 나이에 관아의 허드렛일을 하는 비참한 관노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동헌 마당에 모여든 고을 사람들은 인과응보이자 사필귀정이라며 죄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돌을 던지고 손가락질을 했고, 과거 소화의 억울한 누명을 알지 못해 오해하고 수군거렸던 이들은 그녀 앞에 엎드려 깊은 사과와 속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화는 당당하게 빼앗겼던 남편의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수만 평의 전답을 모두 제 이름으로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죽은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 한양에서 제일가는 최고급 제사상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올렸습니다. 향을 피우고 맑은 술을 무덤가에 뿌리며, 소화는 그동안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가슴속을 짓누르던 억울하고 원통했던 마음의 짐을 완전히 씻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최 부잣집의 가장 크고 따뜻한 본채 안방에, 평생을 사람들에게 천대받으며 짐승의 피를 묻히고 찌그러진 오두막에서 살았던 백정 천수를 이 집의 새 주인이자 어르신으로 당당히 모셔 들였습니다.
"아주머니, 아니 이제는 조선을 호령하는 송 행수 어르신. 내 어찌 감히 이리 훌륭하고 귀한 기와집 안방에 자리를 깔고 앉는단 말이오. 나는 내 처음 약조대로 아주머니의 한을 모두 풀어주었으니, 이제 내 임무를 다 마친 셈이오. 나는 다시 짐승 가죽을 덮어쓰고 저 험한 산속 동굴로 홀로 돌아가렵니다."
천수가 비단 방석을 부담스러워하며 머쓱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려 하자, 소화는 눈물을 머금은 채 그의 거칠고 커다란 두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꽉 맞잡았습니다.
"무슨 섭섭하고 가당치 않은 말씀이십니까. 칠흑 같은 빗속에서 죽어가던 제 목숨을 따뜻하게 거두어 주시고, 피맺힌 억울한 한을 목숨 걸고 풀어주신 저의 유일한 은인이십니다. 천수 님의 그 깊은 산속 노다지와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저는 결코 이 환한 세상에 다시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겉모습만 보고 천한 백정이라 손가락질하고 조롱했지만, 제게 당신은 하늘이 내려주신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은인이요, 핏줄보다 더 진하고 든든한 유일한 가족입니다. 제발 저를 두고 떠나지 마십시오."
소화의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애절한 말에, 산만 한 덩치의 천수도 결국 참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이후 상처를 치유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한양과 조선 팔도를 아우르는 상단을 더욱 견고하고 거대하게 키워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탐욕에 찌들었던 최 부잣집의 시어머니와 시동생처럼 가혹하게 재물을 긁어모아 창고에 썩혀두고 자신들만 배불리 먹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가뭄과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어갈 때면 누구보다 먼저 거대한 곳간의 문을 활짝 열어 빈민들을 무상으로 구휼했고,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수백 명이나 거두어, 따뜻한 밥을 먹이고 글을 가르치며 상단의 훌륭한 장사 기술을 익히게 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의 처절한 설움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온몸으로 겪어냈던 두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캐낸 동굴 속의 재물은 단순한 금덩어리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세상의 희망을 키우는 진정한 의미의 '노다지'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세월이 강물처럼 평화롭게 흘러, 천한 신분이던 백정 천수는 상단의 지혜롭고 자애로운 대행수로서 고을의 모든 백성과 관리들의 칭송과 깊은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소화 역시 억울하게 쫓겨난 비참한 과부라는 오명의 굴레를 완벽히 벗어던지고, 약자를 돕는 조선 제일의 지혜로운 여장부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떨쳤습니다. 비록 두 사람은 남녀의 연을 맺어 혼인을 하지는 않았으나, 친남매 그 이상을 뛰어넘는 영혼의 깊은 신뢰와 우정으로 평생을 의지하고 보듬으며 함께 늙어갔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춥고 잔혹했던 밤, 가장 낮은 진흙탕 속에서 마주쳤던 두 사람의 기막힌 인연은, 어둡고 추악한 탐욕을 시원하게 부수고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따뜻한 황금빛 해피엔딩으로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탐욕에 눈먼 가족에게 버림받고 죽음의 문턱에 섰던 과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던 백정의 놀라운 반전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재물에 눈이 멀어 인륜을 저버린 자들은 결국 파멸을 맞이했고, 가난하고 천한 신분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두 사람은 진정한 부와 행복을 거머쥐었습니다. 나만 잘살겠다고 남을 짓밟는 이기심보다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베푸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짜 '노다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더욱 통쾌하고 흥미진진한 노다지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